사람인지라 때로는 가벼운 관계가 더 힘을 줄 때가 있다. 반면 끈끈한 관계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초연결 시대, 인간 관계는 더 어렵다
겨울 바다에 일렬로 서 있는 비치파라솔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 존재하는 초연결 사회란 필터를 통해 다시 보면 이 사진은 조금 달라 보인다. 사람들이 붐비는 여름 바닷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에너지는 아니지만, 파라솔 사이에 소소하나 따스한 연결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얇은 관계가 큰 힘이 될 때도 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 ‘누구에게 부탁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면, 나와 끈끈한 관계에 있는 직장동료나 절친 또는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오랜 시간 얽힌 ‘강한 관계(strong tie)’가 새로운 직장이나 자리로 이동하는 데 ‘힘’으로 작용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물론 이 관계의 힘이 부적절할 때 발생하는 문제 사례도 보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인 주장도 있다. 건너 건너 알게 된 ‘얇은 관계(weak tie)’가 오히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신 정보의 습득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주장인데, 이유를 들어보면 꽤 설득력이 있다.
아무래도 끈끈한 관계는 유사성이 큰 영역에 존재하기 쉽다. 예를 들어 의사는 아무래도 동료 의사들끼리 자주 만난다. 전문 지식에 기반한 깊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첨단 기술에 대한 정보의 습득이나 이런 정보를 기존 의학과 연결시키는 창의적 확장 사고에는 끈끈한 관계가 오히려 제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요즘 상담을 하다 보면 정체성을 고민하는 직장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니는 기업 자체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크고,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라는 것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요즘 자동차 회사를 가보면 엔진이 주축인 제조업 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반의 플랫폼 기업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플랫폼 기업에 가보면 여기가 로봇을 만드는 전자 회사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야말로 대전환의 시기다.
앞에서 언급한 ‘얇은 관계가 오히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연구가 최근 저명한 학술지에 보고됐다. 글로벌 비즈니스 인맥 플랫폼의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였는데 강한 관계에서보다 얇은 관계에서, 정확히는 적당히 얇은 관계(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살짝 관심과 친밀감 정도를 가진 사이)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첨단 소프트웨어 도입과 인공지능(AI) 통합, 로봇화 등 진화 속도가 빠른 영역일수록 얇은 관계가 더 효과적이라고 기술됐다.
적당히 얇은 관계란 무엇일까. 물리적 공간에서는 애매한 정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누구를 직접 통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인맥 플랫폼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네가 알면 좋을 것 같은 사람’ 같은 알고리즘이 소개해주는, 가벼운 관계 형성이 실제 인맥을 통하지 않고, 쉽고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양한 디지털 소통 플랫폼이 공존하고 메타버스가 키워드인 시대에서 새로운 디지털 만남이 증가하고 있다. 끈끈한 관계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디지털 인맥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공감적 관심이 결여된 타인이 불편하다
‘눈물’과 관련된 고민을 자주 접한다, “방송을 보는데 뜬금없이 너무 눈물이 흘러내려 당황했다”든지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와 창피하다”는 등의 고민이다.
눈물 반응이 지나치면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 치료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눈물 자체는 문제가 되는 반응이 전혀 아니다. 슬플 때 눈물이 흐르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내 감정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도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과거보다 ‘남자의 눈물’에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예전 한 통계를 보면 여성이 남자보다 5배 정도 더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데, 이는 남성의 눈물샘이 여성보다 작아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눈물은 약함이고 내 감정을 참고 누르는 것이 강한 남자란 인식이 남자의 눈물을 막은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마음 관리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따금씩 상대방의 눈물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눈물로 나를 조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눈물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다.
최근 1995년 출간한 베스트셀러 <감성지능>의 저자 다니엘 골먼 박사의 글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감성지능이 높으면 무조건 좋다’고 오해하곤 하는데,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인 감성지능이 지나치게 전략적이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감성지능의 오남용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감성지능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공감’을 예로 들어, 만약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는 ‘인지적’ 공감 능력과 타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정서적’ 공감 능력을 잘 갖춘 상대방이 공감의 또 다른 요소인 타인을 진심으로 돕고 위하려고 하는 ‘공감적 관심(empathic concern)’이 결여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짚었다.
단기적으로는 목적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어떤 값을 치러야 하는지 살피는 공감적 관심이 결여돼 있어 결국에는 상대방을 정서적으로 고갈시키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선택에 있어 이런 경향은 없는지 신중하게 살펴보고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