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취득세, 유산세와 어떻게 다른가
[한경 머니 기고=이나래 EY한영 세무부문 파트너] 지난해 말에 김 모 씨와 이 모 씨는 각자 아버지로부터 5억 원을 상속받았다. 동일한 금액을 상속받았으므로 두 사람이 비슷한 액수의 세금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김 씨는 1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상속세로 납부했으나 이 씨는 납부할 상속세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바로 한국의 상속세제가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산세 방식은 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을 분할하기 이전에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총액에 과세해 세액을 결정한다. 즉,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에 배우자 및 미성년자공제와 같은 인적공제 등을 합산 적용해 과세표준을 산정한 뒤, 누진세율을 반영한 세액을 산출해 상속인들이 각자의 상속 지분만큼의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김 씨와 이 씨의 사례는 동일한 금액을 상속하더라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재산 총액이 얼마인지 그리고 상속받는 가족 중에 배우자공제를 적용받는 어머니가 포함돼 있는지 등에 따라서 과세표준 및 부담 세액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현행 유산세 방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런 현행 상속세제가 합리적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한국은 1950년 3월 22일 법률 제114호로 ‘상속 및 증여세법’이 제정·공포된 이래로 이러한 유산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속세를 운영하는 23개 회원국 중에서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한국, 미국, 영국, 덴마크 총 4개국이며 나머지 19개 회원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 국가에서 활용하고 있는 유산취득세란 무엇이며, 한국의 현행 유산세와는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유산취득세, 유산세와 어떻게 다른가
유산취득세란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모두 상속자의 사망으로 납세의무가 성립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취지와 과세 근거는 상이하다. 유산세의 경우 상속세는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충분히 과세되지 않았던 부에 대해 사후적으로 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재산이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발생한 소득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취득한 상속인을 대상으로 과세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의 유산 전체를 ‘하나의 과세 대상’으로 간주하며, 유산취득세는 상속인 각자가 상속받은 재산을 ‘개별적인 과세 단위’로 간주한다. 상속세가 누진세율로 과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자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이 과세표준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상속인의 세 부담 측면에서는 더 유리한 면을 지닌다.

유산취득세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가장 많이 드는 근거는 응능부담 원칙, 과세체계 정합성 등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유산취득세로의 개편 의지를 밝혔을 때 인용한 내용이기도 하다.

‘응능부담 원칙’이란 납세자의 담세력, 즉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세금이 부과돼야 한다는 조세부담 원칙의 일종이다. 유산세 방식하에서는 각자 상속하는 재산의 금액이 많든 적든 상속인 간에 동일한 한계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각 상속인의 담세력이 간과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각자 취득하는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해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만큼만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응능부담 원칙에 보다 부합하게 된다.

‘과세체계 정합성’이란 조세체계를 논리적이고 상호 일관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상증세법에서 증여세는 상속세에 대한 일종의 보완세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피상속인 생전에 이루어지는 사전증여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상속세 회피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식이다.

하지만 상속세가 피상속인에 대해 과세를 하는 반면, 증여세는 수증자, 즉 증여에 의해 재산을 취득한 이에게 과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2가지 세제 간에는 과세 대상의 불일치가 발생, 즉 과세체계 간 정합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현상은 상속세와 증여세 간에 서로 다른 과세 방식을 적용하는 한국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일례로 미국은 상속세에 대해서는 한국과 동일하게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증여세에 대한 납세의무자를 수증자가 아닌 증여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상속세와 증여세 간에 과세 방식의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유산취득세, 유산세와 어떻게 다른가
유산취득세의 주요 쟁점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에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유산취득세에 대해서는 일종의 ‘부자 감세’가 아니냐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는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현행 과표구간과 세율 그대로 유지한 채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경우, 최상층 부자들 위주로 상속세 감면 효과가 날 것이기 때문에 형평성을 위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위장 분할을 우려하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현행 유산세 방식은 기본적으로 그 세액이 유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상속인 수와 관계없이 세액이 불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인이 많을수록 세액이 감소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 실제보다 더 많은 재산 분할이 있는 것처럼 허위 신고를 하는 등 조세회피 행위가 발생할 수 있고, 더 나아가면 이것이 세수의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조세 행정의 효율성이나 비용 등의 면에서도 현행 유산세가 유산취득세에 비해 유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속인 각각의 상속재산 규모를 개별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유산취득세와는 달리, 유산세하에서는 피상속인 1명의 유산 총액만을 확인하고 이를 기준 삼아서 과세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르고 그에 맞게 법 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또한 상속세의 개편은 상세 공제와 세율뿐 아니라, 증여세와의 과세 방식 합치 등 다방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만큼 면밀한 사전검토가 필요할 것이다.사회적 형평성, 부의 집중 억제, 적정한 세수 확보 등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쟁점이다.

지난해에 정부는 2022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다만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해당 내용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유산취득세로의 전환 여부 및 시기는 다소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 유산취득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경제 상황에 맞추어 상속세제의 취지와 실효성, 형평성에 대해 고찰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글 이나래 EY한영 세무부문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