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배명훈 작가 <미래과거시제>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은 안녕할까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얼마 전에 본 TV 토크쇼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현직 약사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약사로 일한다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면서요?” 약사는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라고 운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AI에 쉽게 대체될 직업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다행히 뒤이어 나온 이야기는 별로 부정적이지 않았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그녀는 약에 대해 책임지고 환자를 상담하는 일을 AI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우리라고 내다보았다. 일의 방향성이 변할 수는 있어도, 인간 약사의 가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 소신 있는 발언을 들으며, 나는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지혜약국(가명)’을 떠올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붐비는 그곳의 영업 방침은 ‘신속 정확’과 거리가 멀다. 언제 가도 대기 줄이 있는데, 회전률 또한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리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약사는 처방전대로 조제하면 그만인 알약 한 봉지도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짓는다. 약 한 알 한 알의 효능과 복용법, 부작용을 상세히 알려주고 손님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준다. 단골손님의 특징을 기억하고, 특히 어린이 손님들은 이름까지 외워서 살갑게 대화를 건다.

영양제 하나 사러 갔다가 5분도 넘게 기다리면서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지금은 기왕 왔으니 여기서 사겠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옆 건물에 있는 약국에 가겠다고. 겨우 내 차례가 오고, 나는 “마그네슘 영양제 하나 주세요”라는 간단한 주문을 넣는다. 약사는 내게 묻는다. 마그네슘을 왜 찾는 거냐고. 피로해서인지, 두통이나 근육통이 있어서인지 혹은 눈가가 떨려서인지. 눈가가 떨려서라는 내 대답에 증상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얼마나 심한지, 평소 생활습관은 어떤지 묻는다. 그리고 다양한 영양제들을 보여주며 가격과 마그네슘 함량을 알려주고, 각 제품별로 특징과 장단점을 설명한다. 약국 문을 나서며 나는 아까와 조금 다른 다짐을 한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 여유를 두고 와야겠다고.

내가 지혜약국에서 느낀 것이 전문가의 책임감이라면, 약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단 하나의 직업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챗GPT(ChatGPT)의 충격적인 등장 이후로 한동안 가는 모임마다 그 소식이 화두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까 봐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업무를 효율화하고 서비스를 강화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회사원도, 전문직도,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AI로 대체될 직업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가령 나와 같은 번역가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업의 존폐가 아니라 존엄을 논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고성능 AI가 등장한 이래, 진짜 위험에 처한 것은 어쩌면 직업 자체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존엄일지 모르겠다. 평생 노력해서 얻고 유지해 온 직업이 쓸모없어진다는 얘기를, 점점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면전에서 하는 모양이니 말이다. 눈앞의 상대방이 키오스크가 아닌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배명훈 작가의 SF 소설집 <미래과거시제>에는 ‘수요곡선의 수호자’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의 배경은 AI가 보편화된 미래로, 모든 기술이 AI에 점령당한 상태다. 지역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거대한 회사에도 사람은 대여섯뿐이고, 실무는 전부 기계가 한다. 사실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기계를 돌려서 물건을 만들고 돈도 벌었으니, 그 이득을 고루 나누어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이론상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소설 속 사회는 그렇게 이상적인 결말에 도달하지 못한다. 기계의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한 일부 집단은 부를 공유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기계가 창작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사람들은 취미와 취향까지 잃어버렸다. 글도 음악도 그림도 명령만 하면 멋지게 뽑아내는 AI 앞에서 사람들은 생산이든 창작이든 뭔가를 해낼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때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한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 취향을 가진 인간형 로봇이다. 주인공 ‘마사로’를 포함한 마흔 대의 로봇들은 AI의 공급 과잉 때문에 무너진 사회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상품과 서비스를 공정하게 소비한다. 때로는 멋진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때로는 체형에 꼭 맞는 가구를 맞춤 주문하고, 때로는 그림을 사서 재능 있는 예술가를 후원한다. 공공기금으로 지원되는 예산 덕분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로봇들이 취향을 바탕으로 시장에 돈을 풀어준 덕에, 많은 인간들이 수입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 의지를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실험은 성공하지 못한다. 프로젝트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방해 때문에. 우습게도 그들의 활동을 가장 고까워한 것은 일부 인간들이었다. 다수의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어마어마한 노력과 자본을 들여 시장에 풀린 소비 로봇을 마지막 한 대까지 파괴하고 만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마사로는 존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가 말하는 존엄이란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이나 수 톤의 무게를 견디는 초합금 몸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행위에서 나온다. 이마에서 불빛이 발사되는 로봇이 자신을 물건처럼 들어 올리는 인간에게 “존엄성 있게 직접 걷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지혜약국을 떠올렸다. AI 시대 직업의 미래를 놓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키오스크와의 효율성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가치를 더욱 계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산보다 인간성을, 존폐보다 존엄을 먼저 고민하던 로봇 마사로처럼.

글·그림 서메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