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시즌제 드라마, ‘모범적’으로 안착하나
[한경 머니 기고=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 사적 제재의 금지는 근대적인 법치국가의 기본 전제다. 고대의 성문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동태복수를 용인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법의 판단에 의거한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한다. 사적인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폭력의 끊임없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전화 한 통이면 OK!’인 ‘복수대행 써-비스’를 표방하는 SBS 드라마 <모범택시>도 그중 하나다. 2021년 <모범택시>는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에 힘입어 SBS 금토드라마 역사상 시청률 4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즌2로 돌아왔다.

‘모범’적으로, 총알처럼 택시를 모는 해결사
“이 자가 죽어서 당신의 고통이 사라졌습니까? 아직도 복수하고 싶지 않나요?” 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파랑새재단과 복수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지개운수의 대표인 장성철은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 이후 자포자기 상태가 된 김도기에게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명함을 내민다.

“아직도 경찰, 검찰, 판사들의 정의를 믿습니까? 그들에게 정의를 맡길 수 있습니까? 난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준비해 왔어요. 맞서 싸우기 위해서….”

김도기가 그 명함을 받아드는 순간, 시청자 또한 장성철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적 제재는 법으로 금지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해자의 억울함이 만연한 현실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이 사회의 법은 내가 아는 정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운다. 가슴이 미어지는 고구마 같은 현실에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를 들이키고 싶은 마음은 속성으로 정의를 구현해준다는 그 택시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요청한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다음에는 분노하고 나아가서는 타협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다가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폭력인 ‘죽음’ 앞에서 겪게 되는 감정상태의 변화를 단계화한 이른바 ‘분노의 5단계’ 설이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모든 부당한 사건 앞에서도 우리는 이와 같은 심리 변화를 겪는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은 옛일이 된 지 오래다. 폭행 사건을 비롯한 범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한시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포기할 정도로 벼랑에 몰리는데 가해자들은 죄책감조차 없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권리를 만끽하는 부조리는 공공의 분노를 부추긴다.
네버엔딩 시즌제 드라마, ‘모범적’으로 안착하나
“난 단 하루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어요. 용서? 난 절대 용서하지 않아.” 대표 장성철을 비롯해 해커 고은, 엔지니어 최주임과 박주임, 무지개운수의 ‘모범택시’ 팀은 모두 피해자 가족으로 특정 범죄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수행하는 복수대행 서비스는 사적인 절망을 공적인 정의 구현을 통해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범택시를 운전하는 드라이버가 고객의 요청을 받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내용의 드라마 <모범택시>는 까를로스와 크크재진의 19금 웹툰 <모범택시>를 원작으로 삼는다. 공중파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원작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완화되고 ‘공중이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주제의식이 부각되기는 했지만, 드라마 <모범택시>의 높은 시청률은 우리 사회의 법질서가 진실한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 드라마는 원작 웹툰의 기본 설정 위에 공장 노예 사건, 학원 폭력 사건, 데이터 회사 직원 폭행 및 불법 동영상 유포 사건, 보이스피싱 조직범죄, 불법 장기매매 사건, 연쇄살인 사건 등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덧입혀 폭넓은 공감대를 구축함으로써 여러 사회문제를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대립하는 가치를 지닌 두 사람, 모범택시 드라이버 김도기와 그를 추적하는 강하나 검사는 각각 사적 감정에 대한 위안과 공적 가치에 대한 추구를 대변한다.

“법이 뭔가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분쟁을 공평하게 해결하기 위한 기본 근거로서 법률, 법전, 법규, 법령이 있습니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의 오리지널 캐릭터 강하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고군분투, 좌충우돌하는 열혈검사다. 그러나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는 그녀는 법으로 정의가 오롯이 구현된다고 믿는 순진한 책상물림은 아니다.

“법원권근,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까운 현실에서 위기에 빠진 힘없는 약자에게 법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늦은 밤 공사장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현장에서라면 벽돌과 철근, 대못이랑 목공용 연장을 들고 맞서야 한다고 꿋꿋이 주장하는 그녀의 면접 답변은 현행의 법 행정 체계가 사람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그녀는 이 사적 제재 서비스의 고객이 된다.

“내 방식대로 안 되면 그쪽 방식 따를 게요.” 물론 사법 체제의 수호자인 검사로서 그녀에게는 마지노선이 존재한다. “김도기 씨가 그랬잖아요. 자격 없는 자의 복수는 테러에 불과하다고.” 드라마 <모범택시>는 이렇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또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경계에 선 채 정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그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여전히 그처럼 ‘모범’적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치열해지는 플랫폼 경쟁,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드라마

올해 드라마 라인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확실히 <모범택시2>, <낭만닥터 김사부3>, <소방서 옆 경찰서2>와 같은 시즌제 드라마들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 <천원짜리 변호사>, <재벌집 막내아들> 등 지난해 주목받았던 몇몇 드라마도 열린 결말로 갈무리되면서 시즌2에 대한 기대 어린 의심을 받았다. <유미의 세포들2>, <미씽2>, <구미호뎐2>, <아스달 연대기2>, <경이로운 소문2> 등 공중파뿐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도 시즌제가 급증하고 있다.

<환혼>, <조선 정신과의사 유세풍>, <더 글로리>, <아일랜드>처럼 파트를 나눠서 방송하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좋거나 나쁜 동재>처럼 스핀오프가 예정된 경우도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장수드라마 <수사반장>의 프리퀄인 <수사반장 1963>도 이와 같은 원작 스토리의 확장 사례로 꼽힌다.

드라마에서 타임워프, 회귀물, 환생물 등 판타지 요소와 장르 관습 수용이 늘어나고, 범죄물, 형사물, 법정물 등 장르가 강화되면서 사건 중심의 에피소드 확장이 가능해진 것도 시즌제를 추동하는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OTT를 비롯한 플랫폼의 확장과 치열해지는 콘텐츠 경쟁이다.

원작을 넘어서는 속편은 없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속편은 대부분 전편의 유명세와 인지도를 등에 업고 만들어진다. 따라서 전편에 비해 신선한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작을 뛰어넘는 완성도나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시즌제 드라마들은 탄탄한 원작 서사와 캐릭터 설정, 완성도 높은 세트와 인지도가 확보된 캐스팅, 무엇보다 든든한 팬덤의 지지를 담보할 수 있다. 이 물적·인적 인프라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는다. 흥행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낙관할 수 있다는 것은 제작 차원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시즌제 드라마들이 점점 더 자주 더 많이 기획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들이 시즌제 드라마로 각광을 받는 이유도 그렇게 설명될 것이다. “치워야 할 쓰레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네버엔딩 스토리만큼 확실한 콘텐츠는 없다.

이야기의 매력은 엔딩에서 온다
이야기의 매력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다른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답니다.” <천일야화>의 주인공 셰에라자드는 그 네버엔딩 스토리 덕분에 자신을 비롯한 꽃다운 처녀들의 수없는 목숨을 구했고, 나아가 술탄의 왕비가 돼 도탄에 빠졌던 나라를 되살려냈다.

일일연속극과 주말연속극도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힘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드라마의 꽃이라 불리는 미니시리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시즌제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도 흥행 드라마는 회차를 늘리는 방식으로 시청률 확보에 이바지했다. 때로는 16부작으로 기획된 미니시리즈들이 20화 또는 24화까지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회차가 늘어나는 경우 서사의 완결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마치 과적 차량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설계도를 무시한 증축이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의 최대 원인이 되는 것처럼, 예상 경로를 벗어난 서사는 주제의식의 끈을 놓고 폭주하기 마련이다.

넷플릭스가 OTT 플랫폼의 최강자로 부상하면서 K-드라마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가장 ‘뜨거운(hot)’ 콘텐츠가 됐다. OTT 플랫폼의 사용자들이 K-드라마를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관철하는 완결된 이야기였다.

캐릭터의 감정이나 서사의 전개에 몰입할 때쯤 ‘to be continued’를 띄우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미국식 악마의 편집이나 최소 30회가 기본인 중국식 고장극(古裝劇, Chinese costume drama), 심심하게 보기는 괜찮지만 주목할 만한 사건 하나 없이 싱겁게 끝나는 짤막한 일본 드라마와 비교하건대, 롤러코스터를 타듯 짜릿한 기승전결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순도 높은 감정의 칵테일을 선사하는 K-드라마는 낙인과도 같이 뚜렷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시즌제처럼 연속적인 시리즈를 기획하거나 단일 서사를 몇 개의 파트로 나눠 상영하는 것은 확장된 플랫폼에 적용하기에 유리한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그러나 콘텐츠의 확장을 위한 전략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해친다면 해당 콘텐츠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야기의 완결성은 엔딩에 의해 결정된다. 복수라는 사적 제재는 법치국가의 테두리 안에서는 합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김도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 약속했던 대로 강하나 검사를 찾는다. 수갑을 채우라고 스스로 손을 내미는 그 앞에서 그녀가 내린 검사로서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김도기 씨 당신을 체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증거가 불충분해서.” 강하나는 김도기가 범법자가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상참작할 거리가 있다. 법은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 백 명의 용의자를 선처한다. 그 값싼 용서에 의해 때로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고 그들의 가족들은 가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은 채 살아간다.

강하나는 그들을 지킨 건 법이 아니라 김도기였다는 말을 건넨다. 김도기의 범법을 묵인한 행위를 책임지기 위해 사표를 쓴 강하나에게 차장 검사는 솔선수범해 먼저 사표를 던지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남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백성미 같은 거물급 딱 백 놈만 더 잡고 와.” <모범택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강변한다.

누군가 그랬다. “한국인의 종특은 해피엔딩.”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은 이야기를 끝맺는 대표적인 2가지 방식이다.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는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이 있다. 사실 ‘해피엔딩’은 열린 결말로도 닫힌 결말로도 가능하다. 문제의 관건은 열린 결말이 설레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에게 은은한 여운을 남기느냐 아니면 기대를 배반하는 무책임으로 찝찝함을 남기느냐다. 확실한 끝맺음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오히려 재미를 기대했던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시즌2로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하던 이야기는 제대로 갈무리하라는 시청자들의 아우성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네버엔딩 시즌제 드라마, ‘모범적’으로 안착하나
글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 l 사진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