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진 자기발견연구소 대표

여기 잘나가던 17년 차 금융맨에서 온전한 ‘자기발견’을 찾아 버킷리스트로 비즈니스를 꾸린 사람이 있다. 바로 최호진 자기발견연구소 대표다. 자칭타칭 ‘버킷리스트 마스터’인 그가 말한 다양한 버킷리스트의 힘과 매력 그리고 향후 비즈니스 전망에 대해서 들어봤다.
[special]"개인·기업, 자기발견 통해 동기부여 강해져"
‘미용실 가기’·‘멍 때리기’·‘삼시세끼 남이 해준 밥 먹기’

‘3대 500(벤치프레스·데드리프트·스쿼트의 무게 합이 500)’·‘건물주 되기’·‘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


혹자는 이것을 ‘소확행’과 ‘꿈’ 정도로 구분할지도 모르겠다. 전자가 일상에서 누리고 싶은 소망 정도라면 후자는 마치 일생을 건 원대한 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이 항목들이 발췌된 곳은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렇다. 살다 보면 나에게는 아주 하찮은 일상이 누군가에겐 의외로 절실히 이루고 싶은 꿈이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인간은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자아실현과 행복을 얻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열망이 점차 일터로도 확장되고 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일도 자아실현의 주요 수단으로 여기는 MZ(밀레니얼+Z) 세대가 경제인구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일터 내 호모파베르와 호모루덴스의 공존은 작금의 시대상이 됐다.

그래서일까. 기업에서도 훌륭한 인재 고용 및 이탈을 막기 위해 사원들의 자아실현을 돕고 있다고. 사내 자체적으로 개발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하고, 각종 세미나와 교육, 여가와 문화 활동에도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할 것만 같은 MZ세대들 중 상당수도 진정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그저 가족을 위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세상의 수많은 일꾼들은 여전히 ‘번아웃’을 외친다.

최호진 자기개발연구소 대표도 불과 3년 전까지 이들과 다르지 않았던 전형적인 금융맨이었다. 원래 아나운서를 꿈꿨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금융권으로 취업을 했다. 25세의 나이에 국내 굴지의 은행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는 15년 차가 되던 해 문득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입사 이후부터 줄곧 ‘정년퇴임’이 꿈이었던 그에게 알 수 없는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2019년 1월 돌연 휴직을 한 최 대표는 끊임없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지인의 추천으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100가지 써보는 것이었다. 최 대표는 버킷리스트 쓰기를 통해 왜 회사 생활에 번아웃이 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을 소망하는지 하나씩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일의 의미는 물론이고, 삶의 의미도 명확히 알게 됐다고. 그는 지금도 매년 버킷리스트를 쓰면서 자기발견을 이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책도 출간했고, 더 나아가 버킷리스트 워크숍 ‘자기발견연구소’를 운영하며, 개인은 물론, 기업과 사회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다른 사람의 자기발견을 돕고 있다. 과연, 그가 말하는 ‘자기발견’은 무엇이고, 버킷리스트는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해주는 걸까. 최 대표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자기발견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자기발견연구소는 개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곳이에요. 저는 이 워크숍에서 사람들이 자기의 장점이나 욕망들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기발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발견이란 어떤 의민가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이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평상시 몰랐던 진짜 나의 모습들, 원하는 것들이 무엇이고 내가 가진 가치는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걸 잘 모르세요. 아이러니한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성실하잖아요. 공부도, 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는 무척 열심히 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는 불성실했던 것 같아요. 그런 갈증들이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것 같고, 저는 그 해결 도구로 ‘버킷리스트’를 선택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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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버킷리스트죠.
“제가 소개하는 버킷리스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버킷리스트와는 달라요. 1년 뒤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1년 안에 하고 싶은 일을 무려 100개나 써보는 것이죠. 기간도 제한적이고 써야 할 개수도 많다 보니 쓰는 일을 처음에는 어려워 하시죠. 저 역시 그랬어요. 그저 정년퇴임만 꿈꾸며 17년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중 번아웃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100개 써보게 됐어요. 솔직히 처음엔 뭔가 막막하고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쓰면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나는 그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저를 유심히 들여다보니까 그것만으로도 뭔가 채워진 느낌이었어요. ‘회사 밖에 좋은 인연 맺기’, ‘멘토 만나기’, ‘작가의 수업 들어보기’, ‘글쓰기’ 등등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제 버킷리스트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그것들을 유심히 보니까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보였어요. ‘아, 나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꿈꾸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런 저를 돌보지 않고 일만 했으니 갈증이 생겼던 거죠. 그렇게 2018년 1월부터 매해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했고, 이 분야에 몰입하게 됐습니다.”

버킷리스트는 어떻게 쓰나요.
“대개 우선 그냥 편안하게 아이스 브레이킹부터 시작해요. 제가 먼저 질문을 던지죠. ‘만약 24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면 뭘 하고 싶냐’고 묻고, 이야기를 나눠요. 그리고 3년 후 자신의 모습은 어떨지 미래 일기를 한번 써보라고 하죠. 동시에 내가 그걸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하고 싶은 일도 써보게 해요. 물론, 처음에는 어려워하시는데 그냥 아주 사소한 것부터 편하게 써보라고 독려하죠. 이렇게 쓴 것들을 벽에 붙여서 시각화해요.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버킷리스트도 보면서 나에게 줄 선물은 무엇이 있을지 또 고민해서 남은 버킷리스트들을 채워 적어 나가요. 그리고 저희 워크숍의 백미는 각자가 작성한 버킷리스트들을 함께 보면서, 설명하거나 대화를 나눠요. 이 시간을 참가자들이 가장 좋아하시죠.”

왜일까요.
“낯선 사람한테서 자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조금 더 객관적인 자기발견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 행위 자체가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가 되기도 해요. 되레 평상시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을 표현함으로써 내적 친밀감도 쌓이고요. 무엇보다 저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데에 더 집중하라고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실천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죠. 이미 버킷리스트를 쓰는 과정에서 그 내용들이 잠재의식에 남아서 그것들이 반복되면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되레 ‘이것들을 반드시 실천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건 버킷리스트가 아닌 ‘투 두 리스트(to do list)’처럼 의무가 돼 버리죠. 그냥 자신의 순수한 욕망을 확인했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추후에 연말에 한번 돌아보시라고 말씀을 드려요.”

사람들은 어떤 버킷리스트를 꿈꾸나요.
“다양하죠. 세대별로도 다르고, 그 사람이 놓인 환경 등등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에요. 가령, 2030세대들은 ‘갓생살기’를 많이 쓰세요. 요즘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기계발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혹 재밌는 점이 종종 젊은 남성들 중에 ‘3대 500 달성하기’를 버킷리스트로 쓰시는 분들이 많고요. 중장년들은 은퇴 이후의 삶을 더 잘 채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버킷리스트 고민들을 많이 하시고요.”

기업에서도 버킷리스트 워크숍을 원하는 이유가 뭘까요.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측면이 강해요. 누구나 회사를 다니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잖아요.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종종 ‘회사를 어떻게 더 잘 다닐 수 있을까’ 고민들이 많아지죠. 특히, MZ세대 신입사원들은 그런 고민이 더 크죠.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사원들의 고유 가치를 찾게 해주고, 자아실현 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 도와주면서 에너지를 북돋워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런 노력들이 결국 회사의 생산성에도 도움이 되고, 퇴사율도 낮출 수 있다고 보죠. 두 번째는 ‘팀워크’ 향상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버킷리스트를 쓰다 보면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돼요. 또 각자의 취향을 논하다 보면 공통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취향공동체로도 확장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죠. 가령, 어떤 회사에서는 대표가 버킷리스트에 ‘하루 30분 멍 때리기’를 쓴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본 직원들이 ‘아, 대표님도 우리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일까요. 버킷리스트를 공유하고 회식을 하면 대화가 끊이지 않는대요.(웃음)”

버킷리스트도 결국 자기계발인데, 향후 이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세요.
“나날이 ‘나다움’이라는 가치를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 같아요. 관련 사업들도 ‘자기계발’ 시장과 함께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요. 단, 자기계발조차 지나치게 획일적인 것들을 주입하는 교육이나 서비스는 피하시길 바라요. 자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인데도, 남들도 다 하니까 따라하다 보면 결국 삐거덕거리게 되거든요. 누구나 경제적 자유를 꿈꾸지만, 반드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최우선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천천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해보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제가 올해 꼭 해보고 싶었던 분야가 ‘자립준비청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하는 거거든요. 사실 아직도 꿈을 꾸기조차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꿈까지는 아니지만 그저 1년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편안하게 써볼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돌멩이’ 같은 존재랄까요. 누군가의 삶에 너무 제가 개입하기보다는 물에 던져지는 돌멩이처럼 그분들 마음에 잠시나마 행복한 파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