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고민 중이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 “설마 이혼하자고 답하신 건 아니죠?”라고 되묻는다. “고민하고 있다” 정도로 답하면 일단 다행이다. 보통 ‘이혼하자’는 말은 ‘너무 속상하다’는 감정을 강하게 표현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진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표면적인 소통의 메시지와 ‘메타 의사소통(meta communication)’이 주는 메시지가 다를 때다. 뉘앙스나 표정 등이 메타소통의 예다. 앞서 말한 경우처럼 ‘이혼하자’는 말은 정말 헤어지자는 뜻이 아닌, ‘이혼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으니, 반성하고 행동을 바꾸어줘’가 실제 하고 싶은 말일 수 있다.
얼마 전 메타소통과 관련해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한 기업에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가 리더 회의에서 “앞으로 저녁 8시 넘어서까지 직장에 절대 남아 있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발언 이후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리더 대부분이 저녁 8시경 주차장에서 서로 만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한다. CEO의 이야기가 ‘이중 구속(double bind)’의 소통이 된 셈이다. 이중 구속은 상반된 이중 메시지가 전달돼 혼란을 주는 경우라 할 수 있는데, CEO의 이야기가 ‘일과 삶의 균형을 챙기라’는 메시지 같지만 동시에 ‘8시 전에는 퇴근하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들리는 상황인 것이다. CEO의 진심이 앞의 메시지였다면 잘못된 메타 의사소통으로 모두가 황당해진 상황이다.
‘힐링’이 일하라는 말로 들려요
‘힐링’이란 말이 꽤 오랫동안 유행이다. 힐링이란 단어 자체가 지친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됐기에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직장인이 나에게 “휴식이란 단어가 좋지 힐링은 싫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힐링이란 말이 일하라는 말로 들린다는 것이다.
최근 마음 관리 영역에서 ‘미니 브레이크’가 관심이다. 이는 업무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작은 쉼을 갖는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2~3시간 근무 후, 10분 정도 가지는 미니 브레이크는 힐링에 도움이 된다. 커피 한 잔이나 동료와의 담소, 또는 음악 한 곡 듣기 등 나름의 멘탈 브레이크 스위치를 개발하면 좋다. 한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서 시행한 미니 브레이크 관련 연구를 보니 미니 브레이크를 가진 직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뇌 피로와 연관된 뇌파 변화가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더들에게 적극적으로 미니 브레이크를 코칭하라고 조언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주의사항이다. 쉬는 시간을 정해 두는 학교 생활처럼 미니 브레이크를 갖게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렇듯 힐링을 잘하면 삶의 만족도와 일의 성과가 자연스럽게 증가하지만, 잘못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다. 미니 브레이크 같은 힐링 활동을 더 행복하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하면 마음이 숙제로 느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더 행복해지건 말건 업무 능력이 더 향상되건 말건, 친구가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나만의 브레이크를 가질 때 뜻하지 않게 행복도 성과도 증가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내 마음에 작은 선물 주기
미니 브레이크는 내 마음에 작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마음 관리를 다르게 표현하면 내 마음과의 소통이다. 재밌는 건, 내 마음인데, 타인과의 소통보다 더 어렵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직접적인 소통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메타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마음에게 말로 “나를 위해 고생하는 너에게 감사해”라고 말해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다양한 정서적 안정, 치유 방법을 가진 ‘힐링 부자(富者)’는 내 마음이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리스트, 즉 힐링 데이터베이스가 가득 찬 경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떤 선물, 어떤 미니 브레이크를 좋아하는지 ‘시행착오’를 통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친구나 가족에겐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직접 물어보면 되지만 내 마음과는 직접 소통이 어렵기에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힐링 데이터베이스를 채우는 팁을 소개하자면 첫째, 과거에 내가 힐링 됐던 활동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마음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해 과거에는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이상하구나’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나랑 맞을 것 같은 힐링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의외로 반 정도는 안 맞을 수 있다. 내가 내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방법은 나랑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힐링 활동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친구 때문에 억지로 끌려가 해본 힐링 활동에 푹 빠져 자기가 더 열심히 하게 됐다는 사연을 자주 접한다.
‘어떤 힐링 활동이 나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꽃꽂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억지로 참여해봤는데 의외의 힐링을 경험해 놀랐던 적이 있다. 내 힐링 데이터베이스에 예상치 못한 꽃꽂이가 올라가게 된 것이다. 사진의 꽃을 보면 웃음이 나고, 미니 브레이크가 찾아온다, ‘내가 직접 만든 꽃꽂이가 맞나’ 하는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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