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넘어 전 세계 산업 기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 미술 시장 역시 크게 성장 중이다.
고개 들어 인도 미술 시장을 보라
IAF(인디안 아트 페어) 2023 전경

중국이 세계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약 20년 전부터다. 이 시기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고, 수많은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의 압도적 경제성장률은 미술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문화는 원래 경제성장의 뒤에서 꽃피는 것이고, 예술이야말로 경기(景氣)에 가장 민감한 ‘재화’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느새 세계의 공장이자 아틀리에로 변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패권 경쟁, 젊은 노동력 감소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중국의 경제적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 시점에 중국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른 국가가 바로 인도다. 얼마 전 중국을 넘어 세계 인구 1위 국가가 된 인도는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연 8% 수준의 지속적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인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억만장자를 보유한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경쟁력까지 갖췄다. 인도가 중국이 걸어온 고도성장의 길을 그대로 밟으리라는 것은 예상이 아닌 현실이다. 이는 곧 인도의 문화 시장, 특히 미술 시장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최근에 열린 ‘IAF(인디안 아트 페어)’는 그러한 ‘열풍’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정 국가의 미술 시장 성장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아트 페어의 흥행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에 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있는 것처럼, 인도에는 IAF가 있다.
고개 들어 인도 미술 시장을 보라
IAF 2023 공식 포스터로 쓰인 유반 보티사스바르(Yuvan Bothysathuvar)의 작품 ‘Reflection’

사실 과거 IAF는 그저 그런 지역 박람회에 가까웠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 관련 박람회라고는 하지만,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의 작가와 갤러리가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남아시아 미술 시장 자체가 그리 크지 않기에 아트 페어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인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미술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IAF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증폭했다.
기세 좋던 IAF의 발목을 잡은 건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 감염이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였던 인도는 사회적 기능이 모두 마비됐고, 이와 함께 인도 미술 시장의 기세도 꺾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도 미술계는 빠르게 해결 방법을 찾았다. 강력한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온라인 쇼를 열고, 다양한 온라인 뷰잉 룸도 개설했다. 이와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양적 완화로 인한 자산 시장 회복에 힘입어 신흥 부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패션과 자동차 외에도 아트 컬렉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인 수요와 공급의 곡선을 기억하는가?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인도 미술 시장의 외형은 급격히 성장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웹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인도 미술 시장은 2022년 약 758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 금액이다. 1년 동안 약 2000점의 작품이 판매됐으며, 이 중 100만 달러 이상 작품이 매출의 67%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개최된 IAF 2023은 뭄바이와 델리에서 릴레이로 펼쳐졌다. 이번 페어에는 71개 갤러리, 85개 전시업체가 참여하며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아티스트와의 대화, 각종 공연, 워크숍, 여성 아티스트 특별전, 영 컬렉터 허브 등 알찬 내용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말하자면, 현재 인도 미술 시장의 잠재력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고개 들어 인도 미술 시장을 보라
지난 2021년 경매에서 550만 달러에 팔리며 인도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가이톤데(V. S. Gaitonde)의 ‘Untitled’

지난 4월에 폐막한 IAF를 두고 인도 미술 전문지 <STIRworld>는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그동안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 국가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녔음에도 인프라 부족과 정부 기관의 미흡한 후원으로 암울한 상태였다. 하지만 2023년은 일종의 전환 직전으로 보인다. 인도의 여러 대도시에서 문화적 재탄생이 일어나고 있으며, 수준 높은 미술 비평이 예술 커뮤니티의 확장을 이끌고 있다. IAF는 이 진격의 선두에서 수준 높은 작가와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 되고 있다.”
<STIRworld>에서 밝힌 것처럼, 인도 미술 시장은 일종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그간 드러나지 않던 다양한 작품이 재발견되고 있으며, 이에 질세라 젊은 아티스트들도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금력이 엄청난 인도의 신흥 재벌들은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인도의 사회적·지정학적 갈등 요소도 어찌 보면 미술 시장에 호재로 작용한다. 여전한 카스트제도로 인한 사회적 차별, 중국과 파키스탄 등 인접 국가들과의 영토 분쟁, 여성 폭력으로 인한 젠더 갈등, 중국 이상의 빈곤 계층과 이로 인한 사회적 격차, 종교적 혼란 등. 하지만 예술은 모든 것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차별과 갈등이 예술가에게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인도와 인도를 둘러싼 남아시아 국가의 사회적·경제적 갈등은 아티스트에게는 오히려 예술혼을 불태우는 소재가 될지 모른다.
차후 인도는 중국에 견줄 만한 아시아의 아트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인도의 높은 IT 수용도는 최근 미술계의 주요 이슈인 NFT나 디지털 미디어 아트 등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술 시장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인도를 보라. 새로운 중국이 그곳에 있다.



글 이기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