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지현 인터뷰
뮤지컬 <그날들>의 ‘그녀’, 배우 김지현을 만났다. 올해로 벌써 배우 생활 20년에 접어든 그에게 이번 작품과 연기자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고(故) 김광석의 명곡들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구성으로 20년 전 사라진 ‘그날’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린다.창작 뮤지컬 연출의 대가 장유정 연출의 탄탄한 극작과 과감하면서도 따듯한 감성이 녹아 있는 장소영 감독의 섬세한 편곡은 물론 무술에 아크로바틱을 접목시킨 신선호 안무감독의 화려한 군무가 어우러져 2013년 초연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등 고 김광석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지금까지 55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뮤지컬 <그날들>의 백미 중 하나는 화려한 캐스팅이다. 이번 10주년 기념공연 역시 유준상, 오만석, 엄기준, 지창욱, 김지현 등 역대급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국내 최고 연기자들이 쏟아내는 이번 작품은 또 어떠한 역사를 쓰게 될까.
그 궁금증을 해갈하고자 만난 이 사람, 뮤지컬 <그날들> 속 정학과 무영이 경호하는 의문의 여인 ‘그녀’ 배우 김지현을 만났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그에게 이번 작품은 초연을 제외하곤 매 시즌 함께할 만큼 특별한 작품이다. 배우 김지현이 생각하는 작품의 찐 매력은 무엇일까.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해봤다.
우선, <그날들> 10주년 공연에 참여하시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솔직히 예전부터 혹시 10주년 공연을 함께하자고 제안해주시면 어쩌나 걱정한 게 사실이에요. 제가 처음 이 작품을 연기했을 때가 34살이었는데 10주년 공연에서는 배역에 비해 나이가 좀 많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캐스팅 제안을 받고 연습을 시작하니 이렇게 또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무엇보다 작품을 오랫동안 함께했던 멤버들과 다시 만나서 연습하다 보니 제가 생각보다 더 이 작품을 그리워했구나 싶더라고요.”
이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의 힘은 극 이야기와 김광석 노래가 정말 잘 어우러지죠. 물론, 주크박스 극이라 처음 접하신 분들 사이 호불호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작품을 하면 할수록 이 정도면 극과 노래가 꽤 잘 융합된 거라 느껴져요. 무엇보다 요즘엔 작품 속 음악들만 들어도 눈물이 나와요. 어쩌면 그게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움의 정서가 녹아 있어요.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 혹은 그게 이별이 아니라도 이렇게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과거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정말 좋더라고요. 누구나 어떤 노래를 들으면 추억할 수 있는 사람 한두 사람은 꼭 있잖아요. 그런 점들이 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에 꾸준히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 속 ‘그녀’의 역할을 맡게 되셨는데, 연기하시는 데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다만, 새로운 배우 분들이 합류하신 만큼 그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나도 기존에 하던 거에 딱 머물러 있지만은 않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때는 있죠. 동시에 주변 배우들의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편이에요. 특히, 동료들한테서 듣는 얘기들은 어떤 얘기든 다 잘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들 중 제가 어떤 걸 수용할지 안 할지는 제 선택이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평을 듣다 보면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죠.”
20년 배우 생활을 유지한 비결이 있다면요.
“한 해 한 해 하다 보니 벌써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저란 사람 자체가 사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은 아니에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자고 하는 주의죠.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해 온 이런 무던함이 꾸준함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특별한 슬럼프는 없었어요. 다만, 2014년에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를 할 때였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지만 당시 제가 맡은 역할이 어리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였는데 어렵더라고요. 뭐랄까 ‘내가 연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맞나?’란 생각이 자주 들었죠. 물론 당시 연출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확신을 갖고 무대에 오르지 못해서 마음이 좀 어려웠던 시기였죠. 다행히 그 작품 이후 연이어 만난 연극 <프라이드>로 많이 회복해서 감사했던 기억이 나네요.”
배우 외 다름 삶을 꿈꿔보신 적은 없나요.
“글쎄요. 저는 제가 어느 분야에 뛰어난 거를 제 스스로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의미로 바보 있잖아요. 연기가 너무 좋아서 ‘연기밖에 모르는 바보’ 이런 의미라기보다는 정말 다른 건 모르는 바보요.(웃음) 실제로도 다른 친구들이 본업 외에도 다른 것들을 하는 걸 보면 엄청 신기해요. 자격증도 따고, 요리도 잘하고 말이죠. 부럽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도 이 일 외에는 다른 걸 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가요. 아마 앞으로도 저는 연기를 계속 하든지 아니면 그만두고 자연으로 들어가서 살지 고민할 것 같아요.”
유독 눈물연기를 잘하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그런 부분에 장점이 있는 편은 맞는 것 같아요. 울기도 잘 울지만, 평소에는 농담도 잘하고 굉장히 재밌는 사람이에요. 저를 알고 나면 ‘의외’라는 반응도 꽤 있죠. 그저 저는 그런 (깊은) 감성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마냥 푹 그 감성에 젖어 있기보다는 순간순간에 집중하죠. 이를 테면 이런 거예요. 저는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편은 아닌데 가을의 씁쓸함을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혼자 그냥 그 가을을 오롯이 느끼려고 노력하죠. 반대로 봄의 설렘도 좋아하고요.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느끼고 무뎌지지 않는 것에 감사해요. 이런 감성들이 제 안에 내재되는 것 같아요.”
올해 꼭 이루고 싶었던 것 중에 아직 해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여행을 하고 싶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20주년 콘서트 계획은요.
“아직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가끔 팬 분들 중에 ‘콘서트 안 하시냐’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있긴 해요. 그런데 솔직히 제가 그 정도로 노래를 할 만한 역량이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한 30주년 되면 한번 생각해보려고요.”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요.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람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저는 일단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야 후회도 안 남을 테니까요. 뭐든 쉽진 않겠지만 어떤 일이든 본인이 경험을 해보고 나서 포기해도 하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전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를 알아가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지막으로 <그날들>, 이래서 봐야 한다고 한마디 하신다면요.
“어쩌면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우리 삶에서 사실 제일 큰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저는 나이가 들수록 사랑도 커지지만 그보다 우정이 더 진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정서들이 이 작품에 오롯이 녹아 있으니 많이들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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