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김나이 “커리어 사춘기, 모범생보다 모험생 되세요”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라는 고민은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인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기 마련인 ‘커리어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다. 연차나 경력과 무관하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커리어 사춘기를 겪을 수 있다. 수십만 직장인의 일에 대한 고민을 들어 온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에게 ‘나만의 트랙’을 찾는 방법을 서면으로 물어봤다.

최근 신간 <자기만의 트랙>을 출간하셨죠. 그간 ‘일’과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셨는데요. 이번 책은 특히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나요.
“개인 입장에서는 변곡점의 시대에서 내 일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전문성을 벼려야 하는지 답을 드리고 싶었어요. 조직과 리더의 입장에서는 개인화 시대에 우리 조직은 표준화와 개인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이런 시대에 구성원들의 커리어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 리더의 질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답을 드리고 싶었고요. 특히 내 일을 내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체될 수 없는, 휩쓸리지 않는, 나아갈 힘을 갖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패턴화된 지식과 경험은 챗GPT(ChatGPT) 같은 인공지능(AI)이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전문성’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시대를 맞이했으니까요. 실제로 그간 4000여 명의 일하는 분을 1대1로 만나며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일하는 나의 성장과 내 일의 의미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나를 위해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방법, 내 일에서 좀 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넘어 나만의 실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답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커리어 사춘기를 잘 극복하는 사람과 긴 시간 동안 계속 헤매는 사람 간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나 자신을 향한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을 실행하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까지 쌓아 온 일 자산으로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는가’, ‘내가 물 만난 고기처럼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어때야 하는가’, ‘어떻게 일하는 방식이 나에게 잘 맞는가’ 등 여러 질문의 주어를 ‘나’로 두고 스스로의 선택을 만들어 가려는 분들은 그 과정이 어렵고 더뎌도 꼭 답을 찾고 자신의 길을 잘 만들어 가고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답을 따르는 경우, 즉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이나 관념에 맞춰 결정하는 경우에는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니 커리어 사춘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커리어 사춘기를 겪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번도 커리어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시기를 겪는 나 자신을 내가 알아주세요. 보통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그 시간에 충분히 몰입해야 해요. 조급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다 보면 나중에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걸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커리어 설계 시, 시기별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빠르게 성장의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상태라면, 말 그대로 내가 성장하고 실력을 키우는 데 지금의 일터가 도움이 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봐야 해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일’이라고 해봅시다. 1년 뒤 내 일의 기대수익률은 얼마일지, 즉 지금 하고 있는 일을 1년 정도 더 하면 내년 이맘때쯤 무엇이 달라져 있을지 생각해봐야 해요.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내게 남는 교훈은 무엇인지, 내가 투자자라면 우리 회사에 투자할 것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어야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계속 투자할 수 있을 텐데요. 자발적으로 내 시간을 쓰며, 관심을 갖는 일에 대한 탐색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리드하며 또 다른 일로 연결해야 하는 시점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는지,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했던 일 중 어떤 것에 가장 마음을 쏟는지 정리해보길 추천합니다.”
김나이 “커리어 사춘기, 모범생보다 모험생 되세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흐름이 과거에 비해 점점 두드러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과 커리어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성장, 의미, 재미, 인간관계, 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2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지, 왜 그것을 꼽았는지 늘 여쭤보는데요. 이 질문을 반대로 경영진에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을지 맞춰보시라고요. 돈이나 워라밸을 꼽았을 것 같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실제 일하는 분들의 답은 좀 달라요. 성장이나 의미, 재미를 꼽는 분들이 많거든요. 조용한 퇴사는 바로 이러한 생각 차이에서 출발하고요.

저는 처음부터 조용한 퇴사를 생각하며 회사를 다니는 분들을 뵌 적이 없습니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어떤 계기로 입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회사가 시켜서 해야 할 때, 내가 열심히 한 일에 대해 공정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사내 의사결정 체계로 인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손해 보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손해 보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돈+알파(α)’가 함축돼 있기도 합니다. 일을 하며 얻을 수 있는 자부심, 사회적 기여, 가치 등은 돈으로 따지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승진’이나 ‘연봉’이라는 말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요즘 세대(MZ)’와 ‘이전 세대’의 일에 대한 마인드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지적이 ‘밈(meme: 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소비되기도 합니다.
“이전 세대에 비해 요즘 세대의 마인드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취향, 이야기, 마인드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세대 간 마인드 차이가 아니라 개인 간 마인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 기존 세대와 달라진 데에는 ‘저성장의 일상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 세대는 회사가 성장하면 나도 성장할 수 있는 세대였죠.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도,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었던 시대였어요.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 차도 사고 집도 사는 것이 가능했던 경제의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나인 투 식스(9 to 6)’가 아니라 ‘식스 투 나인(6 to 9)’이 가능했던 이유에는, 회사에서 보내는 내 시간과 에너지가 나에게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저성장의 일상화가 시작되고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 이상 회사가 나를 지켜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어떤 회사가 어떤 경로를 밟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통로가 너무나 많아졌어요.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시대, 더 이상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거나 상명하복을 따르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결정이 된 것이죠. 이들은 누가 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가, 우리 회사는 그 변화를 리드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앞으로는 규모보다 영향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디가 잘 맞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하셨는데요. 최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적극성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두려움이 커지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들은 늘 뽑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결국 뽑을 사람에 대한 기준이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정규 분포의 평균 정도에 해당하는 분들 혹은 정답을 빨리 맞추고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리서치를 잘하는 ‘모범생’이 좋은 인재였죠.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예전과 같은 일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본 사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집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고객이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죠. 모범생보다 ‘모험생’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나는 그동안 어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 왔는지, 지금 하는 일에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경기 침체로 채용 시장이 얼어붙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시장은 ‘뾰족한 실력 갖춘 모험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나를 위한 일 자산을 쌓아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재직 당시 그 회사의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지 생각해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 시장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 경쟁력 있는 인재 채용, 조직 문화 등 그 회사가 160년 넘게 지속해 올 수 있는 비결이 분명 있거든요.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면 버틸 힘이 좀 더 나지 않을까요.”
김나이 “커리어 사춘기, 모범생보다 모험생 되세요”
지난 몇 년간 직장인들이 N잡(job)에 뛰어드는 트렌드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올해가 중요한 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지난 몇 년간 N잡, 투자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내 것이 아닌 것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사이드 프로젝트나 N잡을 하는 세상이라 너도나도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그중에서 끝까지 못 해낸 것도 있을 거고, 올해처럼 경기가 하강 국면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실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경우도 있었을 거고요. 물론 시도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들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자기만의 원칙에 대해 생각해볼 틈 없이 달린 건 아닐까’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자기만의 원칙이 있다면 여러 프로젝트가 결국 나를 위한 연장선상에 놓인 것들이죠. 그 원칙을 위해 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여러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죠. 덕업일치, 추가 수익 등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것이라는 걸 올해 짚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9월 헬스케어 스타트업 가지랩의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게 되셨죠.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나요.
“변곡점에 있는 개인과 기업, 성장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만큼 성장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저 자신도 성장의 기울기를 높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 있어야 진짜 일을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미래에는 개인의 커리어를 기업이 신경 쓰고 리더들의 질문이 달라져야 조직도 성장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강력한 개인’을 꿈꾸며 일하지, ‘조직에 충성하는 나’를 상상하지 않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이 실험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강력한 개인들이 모여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 문화를 완전 초기 단계부터 만들어 가며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사이클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책 내용 중 아주 뚜렷하진 않더라도 북극성 좌표를 갖고 있는 게 좋다는 조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의 개인적인 북극성 좌표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구성원들의 커리어 방향성을 설계하고 전문성을 뾰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일터의 환경과 리더의 질문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사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 신기하게도 리더들이나 스타트업 대표들로부터 구성원의 커리어 성장을 위해 회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어요.

다음으로는 ‘커리어 웰니스’라는 새로운 화두도 던져보고 싶습니다. 저는 커리어 웰니스를 일과 삶에서 충족감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하는데요. 직장인들은 ‘회사병’이라고 일컫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이 회사병에 대한 제대로 된 솔루션이 없었는데, 의학적·커리어적으로 솔루션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후반, 1990년대생들이 리더가 돼 갈 때 필요한 리더십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본질은 달라지지 않더라도 변화하는 시대에 리더의 질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와 더불어, 그들을 위한 회복력 수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로 일하며 제가 느끼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일하는 사람은 다 외롭다는 거예요. 앞으로의 시대는 점점 더 변화가 가속화되고 개인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일하는 나의 기쁨과 슬픔, 번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디에서 답을 구해야 할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하는 나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커리어 사춘기’를 겪고 있을 독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커리어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라면, 이런 저런 고민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다니실 것 같습니다. 그럴 땐 유튜브로 자기 계발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조언을 듣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먼저 꼭 가져보세요.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처음부터 자신만의 길을 찾기는 힘드니 고민할 시간에 시도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효율을 추구하고, 삽질을 피하기 위해 많이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 번 더 시도하고 실행하는 것이 더 빨리 답을 찾는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변곡점을 지날 땐 모범생보다 모험생이 돼야 하고요. ‘이거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다 이어지는 지점이 있겠지’라며 자신만의 길을 향해 계속 잽을 날려보세요. 지금까지 하던 일에서 잠깐 옆으로 벗어난다고 크게 잘못되지 않습니다. 거기서 나와도 안 죽어요. 그동안 열심히 해 온 자신을 믿어주세요.”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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