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MZ세대 뛰어든 미술 시장, 판 커지고 투자 접근 확대
MZ(밀레니얼+Z) 세대들이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핵심 주축이 되고 있다. 최근 부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미술 시장에 MZ세대들이 들어오면서 오랜 관행처럼 여겨지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한정판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실물이 아닌 온라인으로 접한 이미지도 자산으로 인정하고 구매한다.

과거 미술품 수집이 부자들의 고상한 취미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MZ세대들은 미술품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투영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기존 유명 작가들의 그림만을 고집하지 않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 수집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술품에 대한 MZ세대들의 달라진 시각이 그동안 견고했던 한국 미술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MZ컬렉터, 미술 시장 트렌드 바꿔…온라인 소통·경매 '활발'

미술 시장은 부동산과 주식처럼 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장이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유동성 긴축에 따른 실물시장 위축으로 미술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2년간 유례없는 최대 호황기를 맞았던 미술 시장이 실물경기 침체로 인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덩달아 조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지난해 미술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7.2%가 증가한 1조377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 결산액인 7563억 원에 비해 37.2% 늘어난 수치다. 미술 시장이 침체기로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1조 원의 동력은 다름 아닌 아트페어와 갤러리에서 산출됐다. 이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아트페어들이 열렸고, 갤러리들도 인기를 끌었다. 다만 자산 가격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2차 시장인 경매 시장은 조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미술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지 않고 아트페어와 갤러리를 중심으로 활황세를 이어간 동력에는 미술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MZ세대들의 적극적인 구매가 있었다. 최근 MZ세대 중심의 젊은 컬렉터들은 미술 시장을 주도하면서 기존 시장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이들은 신진 작가와 인기 작가를 가르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담은 그림을 구매하고 작가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미술품을 구매할 때는 기존 컬렉터 수준을 뛰어넘어 수집과 판매를 하는 ‘딜렉터’로서의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적극적인 컬렉터로 변모한 배경에는 미술품을 새로운 자산 증식 수단으로 주목하면서다.

일부 컬렉터들은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벌어 미술품을 구매하는 등 부동산을 대체할 대체자산으로 활용한다. 또 이들은 미술 작품을 구입할 때 오프라인의 도록을 찾아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본 후 구매한다.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거래하는 소비층이 두터워지면서 온라인 미술품 거래 플랫폼 활용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구매 고객들의 이런 성향 때문에 작가들도 이전보다 컬렉터들과 좀 더 적극적인 소통 방식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작업 과정을 공유하거나 팬층을 만들기도 한다. 미술 경매 회사들도 이러한 수요층이 많아지면서 온라인으로 경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응찰 시스템을 속속 도입했다.

젊은 세대는 미술품을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과 연결하기도 했다. 최근 코인 시장이 부진하면서 NFT에 대한 활용도가 낮아졌지만 앞으로 NFT를 활용한 아트테크 시장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술품 컬렉션, 관상용에서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변모

최근 유명 전시회마다 관람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거나 오픈하자마자 뛰는 ‘오픈런’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아트페어와 미술 전시회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프리즈 서울’에 이어 ‘이건희 컬렉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미술 전시회가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단순히 관상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보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으로 구성된 ‘이건희 컬렉션’의 작품 수는 2만3181점에 달한다. 감정가도 대략 3조 원 안팎으로 평가된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겸재 정선과 김환기, 이중섭과 마르크 샤갈,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한곳에 모여 있다.

미술품은 투자적 관점에서 볼 때 안정적인 현물 자산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그림을 사서 나중에 되팔아 새로운 작품을 다시 살 수 있다. 대중적인 유명 전시회 외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찾는 작품 전시회장은 젊은 층 컬렉터들에게 성지가 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갔던 미술관과 갤러리를 따라다닌다고 해서 ‘RM 로드’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다. 이외에 빅뱅의 GD나 위너의 송민호, 배우 박서준·정해인 등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SNS에 공유함으로써 컬렉터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술품이 개인 소장에 그치지 않고 컬렉터들의 자산 증식의 가치로도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국가별 현대 미술 낙찰총액 순위에서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이는 미국에 이어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이은 것이어서 미술 시장이 국내에서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이 한국 미술 시장의 대중화 흐름에 기여했다고 본다”며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도 매우 작은 시장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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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시장서 존재감 키우는 MZ컬렉터

경매 시장도 MZ컬렉터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경매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MZ세대 컬렉터들이 경매 시장에 잇따라 참여하면서부터 온라인 경매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케이옥션이 서울옥션보다 낙찰총액 규모가 낮지만 출품작 수는 총1만456건으로 서울옥션(6366건) 보다 훨씬 많았다. 케이옥션이 다른 경매사들에 비해 출품작 수가 월등하게 많은 것은 온라인 경매에 집중적으로 매진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MZ세대의 참여로 40대 미만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인 ‘초현대 미술’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다만 MZ세대의 경매 시장 참여로 사서 되파는 기간이 과거 대비 빨라지면서 리스크를 유발하는 투기적 분위기가 우려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특정 작가나 작품에 쏠림현상이 강해지는 것도 우려 요인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최근 경매 시장에 젊은 층이 미술품 구매를 주도하면서 작품의 회전 속도가 빨라졌다”며 “과거보다 온라인 경매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진 것도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