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로마와 함께 남해 곳곳을 누볐다.
남자의 로망, 남해를 달리다
페라리엔 ‘로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슈퍼카를 만드는 브랜드는 여럿 있지만, ‘로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브랜드는 오직 페라리뿐이다. 특히 남성들은 페라리에 환호한다. ‘성공한 남자’의 상징이면서 어마어마하게 빠르기까지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페라리가 ‘로망’이라 불리는 으뜸 이유는 다른 자동차 브랜드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페라리만의 문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페라리 고객들은 같은 브랜드의 차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급기야 오너들만의 문화까지 만들어냈다.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페라리 오너스 클럽(Ferrari Owners’ Club)’이 대표적이다. ‘페라리 오너스 클럽’에는 약 30개 국가 1만3000여 명의 페라리 오너들이 활동 중인데, 그 누구보다 브랜드 이미지와 홍보에 앞장서며 수십 년간 페라리가 고수해 온 철학과 문화를 공유하고 전파한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페라리 관련 동호회는 차치하고서라도 페라리가 추구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체험과 시승 프로그램을 연계한, ‘페라리 투어 코리아’와 ‘에스페리엔차 페라리(Esperienza Ferrari)’가 운영된다.
남자의 로망, 남해를 달리다
기자에게도 ‘에스페리엔차 페라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간 여수에서 시작해 남해 구석구석을 누비고 부산에서 마무리 짓는 여정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일정을 함께할 차는 페라리 로마였다. 페라리 로마를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페라리 로마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그랜드 투어러(GT)다. 더군다나 ‘라 누오바 돌체 비타(La Nuova Dolce Vita)’, 즉 달콤한 인생을 콘셉트로 만들었다. 페라리와 함께하는 남해 여행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차가 있을까.
남자의 로망, 남해를 달리다
페라리 로마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페라리의 편견을 잊게 만든다. 공격적인 형상과 과격한 얼굴을 한 슈퍼카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한마디로 매끈하고 우아하달까. 디자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순수미’다. 이를 위해 간결한 형태의 2+2 시트 패스트백 쿠페 디자인을 적용했는데, ‘순수’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완성 짓기 위해 환기구를 포함한 불필요한 디테일은 모두 제거했다.
실내에서도 GT카다운 면모는 돋보인다. 특히 질 좋은 가죽으로 감싼 시트는 값비싼 가죽 소파에 앉은 듯 고급스러우면서도 안락하다. 거기에 직접 수놓은 자수와 스티치를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쓰다듬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슈퍼카답지 않게 디지털 요소도 대거 탑재했는데, 26인치에 이르는 커브드 계기판은 물론 심지어 조수석 대시보드 앞에도 가로로 긴 화면을 심었다.
남자의 로망, 남해를 달리다
페라리 로마의 매력은 장거리 여행에서 도드라진다. 페라리의 다른 라인업과 달리 운전 시야가 넓고 시트 포지션도 높다. 특히 주행을 컴포트 모드로 설정하면 승차감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정속 주행을 하면 일반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행 감각을 선사할 정도다. 고속 방지턱도 제법 부드럽게 지난다. 또한 운전대의 주행 셀렉터 레버를 3초간 꾹 누르면 범피 로드 모드가 수 초간 작동하는데, 댐핑력이 줄어들며 요철도 사뿐히 지난다. 깃털처럼 가벼운 조향감도 장점이다.
하지만 운전이 편해졌다고 해서 만만히 볼 상대는 결코 아니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 두는 순간, 한층 높아진 사운드를 비롯해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시원하게 앞으로 치고 나간다. 실제 페라리 로마는 620마력의 괴물 같은 출력과 최고 시속 320km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숨기고 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모두 기존 페라리보다 편안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 GT카라는 특성에 맞게 재빠른 반응보다는 보다 즐겁게 달릴 수 있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유독 굽이친 와인딩 구간이 많았던 남해의 시승 구간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남자의 로망, 남해를 달리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된 ‘에스페리엔차 페라리’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특히 시승뿐 아니라 하동 스카이 워크와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 카 등의 액티비티 프로그램은 시승의 피로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페라리는 매년 VIP 고객을 대상으로 이러한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오너들의 문화를 독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슈퍼 럭셔리 브랜드의 자동차를 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분명한 건, 페라리는 달리는 즐거움뿐 아니라 소유의 즐거움도 선사하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