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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한경 머니 기고=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노후에 생활비는 어떻게 하죠?” 정년을 앞둔 직장인에게 이렇게 물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이 집이다. 집을 빼면 노후자금 재원이라고 할 만한 게 국민연금과 퇴직금 정도 남는 사람이 대다수다. 결국 대다수 은퇴자들이 기나긴 은퇴 생활 기간을 버텨내려면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든 유동화해서 생활비 재원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집이라는 것은 유동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은퇴 생활을 시작하면서 현금, 예금과 같은 금융 자산을 먼저 생활비로 사용한다. 현금, 예금 등 금융 자산이 모두 소진되면 집 1채만 덩그러니 남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팔면 생활비는 마련할 수 있겠지만 살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으면 생활비를 마련할 뾰족한 수가 없다. 내 집에 살면서 생활비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세계 최장수자라면 그 해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주택 매매 대금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프랑스의 비아제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잔 루이스 칼망 여사는 세계 최장수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인물이다. 그녀는 1875년 2월 21일에 태어나 1997년 8월 4일까지 122년 164일을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기나긴 노후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했을까.
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칼망 여사는 90세가 되던 해 그녀가 살고 있던 집을 팔았다. 그녀가 팔았던 집은 당시 시가로 10억 원 상당하는 주택이었다. 칼망 여사에게 주택을 팔라고 제안한 것은 앙드레 라프레라는 변호사였다. 당시 47세였던 라프레는 칼망 여사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 있는 집을 팔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칼망 여사와 라프레 변호사 간 주택 매매 계약은 고령자가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연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주택연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주택연금은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주고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해주는 형태인 데 반해, 칼망 여사와 라프레 변호사의 계약은 개인 간 거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랑스에는 개인 간 부동산 거래에서 매매 대금을 연금처럼 지급할 수 있는데, 이 같은 형태의 부동산 매매 계약을 ‘비아제(viager)’라고 한다.

비아제는 매도인이 죽어야 매매 계약이 종결된다. 매도인이 살아 있는 동안 매수인은 계속해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중도에 연금 지급을 거부하면 매매 계약은 무효가 된다. 그렇다면 라프레 변호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칼망 여사에게 주택을 팔라고 권유했을까. 당시 90세였던 칼망 여사의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봤을 것이다.

90세이면 당시 프랑스 여성의 평균수명을 넘기고도 한참을 더 산 셈이다. 그래서 라프레 변호사는 칼망 여사의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칼망 여사가 계약 후 1년을 살면 라프레는 매매 대금으로 4800만 원만 지급하면 된다. 100세까지 살더라도 4억8000만 원만 지급하면 되니까 손해는 아니다. 칼망 여사가 110세까지 살면 9억6000만 원을 지급하게 된다. 어쨌든 라프레 변호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매매 계약을 하고 30년이 지났을 때 라프레 변호사가 먼저 죽는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77세이고 칼망 여사는 120세였다. 라프레가 죽고 2년이 더 지나서야 칼망 여사가 사망한다. 결국 라프레는 자신이 산 집에 입주도 못해보고 사망한 셈이다. 계약 당시 프랑스 여성의 평균수명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칼망 여사가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라프레 변호사의 생각이 틀렸던 셈이다.

칼망 여사의 생각은 어땠을까. 누가 보더라도 손해 볼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 법한 계약을 한 이유는 뭘까. 가난하게 살다가 죽어서 집 1채 덩그러니 남겨 놓는 것보다는 살아 생전에 생활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주택 담보로 연금 받을까
주택을 활용해 노후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으로 프랑스에 비아제가 있다면 한국에는 주택연금이 있다. 비아제가 개인 간 거래라면 주택연금은 국가가 보증하는 방식이다.

비아제가 주택 매매 방식이라면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주택 소유자 또는 주택 소유자의 배우자가 만 5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부부 합산 기준으로 공시가격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 주택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55세 이상 주택 소유자가 한국주택금융공사에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주택연금을 신청하면, 주택금융공사가 은행에 보증서를 발급하고, 은행이 주택연금 신청자에게 월지급금(연금)을 지급한다. 연금 수령 방식은 가입자가 일정 기간(10·15·20·25·30년)을 선택해 해당 기간 동안에만 연금을 받는 확정기간 방식과 가입할 때 정해진 연금액을 평생 동안 수령하는 종신지급 방식이 있다.

종신지급 방식은 정액형, 초기증액형, 정기증가형으로 나뉜다. 정액형을 선택한 가입자는 본인과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동일한 연금을 수령한다. 초기증액형을 선택하면 초기 일정 기간(3·5·7·10년 중 선택) 동안은 정액형보다 연금을 많이 받다가 이후부터는 당초 월수령액의 70% 수준의 연금을 받는다. 나중에 연금을 더 받으려면 정기증가형을 선택하면 된다. 정기증가형을 선택한 가입자는 3년마다 4.5%씩 연금을 증액해서 수령한다.
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거주하고 있는 집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담보 제공 방법에는 저당권 방식과 신탁 방식이 있다. 저당권 방식을 선택한 가입자는 담보주택에 근저당권 설정 등기를 해야 하는데, 이때 등록면허세와 지방교육세 등을 부담해야 한다. 비용은 70세 가입자를 기준으로 3억 원 주택은 36만7000원, 5억 원 주택은 73만4000원, 9억 원 주택은 170만2000원 정도 된다.

이 같은 비용 부담을 덜려면 신탁 방식을 택하면 된다. 신탁 방식은 주택 소유자(위탁자)가 월지급금을 수령하기 하기 위해 주택을 주택금융공사(수탁자)에 신탁(소유권 이전)하는 방식이다. 신탁 방식은 저당권 방식에 비해 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 담보주택의 가격과 관계없이 70세 가입자를 기준으로 70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비용 이외에도 신탁 방식이 저당권 방식에 비해 편리한 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종신지급 방식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가입자와 배우자가 살아 있는 한 계속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다만 저당권 방식에서 주택 소유자가 먼저 사망한 경우 배우자가 계속 연금을 수령하려면 담보주택의 소유권을 취득해야 한다. 그런데 공동상속인인 자녀가 반대해서 배우자가 담보주택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면 월지급금 지급이 중단된다. 하지만 신탁 방식에서는 가입자가 사망하면 자동으로 배우자에게 연금이 승계된다.

저당권 방식에는 보증금 있는 임대가 안 되지만 신탁 방식에서는 가능하다. 주택연금을 받는 동안 가입자 또는 배우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담보주택 주소지와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입원, 요양소 입소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주택금융공사의 승인을 받아 담보주택 이외의 다른 주소로 주민등록을 이전할 수 있다. 이때 저당권 방식 가입자는 담보주택을 보증금이 없는 순수 월세 방식으로만 임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신탁 방식 가입자는 보증금 있는 임대도 가능하다.
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주택을 줄여 노후자금 마련할까
살고 있던 주택 규모를 줄여서 노후자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 먼저 은퇴 이후에 계속해서 큰 집에 살 필요가 없어졌다. 통계청 장래가계추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34.9%, 부부 가구 비중이 34.7%나 된다. 고령 가구 중 70%가 혼자 아니면 둘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은퇴하면 직장 근처에서 계속 살 필요도 없다. 주택 규모를 줄이고 주거지를 변경하는 주택 다운사이징을 통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고령자가 주택 규모를 줄여서 마련한 자금을 연금계좌(연금저축·IRP)에 납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와 관련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고령 가구가 보유 주택(종전 주택)을 팔고 종전 주택보다 낮은 가격의 주택을 취득한 경우 그 차액을 연금계좌에 추가로 납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부 중 1명이 60세 이상이고, 부부 합산을 해서 1주택자이고, 종전 주택의 기준시가가 12억 원 이하이면 대상이 된다.

연금계좌 가입자는 한 해 최대 1800만 원까지 저축할 수 있는데, 이와 별도로 주택 다운사이징을 통해 마련한 자금에 대해 최대 1억 원(누적 기준)까지 추가로 납입할 수 있다. 주택 다운사이징 차액은 올해 7월 1일 이후부터 연금계좌에 납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주택 고령 가구가 시가 10억 원의 주택을 팔고 시가 8억 원 주택을 사서 이사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주택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2억 원의 차액 중에서 최대 1억 원을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납입할 수 있다. 시가 10억 원 주택을 팔고 시가 9억5000만 원 하는 주택을 사서 이사하는 경우에는 5000만 원을 연금계좌에 납입할 수 있다.

주택 다운사이징 차액을 연금저축과 IRP에 납부하더라도 세액공제 혜택은 받을 수 없다. 세액공제 혜택이 없다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우선 소득세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주택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차액을 일반 금융 상품에 투자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에 15.4%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하지만 주택 다운사이징 차액을 연금계좌에 납부하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운용수익에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3.3~5.5%)의 연금소득세가 부과된다.
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따른 부담도 덜 수 있다. 한 해 이자와 배당소득이 2000만 원이 넘는 사람은 2000만 원 초과 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 한다.

종합소득세는 누진세율을 적용해서 과세하므로 근로소득, 사업소득 등 다른 소득이 많은 사람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금계좌에서 발생한 연금소득은 어떻게 과세할까.

운용수익을 연금으로 지급할 때 3.3~5.5% 세율로 연금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그리고 한 해 연금소득이 1200만 원을 넘는 경우 해당 연금소득 전부를 다른 소득과 합산해서 종합과세 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연금계좌 가입자가 종합과세 대신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분리과세를 선택하면 16.5%의 단일 세율을 적용해 과세한다. 따라서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많아서 이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사람은 분리과세를 선택하면 된다.

건강보험료 부담도 덜 수 있다. 은퇴자들 중 상당수는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서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지역건강보험가입자는 소득, 재산, 자동차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에는 이자·배당·사업·근로·연금·기타소득이 있다. 이 중 이자와 배당소득이 한 해 1000만 원이 넘는 경우 해당 소득 전부에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연금계좌에서 발생한 개인연금소득에는 아직까지 건강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노후에 집 1채 남았다면, 생활비 마련은
주택 다운사이징과 주택연금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까
주택 규모를 다운사이징 하면서 동시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만 60세 은퇴자인 A씨가 공시가격 10억 원 주택에 거주한다고 해보자. A씨는 거주주택 이외 다른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A씨는 현 상태에서는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주택 가격이 10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공시가 9억 원 이하인 주택을 매수해 이사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종전 주택 매도와 신규 주택 매수 과정에서 발생한 차액 중 최대 1억 원을 연금계좌에 이체하고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산 주택의 공시가격이 9억 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