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토리
당신은 부자 입니까.

5. 한국 부자들의 사회공헌 성적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세상을 위해서 가진 것을 쓴다는 프랑스식 표현이다.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희사한다’ 혹은 ‘이바지한다’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유식한 표현은 ‘정승처럼 쓴다’이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부자학의 개념들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정리해봤다.
[Big story]한국 부자들의 사회공헌 성적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사회봉사를 통해 발현된다. 이는 외국과 우리나라 부자들 간 차이점이 많이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첫째, 통상 외국의 경우 부자 가족의 자녀들은 전쟁이 나면 자원해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왕족은 장교로 출전해서 목숨을 바쳤고, 스웨덴의 명문가 발렌베리 가문의 자녀들은 그룹을 이끌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군사관학교를 거쳐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가문의 자녀들이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서 전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형태는 있는 것을 팔아서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학자인 알렉시스 디 토크빌이 주장한 사회봉사 이론이 빌게이츠재단 설립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신부님들이 주도하고, 있는 분들이 도와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기업형 사회적 기업들이 번창했다. 전 세계에 빈민층 구제하는 부자들의 사회봉사재단이 수백만 개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결과물은 문화적 유산의 개발과 보존 그리고 세계시민에게 문화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부자의 문화 공헌을 의미하는 프랑스의 메세나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부자들의 후원을 통해 일어났다. 유럽 곳곳의 문화적 유물을 미국 부자들이 매입해서 배로 미국으로 옮겨서 보관하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외국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략적인 성적표는 어떠할까. 첫째, 군사적 참전에서는 그저 그런 정도다. 임진왜란 의병을 일으킨 의인 집안들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투입해서 항일운동을 지원한 김용환 선생을 비롯한 공헌 집안들이 꽤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우리나라의 많은 있는 집 자녀들이 군대를 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둘째로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부자 조직들의 사회봉사 단체도 상당히 있다. 불교, 천주교와 기독교 종교단체들의 사회봉사 식단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업을 사회 도움의 기본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사용하는 위선봉사자들도 상당히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좀 있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 돈을 내어서 밥 봉사를 한다는 명목하에 신문과 방송에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봉사를 빌미로 유명세를 타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는 사람들의 행위를 ‘공명함정’이라고 필자가 개념화했다.

셋째, 문화적 창조를 지원해서 많은 정신적 풍요함을 세상에 제공하는 그런 봉사를 하는 우리나라 부자 가문들도 있기는 하다. 신라의 문화 발전 그리고 고려청자가 그랬고, 일제강점기의 간송 전형필 가문의 헌신도 주목할 만하다. 요새 재벌 집안들의 부인들이 메세나 운동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미술관 봉사를 한다는 있는 집들의 일부가 무자료 재산 빼돌리기의 목적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무엇보다 돈에 대한 탐욕이 확 줄어들어야 우리나라식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부자시민행동이 제대로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부자들이 향후 지켜나가야 할 사회봉사는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첫째, 성실성이다. 성실성은 빈손으로 물질을 상당히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물려받은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손과 몸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돈 버는 능력이 탁월해도 버는 탐욕을 줄여서 필요한 정도만 버는 사람들이 참 부자다. 즉,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는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을 행하는 것이다.
[Big story]한국 부자들의 사회공헌 성적표는
일례로 음식점으로 대박을 낸 한 사장님이 “이 정도 벌었으면 충분하다”며 가맹점 사업을 안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필자가 “더 벌 능력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라며 그분 음식점의 경영 평가 결과를 알려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더 벌면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겠지요.” 그야말로 참 부자의 면목을 지니신 분이다. 또 다른 분은 주식 투자 고수다. 그는 주식 투자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만 자신이 벌 수 있는 것의 10분의 1도 벌지 않는다. 그저 가족들에게 줄 정도만 버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이랬다. “제가 많이 벌면 장바구니 아주머니들이 장을 못 보고 동학개미들이 등록금을 날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할 것인데요.”

인류 역사상 요새 화폐 단위로 가장 큰 재물을 가졌다는 아프리카의 만사무사왕은 스스로 벌고 어려운 분들에게 많이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왕의 사후에 왕자들의 무능 다툼으로 다 말아먹었다. 성실하지 않은 재산은 연기와 같다.

둘째, 정신의 초점을 이타심에 두어야 한다. 이기심을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많은 이기심이 범죄의 근원이다. 이타심은 세상의 찬사를 받는다. 이기심은 죄악시 되고 감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다.

이타심으로 충복향을 해야 한다. 충복향이란 필자가 만든 우리말 개념으로 새로운 가치 추구에 거의 완전 몰입해서 성취한다는 것이다. 충복향이 물질을 만드는 원천이다. 이타적 충복향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세상에 이바지하면서도 풍요로운 여유를 만들 수 있다. 내가 돈을 버는 목적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세상이 기뻐한 결과로서 나에게도 물질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체득해야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썩은 고기를 파는 점포가 있다고 하니 개인 돈을 꺼내어서 주면서 모든 고기를 사오라고 하더니 땅에 묻었다고 한다. 자기 공장 내부의 아스팔트 깔다가 공장 밖의 시골 도로에도 개인 돈으로 아스팔트를 깔아주었다고 한다. 어느 한의원 원장이 유언으로 한의원 외상장부를 다 태우라고 했다. 한의원 원장님 사후에 그 한의원은 세금 많이 내기로 유명한 한의원으로 번창했다고 한다.

셋째, 부자시민행동(대한민국식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공을 위해서는 종교심이 충만해야 한다. 이슬람교에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500년 먼저 천국에 간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이슬람교 이맘(이슬람 목사)이 내게 한 말이다. <논어>에 있는 사람의 돈으로 밥을 10번 얻어먹으면 노예가 된다고 적혀 있다. 있다고 너무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아들에게 부처님이 황금을 버리고 오라고 하셨다는 것대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돈돈 하기보다는 남들을 위하라는 가르침이다. <성경>의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겸손기부를 수행하라는 의미다.

경주 최부잣집의 가장 큰 어르신과 어느 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식사와 음주를 하면서 수많은 정신 경험을 교류했다. 그때 들은 말이다. 동학을 만드신 최제우 창시자께서는 가정에서부터 평등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셨다. 그는 가부장의 기득권을 버리고 부부 평등과 남녀 평등을 몸소 실천했다. 그 예로 데리고 있던 두 여종의 족쇄를 풀어주면서 한 사람은 며느리로, 또 한 사람은 딸로 맞이하기까지 했다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경주 최씨 집안 큰 어른의 품격이 아닐까.

글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