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반려동물 800만시대, 펫보험 활성화는

인터뷰/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반려동물 보험(펫보험) 시장 활성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수의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펫보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동물의료정책 재검토, 약사예외조항, 동물의료법안, 동물 의료 관련 기구 신설 등 전체적인 제도가 개선되고 미비점이 해결돼야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을 만나 수의사 입장에서의 반려동물 정책 개선점을 짚어봤다.
[스페셜]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 “펫보험, 공적자금 지원돼야 실질 부담 줄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대한수의사회에서 허주형 회장을 만났다.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반려동물 보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하면서도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허 회장은 “반려동물 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는 달리 사보험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국가가 적극 개입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사보험으로 키우면서 시장 경제에 온전히 맡기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의사법' 등 제도적으로 막혀 있는 난제들이 많다”며 “문제들을 풀지 않고 무조건 보험만 만들라는 식의 방법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허 회장은 “국가 자금이 투입돼 공적 보험으로 된다면 수의사회에서도 납득은 할 수 있다”며 “1500만 명에 달하는 반려동물 가족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졌지만 각 기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허 회장은 “반려동물 보험 활성화는 환영할 일이지만 정부, 손해보험협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금융위원회 등이 각각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중구난방식의 관리 방식을 재점검하고 '수의사법' 제도 개선과 함께 반려동물 등을 전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동물의료기구가 신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반려동물 진료비 체계는 어떤가.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비용보다 낮다. 예컨대 국내 예방접종 백신 가격은 1만~3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10만 원, 말레이시아 6만 원, 싱가포르는 12만 원 선이다. 평균 1회 내원 진료비 역시 미국은 9만1000원이지만 한국은 6만7000원에 불과하다.
평균 응급야간 진료비도 미국은 18만6000원이지만 국내는 3만6000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연구보고서에 따르며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 진료비는 최하위권이며 동남아시아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정부, 손해보험협회, 식약처, 금융위원회 등 TF팀과의 회의가 지지부진했다고 들었다. 어떤 얘기가 오갔나.
"각 기관의 입장이 달랐다. 특히 수의사회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반려동물 보험을 만들기 전에 현재 개선해야 하고 바뀌어야 할 규제들을 풀어야 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일부 '수의사법' 법안들을 통과하지 않고 보험만 얘기하니 다람쥐 쳇바퀴처럼 했던 얘기가 또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윤석열 정부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려동물 보험에 대한 공약이나 의견은 많이 나왔다. 대부분 초반에 관심을 보이다가 지지부진해졌지만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의사회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앞서 공적 보험을 주장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국가 비용이 들어가는 공적 보험이 있고 개인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사보험이 있다. 우리가 사보험에 돈을 더 넣어 가입하는 이유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또한 목돈이 들어가는 큰 수술의 경우 보험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려동물 보험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에게 빈번하게 생기는 질병에 대해 국가의 공적자금이 들어간다면 반려인들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이에 더해 보험비도 부담을 덜 수 있다.
반려동물에게 들어가는 월 평균 비용이 47만 원이다. 예를 들어 현재 A사의 반려동물 보험에 가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월 3만 원씩 매달 비용이 나가지만 사용할 수 있는 보험 종류가 몇 개 없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이 비용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반려인들이 각자 반려동물 적금을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 보험 관련 내용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10년째 논의 대상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보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도적 문제가 더 크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보험이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조항들은 무엇인가.
"수의사는 진료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현행 '수의사법'상 수의사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어도 진료부 발급을 거부할 수 있게 돼 있다.
만약 진료 기록까지 공개하면 의사가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다 나오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약사예외조항을 폐지해야 한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동물약국을 개설한 약사는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만 제외하면 수의사 처방 대상 동물용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수의사 처방 없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진료 기록들을 보게 된다면 약을 구해 자가 진료를 함부로 하는 사례들이 늘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자가진료금지법안'과 '약사법'을 폐지해야만 한다. 이를 포함해 정부의 동물 관련 의료에 관련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페셜]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 “펫보험, 공적자금 지원돼야 실질 부담 줄어"
표준 진료비 정찰제에 대한 문제는 없는가.
"진료 동물병원마다 진료비가 다른 이유는 동물병원은 진료비 체계 없이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물병원은 사람 병원과 달리 서비스업에 속한다. 이 때문에 부가가치세(10%)를 내고 있어 진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은 국가 차원의 건강보험이 없다. 게다가 동물병원을 서비스 업종 수준의 규제를 하면서 사람 의료기관에 준하는 의무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국가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동물 진료비는 병원이 어느 지역에 있든지 같을 수는 있지만 현재는 국가 지원이 없어 같은 진료과목이라도 경제 논리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동물의료기구가 신설돼 어느 정도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반려동물 보험뿐 아니라 '수의사법'의 개선사항 등 이슈를 해결하는 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에는 동물 진료부 및 검안부를 보호자가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동물 지원 사업에는 공적자금이 필요하다. 진료 수가에 대해서는 현행 공정거래위원회 방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똑같이 받을 수는 없다."

반려동물 인구는 느는데 보험 가입이 더뎌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반려동물에게 적용할 수 있는 상품이 제한적이라고 생각된다. 비용이 크게 들어가는 안과 질환, 심장 질환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품이 없는 것이다."

해외 사례는 어떤가.
"외국에서는 대부분 부자들이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알려져 있다. 가난한 사람이 키우게 되면 학교, 정부 기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저렴하게 혜택을 주는 곳들이 있다. 동물 진료비가 워낙 비싸니까 보험을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보험을 보는 눈이 잘못됐다. 적정 보험료를 월 3만 원 선으로 보고 있지만 3만 원으로는 실질적인 보험 혜택을 받기 힘들다."

수의사회가 정부 혹은 기관에 말하고 싶은 것은.
"반려동물 가족 1500만 명 시대다. 1인 가구 수도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에 동물의료 전담기구가 신설돼야 한다. 하나의 동물 관련 기구가 설립된다면 전체 동물을 관리할 수 있고 보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정유진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