➀사이판 ②두바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진정한 휴식을 원한다면 포스트 코로나에 다시 하늘길이 열린 만큼 직접 해외의 자연을 걷고 체험하는 트레킹 일주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4개국 특색있는 트레킹 명소를 소개한다. [올드 맨 바이더 시ⓒ사이판 어드벤쳐]‘슬로 라이프’ 트레킹 천국
사이판, 올드 맨 바이더 시
한국인들은 여행에서도 부지런하다. 일상탈출과 힐링을 앞세우지만,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현지에 가서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어디서 사진을 찍을지, 돌아올 때 들러야 하는 쇼핑몰 등등 하나에서 열까지 벅차지 않은 것이 없다. 각종 여행 블로그와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그럴싸한 게시물들도 여행자들의 마음을 더욱 재촉한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조소한다. “가장 완벽한 여행은 타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 존재한다”고. 이쯤에서 우리 한 번 솔직해지자. 과연, 우리는 정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왔을까. 타국의 일상에서 얻는 생경한 에너지, 휴식 그리고 추억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경험했을까. 어쩌면 사람들이 해외여행에 트레킹을 더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사이판.’ 가족여행으로, 신혼여행지로 혹은 그 어떤 경위로든 지상낙원이 펼쳐질 것만 같은 그곳에서 진짜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일상으로. [올드 맨 바이더 시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중년 여성이 반려견과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김수정 기자]
흔히 사이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는 ‘그로토(Grotto)’, ‘마나가하 아일랜드(Managaha Island)’, ‘타포차우산(Mt. Tapochao)’, ‘라우라우 비치(Lau Lau Beach)’ 등을 꼽을 수 있다. 날씨요정만 도와준다면 하나같이 아름다운 사이판의 얼굴을 드러내는 곳들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삶 속 숨겨진 트레킹 장소는 이 밖에도 수없이 많다.
사이판의 나이트라이프를 대표하는 갓 파더스 바(God Father’s Bar)에서 만난 사이판 태생의 남매 아일라(Ila)와 브랜든(Branden)은 사이판의 삶에 대해 “트레킹하고, 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휴대전화 속 사진첩에도 사이판 곳곳에 숨겨진 섬과 산을 따라 걷고, 수영하며 여가를 보낸 추억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19년째 사이판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한 필리핀 출신의 엔젤(Angel)이 말하는 사이판 일상도 그들과 비슷했다. ‘슬로 & 심플 라이프(slow & simple life)’의 전형이라고 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사이판 어딜 가도 누구 하나 급할 것도, 재촉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이판이야말로 ‘마음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곳’이라고도 했다. 그 ‘여유’와 ‘지루함’ 사이에서 트레킹은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가까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보였다.
특별한 준비물도 필요 없다. 그저 물과 맥주, 운동화(사이판 원주민들은 슬리퍼만으로도 충분하다고)만 있다면 사방이 트레킹 천국인 곳이 사이판이었다. 그중 아직은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에게 덜 알려진 올드 맨 바이 더 시(Old Man By the Sea)는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숨은 트레킹 명소다.
이름처럼 할아버지 얼굴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이 해변을 찾아가는 여정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가라판 시내에서 동쪽으로 킹피셔 골프 링크스(Kingfisher Golf Links)를 향해 자동차로 15~20분 정도 이동하면 길가에 ‘올드 맨 바이 더 시’ 간판을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이 이정표를 시작으로 숨겨진 해변을 찾아 숲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올드 맨 바이더 시로 출발하는 곳에 놓여진 이정표. ⓒ김수정 기자]
초록 빛깔이 우거진 숲을 걷다 보면 흡사 정글탐험을 하듯 갖가지 나무 덩굴도 나타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트레킹 손님들을 맞이한다. 흡사 영화 <아바타> 속 세상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날것의 유기체들과 맑디 맑은 공기를 원없이 들이마시며 걷다 보면 날숨에 온몸에 쌓인 독소마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산행과 산책, 그 중간 즈음의 발걸음으로 숲을 20~30분 걸었을까. 숲속 통로 끝에 밝은 빛이 쏟아지더니 그림 같은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발밑에는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처럼 초록색 풀길이 해변까지 늘어졌고, 눈부신 하늘과 바다 위에 사진으로만 봤던 ‘할아버지 형상’의 거대 바위가 필자를 맞이했다. [숲속 통로 끝에 비로서 나타난 올드 맨 바이더 시 해변. ⓒ김수정 기자]
공교롭게도 이 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고기를 잡으러 망망대해로 떠난 어부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돼 버렸다는 것. 필자에겐 이 전설처럼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는 없지만, 그곳에서 느낀 순간의 감동은 내 마음속 망부석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실제로 사이판 사람들은 이곳을 트레킹 목적으로 오기도 하고, 가족, 연인 혹은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즐기기도 한다고. 특히, 할아버지 바위를 바라보는 편 우측에 작은 동굴이 숨겨져 있는데, 해변의 햇빛을 피해 쉬기에도 금상첨화일뿐더러, 멋스러운 사진을 남기기에도 제격인 장소다. [올드 맨 바이더 시 해변 우측에 위치한 작은 동굴 속 한컷. ⓒ사이판 어드벤쳐]
훗날 다시 사이판을 방문한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이곳에서 꼭 좋아하는 맥주와 음식들을 챙겨와 반나절 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만약, ‘올드 맨 바이 더 시’까지 트레킹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곳 시작점에서 차로 10분이면 정글탐험이 가능한 제프리스 비치(Jeffrey’s Beach)에서 해변을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제프리’라는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을 승리로 이끈 제프리 해링턴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해변 왼쪽에는 악어를 닮은 바위가, 오른편에는 코가 뾰족한 노파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운 모래보다 자갈이 많고, 사이판에서 유일하게 검은 빛깔의 흑운모가 깔려 있어 아쿠아 슈즈를 신는 것이 좋다. [가라판 근처 해변가 모습. 곳곳에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걷거나, 뛸 수 있는 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김수정 기자]
금기를 넘어서는 자연의 아름다움
포비든 아일랜드 [포비든 아일랜드. 마리아나관광청 제공]
올드 맨 바이 더 시에서의 감동이 식기도 전 또다시 필자의 발걸음을 재촉한 트레킹 명소는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많이 알려진 ‘포비든 아일랜드(Forbidden Island)’다. 라우라우 베이 동쪽의 끝, 가파른 절벽 아래 봉긋하게 솟아오른 작은 이 섬은 직역하면 숨겨진 섬이란 뜻인데, 통상 금단의 섬이라고 불린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지만, 올드 맨 바이 더 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길고 험난한 트레킹 코스다. 여기에 사고 위험이 따르는 위협적인 파도 때문에 이곳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현지 가이드와 함께 방문하는 것이 필수다.
오죽하면 이 트레킹 시작점에 거대한 간판으로 ‘당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까지 세워져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간판을 보고도 내심 ‘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필자도 그랬다. 하지만 막상 온몸으로 체험한 이곳의 속살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고, 특히 무릎관절이 약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긴 힘든 코스다.
차를 주차하고 섬이 있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만 30분 이상이 소요되는데, 지형이 무척 험하다. 급격한 경사 코스와 무성하게 엉킨 숲, 때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뽀족한 바위들이 수시로 탐방객들을 맞이한다. 장갑과 트레킹화는 필수고, 돌아오는 길은 이 코스를 다시 올라와야 하는 만큼 체력 안배도 중요하다. [포비든 아일랜드. 마리아나관광청 제공]
다만, 필자에겐 베테랑 가이드가 함께였고, 그의 안내에 따라 들여다본 ‘금단의 섬’은 태초의 야생을 그대로 머금고 있을뿐더러, 트레킹은 트레킹대로, 스노쿨링은 스노쿨링대로, 심지어 숨겨진 동굴탐험까지 할 수 있는 일석삼조 코스였다.
특히, 포비든 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섬과 섬 사이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 수영장인데, 참고로 이 섬에서는 이곳만 수영하는 게 허용된다. 자칫 그 아름다움에 빠져 다른 곳에서 수영할 경우 큰일을 당하기 일쑤라고. 이 천연 수영장에서는 물안경을 끼고 물 속에 고개만 넣어도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물고기들이 넘쳐난다. 또한 옆에 솟아 있는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건 덤. [히든 케이브로 트레킹 하는 엔젤의 뒷 모습. ⓒ김수정 기자]
하지만 이곳의 백미는 역시 ‘히든 케이브(Hidden cave)’다. 여기야말로, 전문 가이드와의 동행이 빛을 발하는 곳이다. 섬 오른쪽에 숨겨진 이 동굴은 사람이 1명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입구에 발을 수직으로 다섯 발자국 정도 내딛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초행자들 혼자서 내려가기에 굉장히 위험한 곳이다. 필자도 가이드의 도움으로 겨우 내려갈 수 있었는데, 깜깜한 굴 안에는 신비로운 샘터 같은 웅덩이가 있었고, 그 위에 내려진 한 줄기 빛은 흡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었다. 여기에 굴 안쪽을 더 들어가면 그야말로 프라이빗한 자연 수영장이 나타나는데 눈앞에는 수시로 치솟는 파도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가이드 엔젤이 말했다. “여기가 내 전용 수영장이야.”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물속에 몸을 담그는 그의 모습을 보니, 사이판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축복이란 이런 것들이겠구나 싶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 누려보는 것. 거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선한 사람들의 미소가 있는 사이판은 ‘슬로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에겐 더없는 트레킹 명소가 될 것이다. 여행의 계절 5월, 진정한 쉼과 힐링을 원한다면 사이판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이색적인 트레킹을 원한다면
두바이, 하타 [하타의 모습. 두바이관광청 제공]
두바이에서 트레킹을? 흔히 두바이 여행 하면 사막투어나 럭셔리 호캉스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바이에서도 보석 같은 트레킹 코스가 숨겨져 있다. 그중 두바이 도심에서 약 90분 거리에 있는 하타는 험준한 산봉우리와 상쾌한 공기가 매력적인 지역으로 모험과 자연을 좋아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여행지다.
하타는 과거 유서 깊은 요새와 소규모 사막 농장이 있던 지역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산악자전거와 수상스포츠 등 다양한 어드벤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탁 트인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며 ‘바위산’을 뜻하는 두바이의 하자르산맥(Hajar Mountains)으로 떠나보자.
붉은색과 회색 빛의 암석이 반짝이는 터키 색 물과 대비되는 믿을 수 없는 천상의 풍경을 선사한다. 활동적이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캠핑 장비를 챙겨 자전거를 타거나 하이킹 코스를 걸으며 그림 같은 풍광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하타의 모습들. 두바이관광청 제공]
이외에도 하타 헤리티지 빌리지(Hatta Heritage Village)에서 과거 두바이의 생활상을 엿보거나 동절기 인기 있는 관광명소인 하타 댐(Hatta Dam)에서 카약을 즐기는 것 또한 두바이의 숨은 절경을 품고 있는 하타에서 두바이의 대자연을 체험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타는 두바이 도심에서 130km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택시나 차량을 렌트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중교통으로도 편리하게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타에는 글램핑, 캠핑카 호텔에서부터 럭셔리 리조트까지 다양한 숙소가 있으므로 다이내믹한 야외 액티비티를 즐기고 이국적인 풍경 속 이색적인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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