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interview] 작가 임경선이 말하는 ‘나다운 삶’
임경선 작가가 최근 몇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화두 몇 가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나이 듦과 작가로서의 생존 그리고 인생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투영해볼 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그만의 경험에서 출발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하는 ‘나다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임 작가를 만나 그가 최근 출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번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됐더라. ‘나이를 잊고 살 수 있을까’, ‘작가로 생존할 수 있을까’, ‘삶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중 어떤 주제를 쓸 때 가장 어려웠나.
“아무래도 나이에 대한 파트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서도 쓰지 말라고 하더라. 나 또한 처음에는 주저하는 면이 있었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의 경우 젊음이 곧 힘이라, 나이를 일부러 숨기기도 하지 않나. 이번 책에 담긴 주제들이 모두 쉬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면에서 힘든 주제였다.”

몇 살이 되더라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에이지리스(ageless)’라고 표현했더라. 어떤 의미인가.
“나이대에 따라 정해진 선입견이 있는데, 그런 선입견에 묶이지 않고 나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태도를 그렇게 표현해봤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사실은 나이 자체를 잊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좋다. 우리는 계속해서 오늘만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 나이를 어떤 핑계나 자기 합리화의 근거로 삼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 나이가 몇인데’ 혹은 ‘이 나이에 뭘’이라는 식의 진부한 태도에서 해방돼야 한다. 그런 것에 갇혀서 안주하기가 너무 쉽다. 어떤 그룹에 속해 버리는 방식으로 세상의 고정관념에 안착하는 셈이 될 수 있다.

특별히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몰입하는 태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태도를 만드는 대상은 사실 ‘일’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뭐가 됐든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 정신적으로도 빠릿빠릿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 번 크게 성공해 조기에 은퇴하는 꿈을 꾸는 건 전혀 좋지 않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별로 행복한 삶은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일을 하면서 갖게 되는 충만도가 크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를 할 때도 ‘에이지리스’에 가까운 태도를 지향하나.
“상대방의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친한 지인의 나이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어떤 나이대라도 가능하다고 여긴다. 요즘은 꼭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맺는 것 외에도 온라인을 통해 훨씬 더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 러닝크루만 해도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나.”
[interview] 작가 임경선이 말하는 ‘나다운 삶’
작가로 생존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담겼던데. 수익적으로 불안했던 작가 초기 시절에는 전략적으로 강연이나 행사를 맡았지만,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롱런하고 있으니 그런 활동을 꼭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지 않다. 여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시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악수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사람이 한 번 얼굴을 보고 나면 그 사람을 부인할 수가 없어서다. 은근히 발품 팔고 다니는 게 효과가 있다. 장편소설을 쓸 때는 사람을 안 만나고 집중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 달에 1~2회 정도 독자들을 만나 강연하는 게 기분 전환도 된다. 평소에 말을 안 하고 살기 때문에 한 번씩 시원하게 말을 하고 나면 순환이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는 걸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독자들을 만나고 나면 기를 얻어 갈 때가 더 많다. 물론 강연을 너무 자주 하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웃음)”

소설과 에세이 장르를 모두 쓰고 있는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나.
“둘 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소설 같은 에세이, 에세이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스타일의 글을 좋아한다.”

쓰는 과정이 더 즐거운 것은 어느 쪽인가.
“소설이 훨씬 즐겁다. 다만 소설이 쓰기가 더 어렵고, 잘 안 팔린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에세이 부문은 거의 다 한국 작가인데 소설 부문에는 해외 작가가 많이 섞여 있다. 그만큼 소설이 읽히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소설 중에도 베스트셀러가 존재하지만, 독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책을 한 권 사야 한다면 (에세이처럼) 곧바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사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작가 입장에서는 복잡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남들이 그걸 꼭 좋아해 주리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어느 시절에나 예술은 그랬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건데, 어쩌다 운 좋은 몇 명이 성공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최저 생계비로 겨우 먹고 산다.”

워낙 변화가 빠른 시대라 더욱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변화의 시대일수록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소신껏 붙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시기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나. 메타버스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겼다. ‘지금 이거 안 하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휩쓸리면 안 된다.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앞으로 그런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는 게 좋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아니라면 보내야 된다. 변하지 않는 사람, 내가 있어야 할 장소,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이런 것들로 채우는 것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큰 틀인 거 같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나.
“언제라도 글을 쓰고 싶지 않아지거나, 몸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예전에 연애를 할 때도 항상 이번 사랑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너 그 얘기 벌써 수십 번째 한다’고 놀렸다.(웃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으로 쓰는 것 같다. 새로 낸 책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는 거고, 앞날을 보장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지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쓰는 동안에는 그 안에서 굉장히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인데, 지금처럼 책을 한 권 내고 새로운 책을 시작하기 전이 가장 지치는 시기다. 특히 대형 서점을 가면 좀 괴로운 기분이 들어서 잘 안 가게 된다. 이렇게 책이 많은데 내가 여기에 껴서 꼭 책을 내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감정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작가 활동을 하면서 소재가 떨어진다거나, 타성에 젖어서 글을 못 쓰게 되는 등의 슬럼프는 없었다고.

“앞으로 생길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없었다. 쓸거리는 언제나 몇 개씩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직장인 출신이라 그런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뭐라도 일단 조사해서 정리해 놓고 본다. 그렇게 모아놓은 내용 중 마음이 동하는 쪽으로 글을 쓴다. 지금은 단편소설집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이야기에 등장할 주인공이나 배경, 낭만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있는 상태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어떤 부분들을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면, 그것들이 연결돼 이야기가 된다. 신기하게도.”
사진=마음산책
사진=마음산책
새롭게 준비하는 작품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이번에는 단편소설집인가.
“원래 에세이와 소설을 교차해서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 스타일이기도 한데, 이번에 장편소설을 썼다면 다음에는 에세이를 쓰고, 그다음에는 단편소설을 쓰는 식이다. 이렇게 골고루 작업하면 스스로도 잘 질리지가 않는다. 이번 단편소설집에는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다.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한다. 결국 문학이라는 것은 마음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효율성이 중시되는 시대라고 해도, 깊은 감정을 두루 느끼는 것이 곧 ‘살아 있다’는 실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갖고 있는 인간성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감정 때문에 무너질까 봐, 혹은 힘이 드니까 빨리 그 상태에서 벗어나서 무감각해지길 원한다. 괴롭고 슬퍼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못 본 척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보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로 가지 않고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되돌아올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역할을 소설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작업의 성격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12년 동안의 회사원 생활은 일을 어떻게 빌드업을 하는지 가르쳐준 것 같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회사 생활을 통해 배웠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까지 어떻게든 끌고 가는 힘이 생겼다. 또 일이 되든 안 되든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덕분에 꾸준히 책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았으면 좋겠나.
“나는 삶의 태도와 관련된 에세이를 쓸 때, 결코 정답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은 이런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하는 책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지 답을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물론 타인의 경험은 언제나 참고가 될 수 있다. 독자들이 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의 외연을 넓힐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삶의 테두리를 정해준다거나, 독자들이 ‘성장’을 해야 한다는 키워드를 주고 싶지 않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왜 싫은가.

“그건 너무 성적표 같은 이야기니까. 그냥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 책을 언뜻 보면 성장을 추구하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런 단어가 전혀 없다. 나의 기본적인 관점은 ‘자유롭게 살자’다. 성장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행복’이나 ‘힐링’이라는 단어도 안 좋아한다. 적당히 사람을 기분 좋게 하지만, 굉장히 모호한 키워드다. 물론 사람이 더 나아지면 좋은 거겠지만, 자칫 이런 단어가 사람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나에게는 너무 매력이 없다. 결국은 멋과 낭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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