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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공익법인 기부 ‘활발’…국내의 규제 걸림돌은
[한경 머니 기고 = EY한영 세무본부 이나래 파트너·백준호 회계사] 2012년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을 약속했을 때 순자산은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였다. 이후 그의 순자산은 크게 증가해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할 수 있게 됐으며 2021년에만 그가 창립한 재단(Musk Foundation)을 통해 57억 달러(약 7조4000억 원)를 기부해 교육 및 과학 연구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론 머스크가 기부를 서약한 자선단체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부부와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이 2010년 공동으로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인 자선단체다. 이곳의 가입자가 되려면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부부, 국내에서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등이 참여했다. 더 기빙 플레지 측의 집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총 236명의 기부자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존 데이비드 록펠러가 속한 록펠러 가문은 록펠러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설립해 시카고대, 가문의 이름을 딴 록펠러대,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부지, 최고의 복합예술 공연장인 링컨센터 등 방대한 부동산을 기부하고 의학, 과학 등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분야들의 연구·개발 활동에 집중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이러한 기부 재단을 통해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기부 문화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재단(private foundation)이나 가족재단(family foundation) 설립을 통해 가족회사의 주식을 출연함으로써 경영권을 방어하고 가업승계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공익재단법인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의 소유를 각각 20% 내지 50%의 한도까지 인정하고 있으며,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주식 보유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해당 국가들에서는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공인재단법인을 통한 원활한 가업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자선단체 또는 재단을 활용해 가업의 건전한 승계뿐만 아니라 기부 문화를 실현해 나가는 선진국의 사례를 토대로 국내 공익법인의 활용 실태와 과세 제도를 살펴보고 공익법인 활용을 장려할 수 있는 세제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해외, 공익법인 기부 ‘활발’…국내의 규제 걸림돌은
국내 공익법인의 과세 제도와 활용 실태
공익법인은 사회복지, 종교,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 사회일반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해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이 상속세 신고기한 내에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며(상증세법 제16조),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은 그 재산을 공익 사업에 직접 사용하는 경우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상증세법 제48조).

또한 비영리법인의 수익 사업에서 소득이 발생할 경우 법인세 납부의무가 있으나, 소득의 50%에서 100%까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설정해 손금으로 처리할 수 있다(법인세법 제29조 및 조세특례제한법 제74조). 예를 들어, 공익법인이 광고 사업을 부수적인 사업으로 운영해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그 수익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손금에 산입하면 납부할 법인세액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해외, 공익법인 기부 ‘활발’…국내의 규제 걸림돌은
이러한 여러 세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공익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선진국들에 비해 과도한 제약 조건에 직면한다. 현행 상증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발행주식 총수 5%를 초과해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지 아니한 공익법인의 경우에는, 10% 초과 보유가 금지된다. 출연받은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자선, 장학 또는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20%까지 주식 보유가 허용되며 상한선을 초과해서 주식을 취득하는 모든 경우에는 해당 초과액이 증여세로 과세된다.

이러한 주식 출연 규제는 공익법인을 통해 영리법인을 지배하는 경영권 방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결국 기업 승계와 경쟁력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지정된 76곳 공시대상 대기업집단 중 동일인(총수)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공익법인이 있는 곳은 67곳(88.2%)에 달했다. 특히 총수 일가에서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는 관련 공익법인에 이사로 등재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에서 주식을 미보유한 경우에는 공익법인에 이사로 등재된 비율이 35.7%인 데에 비해,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는 해당 비율이 66.7%에 달한 것이다. 이는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세습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도 연결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의 대기업 총수 일가가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에 관여하는 것은 얼핏 보면 미국 가문들이 개인재단, 가족재단을 설립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다르다. 주 원인은 공익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기업의 관점이 공익법인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공익법인을 기업 승계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그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한국에서는 주류를 이룬다. 이는 공익법인의 재산권 침해 및 향후 출연 부진으로 이어져서 공익법인 본연의 기능인 사회환원 활동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건전한 기부 문화 형성 위해 제도 개선 시급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익법인의 설립을 장려하고 나아가 건전한 기부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익법인에 대한 제도 및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차등 의결권 주식 발행,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 지분관리사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해외 기업 오너는 상속세가 과세되지 않는 공익재단에 출연하고 차등의결권을 허용받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고 기업의 수익을 대부분 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배당수익의 80%는 교육, 의료 분야 등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 20%만 계열사에 재투자하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제한 또는 금지돼 공익법인을 활용한 경영권 승계가 마치 ‘불법’처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장수 가문, 원활한 가업승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안 중 하나가 다양한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인데, 그 예로 공익재단을 설립해 5대째 기업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들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그룹 지배구조 최상위에 공익재단을 두고, 재단 이사회의 의장직을 가문에서 맡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미국의 허쉬나 덴마크의 레고그룹 역시 기업 지분을 공익재단이 소유함으로써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며, 그를 통해 축적된 부를 공익재단 본연의 설립 취지에 맞게 활발히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익법인을 활용한 경영권 승계를 원활하게 하는 대신에, 가문 대대로 활발한 공익 활동과 사회환원을 적극 권장해 이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 또한 장기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업의 승계와 영속은 공공의 이익에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 기업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군 기업을 효율적으로 승계할 수 있다면 창업 의욕이 고취되고 사회 전체로 봤을 때에는 기업가 정신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들과 발걸음을 맞추어 국내에서도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 제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아울러 공익법인 본연의 목적을 위해 출연받은 재산을 해당 공익 활동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공익법인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해야 할 공익 사업을 대신 수행하는 주체인 만큼, 활동에 대한 세제 지원 역시 적극 확대해야 할 것이다.

글 EY한영 세무본부 이나래 파트너·백준호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