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 무주구천동. 그 안에서도 구천동어
사길은 백미 중 백미인지라 첫 산행에 오른 기자는 이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주는 딱 그런 곳이다. 무주라면 무조건 달려가고 볼 일이다.
살아서 가볼 수 있는 천당
현생에서 복을 많이 쌓으면 갈 수 있다는 천당(천국)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살아서는 못 가는
법이다. 너무 가고 싶고, 궁금하지만 미리 엿볼 수도 없으니까 참고 착하게 살 수밖에.
아니, 아니. 다행히도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는 ‘내가 착하게 살아서 이런 풍경을 보나’ 싶을 정도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곳들이 방방곡곡 숨어 있다. 찾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니 오늘은 기자의 발자취를 잘 따라오시길 바란다.
코스별로 안내하는 첫 번째 목적지는 구천동어사길이다. 총 4개 구간으로 이뤄진 어사길은 들머리를 덕유산국립공원 삼공주차장으로 삼으면 된다. 이곳에서부터 차량 통제가 이뤄지며 기본적으로 1시간은 쉬엄쉬엄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임도를 따라 약 700m를 오르면 덕유산국립공원의 트레이드마크 ‘반달이’ 이정표가 보이고 이윽고 구천동 33경 중 15경인 월하탄이 나타난다.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장관을 만나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푸른 숲길에 기암괴석을 타고 쏟아지는 우렁찬 폭포수는 마음의 티끌을 벗겨내기 충분하다. 월하탄에서 다시 앞서 걸으면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이곳에 어사길 입구를 안내하는 문이 자리한다. 이 문에서 시작돼 백련사를 끝으로 완성되는 구천동어사길은 4.9km에 달하는 탐방로에 구천동계곡이 끝도 없이 흐른다.
1구간은 숲나들길, 목재 데크가 설치돼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걷기 좋다. 2구간은 청렴길, 조선
시대 영웅처럼 그려졌던 어사 박문수의 덕을 담고, 비취를 닮은 물색은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을
드러낸다. 3구간은 치유길,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는 덕유산 원시림을 볼 수 있어 그만큼 난도
가 있는 코스기도 하다.
4구간은 하늘길, 완만하면서도 끊임없는 경사가 계속돼 인내심을 요하지만 거울처럼 맑은 명경담, 물보라가 장관을 이루는 연화폭 등의 비경이 쉼터 사이사이 펼쳐져 걷길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산새는 지저귀고, 한들한들 호랑나비는 꽃을 찾아 날아든다. 세상의 그 어느 작품이 자연이
만든 풍경에 비할까. 2개의 커다란 암석이 놓인 소원성취의 문을 지나자 마치 다른 차원이
열린 듯 연분홍 산철쭉이 별안간 흩날리고 층층계단 암반 위로 구월담(구천동 33경 중 제21경)이 흐른다. 1구간, 2구간 각각 20여 분, 이정표에는 구간별 소요 시간이 적혀 있지만, 직접 방문해보면 이 시간들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살아서 가볼 수 있는 천당에 왔으니 시간을 헤아릴 수 없다. 걷다 멈추고, 깊이 호흡하며, 마음 가득 웃어본다.
‘잘 살았네, 잘 살아야지.’ 칭찬하고 다짐하며 또 걷는다. 지키고 싶다면 나부터 다스릴 것
옛날에 구천동계곡에서 스님들이 수련을 했다. 그 수가 9000명이나 돼 스님들이 밥을 짓자 쌀뜨물로 계곡이 하얗게 변했다. 9000명의 승려가 깨달음을 얻어 구천동, 시냇물이 9000굽이로 나뉘어 구천동이자, 구천동(어사길)이 속한 ‘설천’면(눈 설 雪·내 천 川)에 전해지는 흥미로운 지명 유래다.
설천면에 태권도원이 자리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태권도원에서 가장 높은 곳,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자 왼쪽으로 충북 영동, 오른쪽으로 경북 김천이 펼쳐진다. ‘삼 도(道)’가 어울렁더울렁 이다지도 가까우니 무주는 과거부터 호방한 기상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 다른 문화에 말씨가 다른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가까이 살았을 테니 말이다.
“저기 산과 산 사이 터널 보이시죠. 저 터널의 이름은 신라의 ‘라’, 백제의 ‘제’를 합해 나제통문이라고 해요. 무주는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 삼국의 각축전이 벌어졌어요. 당연히 무예를 중시했고 역사적으로도 의병, 독립운동가 등 의인이 많이 배출됐어요.”
태권도원 안내를 도와준 직원의 상세한 설명에 모노레일을 탄 다른 손님들도 귀를 기울인다. 나제통문은 구천동 33경 중 제1경으로 설천면에서 무풍면으로 넘어가는 석문이다. 무풍면은 경남 거창과 경북 김천의 접경이자 과거 신라의 땅으로 오늘날 무주의 지명도 무풍현, 백제 땅이었던 주계현의 앞머리에서 각각 따왔다.
전망대 아래로 펼쳐지는 태권도원의 규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국제적인 태권도 마을이라
고 하면 적절할까. 국립태권도박물관,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권도를 세계적으로 알린 인물을
2년마다 2명을 선정해 기념하는 명인관의 헌액자 공간, 국제 경기와 훈련, 대규모 행사가 개
최되는 T1경기장, 이 밖에도 식음, 숙박, 편의, 야외수련장 등등 다채로운 쓰임을 가진 시설이
무주의 자연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놓여 있다.
태권도원은 서울 여의도의 1.5배 면적으로 원활한 이용을 위해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태권도의 희망찬 미래에 두 주먹 불끈 쥐게 되는 T1경기장의 상설 공연부터 국립태권도박물관 관람까지 성인 기준 4000원의 입장료가 미안해질 만큼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무주 설천면으로 지금 출발하시라. 천연 요새에 실록을 보존하라
붉은 단풍을 칠한 듯 아름다운 2채의 전각과 안국사, 이 모든 것을 지키는 적상산성 아래로
무주를 내려다보았다. 우람한 산중 바위와 봉우리들, 그 안에 사람들의 마을이 다붓하다.
지난 2021년 무주에서 <조선왕조실록> 봉안 행렬 재현행사가 열렸다. 어쩌면 당대 왕의 행차
보다 더 엄숙히 치러졌을 국가 의례, 적상산사고에 실록을 봉안했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기록부터 이동, 보관, 보존 그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는 <조선왕조실록>이 무주 적상면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눈에 봐도 인상적인 무주의 자연환경에 그 이유가 있다.
군 전체가 소백산맥에 속하는 무주는 해발 1000m 이상의 덕유산, 적상산, 민주지산 등의 높
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모든 것이 빠르지만 그만큼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 무주는 거대한 둥지에서 어미 새가 새끼를 품은 듯 따뜻하고 아늑한 숨결이 면면에 가득하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무주의 자연환경은 그야말로 천연 요새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무주군 중심에 해당하는 적상면 가운데로 해발 1038m의 적상산이 솟아 있다. 깎아지른 듯
한 층암절벽이 사방을 둘러싼 적상산에는 고려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산성과 안국
사, 적상산사고지유구(이하 적상산사고)가 분지 형태의 정상부에 자리한다. 임진왜란으로 전
국의 사고가 불에 타자 조선 왕조는 더욱 안전하게 실록을 보관할 장소를 물색했다.
이에 1614년(광해군 6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각이 세워졌으며 새로 편찬된 <선조실록>을 1618년 처음으로 봉안했다. 이후 1634년(인조 12년)에는 묘향산사고에 보관한 <조선왕조실록>을 이안하고,1641년 선원각을 세워 왕실 족보인 <선원록>까지 소장하며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했다.
적상산사고는 우리나라 5대 사고 중 하나로 1910년 일본에 의해 폐쇄되기 전까지 300년간
5000권이 넘는 국사를 보존했다. 한국전쟁의 풍파 속에 그 흔적조차 묘연했던 실록은 지난
2017년 문화재청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진행한 일괄 조사에서 적상산사고본의일부가 국보 지정에서 누락됐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해군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의 <성종실록>, <인조실록>, <효종실록> 등 모두 4권이 2019년 6월 26일 국보로 지정됐으며, 북한에 반출된 것으로 알려진 나머지 실록 형태를 추정하는 데 큰 지표로 작용했다. 적상산사고는 원래 위치에서 적상호가 바라보이는 위 기슭으로 이전해 1997년 선원각이, 이듬해 실록각이 복원됐다. 오늘날에는 전시관으로서 내부에 태종·세종·인조·영조 실록 등의 영인본(복제 인쇄물)과 당시 실록 봉안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등을 만날 수 있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삽화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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