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big story]이효섭 실장 “금융권 AI 혁신, 수익보다 이용자 편익 우선해야”](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AD.33269788.1.jpg)
![[big story]이효섭 실장 “금융권 AI 혁신, 수익보다 이용자 편익 우선해야”](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AD.33269256.1.jpg)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AI 시대에 금융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AI를 활용한 혁신 기업의 목표는 수익 증대가 아니라 이용자 편익 제고”라면서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편리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1차 목표다. 이용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 수익성은 자동으로 뒤따르게 돼 있다”고 조언했다. 진정한 의미의 금융 발전을 이루려면 고객 만족도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둬야 한다는 게 이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AI 시대를 앞두고 금융권이 분주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금융 선진국의 AI 적용 사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AI 기술의 진보로 보험 등 금융 산업이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챗GPT(Chat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AI)을 향한 혁신과 혼란이 뒤섞인 지금. 금융이 AI 혁신의 길을 걷기 위해 꼭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과 함께 짚어본다.
![[big story]이효섭 실장 “금융권 AI 혁신, 수익보다 이용자 편익 우선해야”](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AD.33269259.1.jpg)
“과거 알파고 등장 이후 AI가 주목을 받으면서 금융업에서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서비스 등이 확대됐고,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성장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로보어드바이저 이용자의 실질적 만족도는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근 챗GPT가 등장하는 등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과 달리 금융업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의 AI 활용 현황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에 비해 AI 기술의 수준과 금융업 내 활용도가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챗봇을 예로 들자면,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챗봇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미국, 영국은 AI 관련 규제 장벽이 국내보다 낮아, AI를 활용한 혁신적인 핀테크 서비스를 출시하기 좋은 환경이다. 또 AI 원천기술을 보유한 인재와 정보기술(IT) 회사의 수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도 격차를 벌린 배경이다. 이들 국가의 잠재 고객 수가 훨씬 많다는 점도 AI 활용 서비스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요소다.”
그동안 투자자가 로보어드바이저를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 그리 높지 않은 수익률이 지목되는데.
“사실 수익률만 놓고 로보어드바이저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옳은 방향은 아니다. 위험 대비 기대수익률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의 성향이 안정형이라면 4% 정도의 수익률만 내도 괜찮다. 반면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10%의 수익률 정도는 제시를 해야 만족할 수 있다. 각 투자자에 맞는 기대수익과 위험 수준에 잘 부응하는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여러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로보어드바이저의 성과가 생각만큼 썩 좋지는 않았다. 위험 성향을 기반으로 하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출시됐지만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안정형 성향의 로보어드바이저도 자산 배분을 안정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잘하는 서비스도 존재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실력 있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특히 챗GPT 등 진화한 AI를 연계한다면 상황이 좀 바뀌지 않을까. AI 기술을 접목한 다이렉트 인덱싱이 실제로 시장에서 인기를 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은 성과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대중에게 친숙한 금융권 AI 기술 중 챗봇을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챗봇 서비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까.
“국내 금융사들이 상담 기능을 내세운 챗봇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질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챗봇에게 다양한 질문을 건네면 빠르고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AI의 자연어 처리가 한국어에서 제대로 적용되기 힘들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AI가 한국어의 조사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국내 챗봇 기능이 향상되려면 한국어에 대한 학습이 선행돼야 한다.
금융 상품과 금융 서비스에 대한 학습도 필요하다. 하루에도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신규 금융 상품이 등장하고 있으며, 각 금융 상품마다 위험요인, 기대수익이 크게 차이가 난다. 챗봇은 여러 금융 상품의 위험요인과 기대수익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금융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객 정보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야 한다. 특정 고객이 챗봇을 통해 상담을 요청할 때 해당 고객의 나이, 재산, 소득, 과거 투자 경험, 기타 위험선호도 등을 파악해 위험 성향에 알맞은 금융 상품 또는 금융 서비스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AI의 도입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금융 분야는 어디인가.
“개인적으로 보험업을 꼽고 싶다.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고령화와 비대면 진료, 의료 데이터 개방 흐름과 맞물려 커지는 추세다. 맞춤형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에 따라 AI와 보험을 결합한 인슈어테크가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운전 습관, 건강 상태를 AI 기술로 파악해 자동차보험료를 달리 적용하는 서비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또 과거에는 보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진짜 범인을 따지는 분쟁이나 사기 사건이 상당히 많았다. AI 기술이 접목되면 그런 사건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AI를 활용한 펫보험도 인기를 끌 분야다. 반려동물 내장칩을 AI 분석을 통해 동물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보험 서비스가 가능하다. 보험업 외에도 비대면 금융 상품 판매 영역이 AI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특히 챗GPT의 등장을 계기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대일 맞춤형 금융 상품을 제공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법적·제도적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는데. 금융권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겨날 수 있을까.
“가장 큰 부분은 AI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 책임을 누구에게 묻느냐는 문제다. 기존 금융법제에서는 인적 책임을 물어왔는데, AI에 손해배상책임 등을 물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만약 AI 알고리즘 오작동으로 금융 서비스 장애가 생겼다면, AI 알고리즘을 만든 프로그래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아니면 해당 AI 알고리즘을 개발한 AI 핀테크 업체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이슈는 개인정보 보안 문제다. 챗GPT에 질문하는 과정에서 나의 정보가 수집돼, 나도 모르는 사이 AI 알고리즘이 나에 대해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또 AI 알고리즘이 오작동을 한다거나 해킹으로 인위적 조작이 이뤄질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AI 알고리즘의 부주의로 고객 정보가 탈취되면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타 금융기관에 손실이 전이돼 시스템 리스크를 촉발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도 우려할 만한 문제점이 있을까.
“AI 보급 확대로 디지털 소외계층의 서비스가 악화되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상당수의 금융 서비스가 AI 기술과 접목되면, AI라는 영역에 쉽게 접근하기 힘든 60~70대 연령층은 어떻게 될까. 쉽게 말하면 AI 서비스 산업의 양극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AI 기술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금융 발전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글로벌 시장에서 AI를 활용한 혁신 기업의 목표는 수익 증대가 아니라 이용자 편익 제고다.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편리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1차 목표다. 이용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 수익성은 자동으로 뒤따르게 돼 있다. 진정한 의미의 금융 발전을 이루려면 고객 만족도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둬야 할 것이다.
기존 우리나라 금융 회사들은 이익 증대를 목표로 불완전판매, 불공정영업행위 등을 빈번히 해 왔다. 내부통제 미흡으로 각종 전산 사고, 자금 횡령을 지속해 고객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공모펀드, 보험 상품 등을 판매하는 금융 회사는 높은 보수를 수취하는 데 초점을 뒀지만, 금융소비자는 성과가 저조한 상황에서 비용만 계속 지불하는 경험을 하며 신뢰를 잃었다.
챗GPT 등 AI 기술을 통해 ‘금융사가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고객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쪽으로 목적함수가 바뀌어야 한다. 더욱이 AI 시대에 금융이 살아남으려면 단기 수익을 높이기 위한 전통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어렵다. 기존 금융 회사가 잃은 신뢰를 AI 혁신이 채워주는 방향으로 간다면 진정한 금융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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