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JLL 코리아 부동산 투자자산 자문 본부장
“상업용 부동산 가운데 근생 건물은 공실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셀프 스토리지 사업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글로벌 부동산 종합서비스 기업인 JLL 코리아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셀프 스토리지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2년 연속 셀프 스토리지 시장 리서치 보고서를 내며 업계 동향을 주의 깊게 살피는 중이다.
김명식 JLL 코리아 부동산 투자자산 자문 본부장은 “국내 상업용 부동산의 변화 흐름을 보면 셀프 스토리지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외국계 업체들도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과 셀프 스토리지 시장이 담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셀프 스토리지는 어떤 산업인가.
“공간의 가치 상승으로 인해 생겨난 신개념 부동산 전대(재임대) 비즈니스다. 도심 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며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자, 오피스, 주택 등 본연의 역할을 가진 부동산 외에도 별도의 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다고 셀프 스토리지를 단순한 소형 창고 개념으로만 볼 수 없다. 이삿짐 보관부터 기업 문서 저장, 소규모 물류 거점, 미술품 등 고가 수집품 보관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할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서비스라고 들었는데. 해외 상황이 궁금하다.
“주거 비용이 높은 미국의 경우 셀프 스토리지 산업이 굉장히 발달했다. 이미 미국 전역에 셀프 스토리지가 분포돼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 상당수의 리츠가 상장됐다. 다만 우리나라와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일단 규모가 굉장히 크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엄청난 고밀도 도시인 뉴욕 같은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990~1320㎡ 규모의 개인 창고 서비스가 존재하고, 대도시 외곽에는 대형 마트 면적에 버금가는 셀프 스토리지가 형성돼 있다. 자동차, 농기구까지 개인 보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셀프 스토리지 시장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 등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셀프 스토리지를 도입했다. 특히 일본 도쿄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크게 겪은 도시다. 폭등기를 거치며 셀프 스토리지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편이다. 한국은 개인 물건을 창고에 보관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항상 내 옆에 두길 선호하고,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보관하면 불안해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심리를 간파한 국내 브랜드들은 주거 지역 인근에 셀프 스토리지를 마련하고 있다. 언제든지 물건을 찾아 올 수 있는 거리를 선호하는 소비자 경향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 셀프 스토리지만의 특징이 있나.
“해외 업체 중에서는 아직 자물쇠 형태의 출입문 잠금 장치를 사용하는 곳도 있는데, 우리나라 업체들은 디지털 원격 조정, 편안한 분위기 등을 강조한 셀프 스토리지가 많다. 짐 포장 서비스라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편의 공간을 마련해 둔 곳도 있다. 디자인부터 서비스까지 한국인 취향에 맞춰 굉장히 수준 높고 쾌적하다. 다만 도심에 있다 보니 임대료가 비싼 경향이 있는데, 복합쇼핑몰이나 근린생활시설 지하 등 저렴한 공간에 셀프 스토리지 지점을 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셀프 스토리지 이용 비율은 자영업자보다 개인고객이 더 많다고 들었는데,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자영업자가 굳이 셀프 스토리지를 이용할 유인은 떨어지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셀프 스토리지를 도심 내 소규모 물류 거점으로 이용하는 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물건을 수입해 1차 가공을 한 뒤 판매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제품이 크고 개수가 많다면 대규모 창고에 보관할 수 있겠지만, 박스 10개 정도에 충분히 보관되는 규모라면 굳이 원거리 창고를 오갈 필요가 없지 않겠나. 판매 지역과 가까운 도심에 제품을 적재해 두고자 하는 자영업 수요가 존재한다.” 국내 어떤 지역, 건물에 주로 형성되나.
“대형 오피스 건물이나 복합쇼핑몰, 근린생활시설 지하 등에 형성되고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에도 셀프 스토리지 브랜드가 입주한다. 최근 일부 아파트는 건물 지하에 개인 창고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 우리나라 아파트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설이다. 셀프 스토리지의 필요성과 고객 수요를 건설 업계에서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다른 부동산 임대 사업과 비교했을 때 수익률, 장기적인 공간 경쟁력이 높은 편이라고 보나.
“셀프 스토리지는 일정 공간을 캐비닛, 편의시설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다. 마치 공유오피스를 임대해주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임대인 입장에서 셀프 스토리지를 임차인으로 입점시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일단 장기 임대 형태가 선호되기 때문에 자연 공실률 없이 꾸준한 임대 수익을 볼 수 있는 임대 매장(tenant)이다. 대형 분양상가, 상가 오피스텔, 복합 쇼핑몰 등의 수분양자가 눈여겨보면 좋다. 상가나 오피스처럼 많은 사람이 상주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쾌적한 운영이 가능하다. 다만 주차 공간과 물건을 적재하고 내리는 장소는 보장돼야 한다. 물건 보관을 고려하면 누수, 정전, 화재 등 시설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에도 한계가 있는 업종이다. 아직 한국 시장에서 필수 서비스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가격에 대해서도 심리적 저항선이 존재한다.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격을 맞춰 나가려면 임대가가 저렴한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임대 가격을 아주 높게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셀프 스토리지도 일종의 구독 경제인데, 공유오피스 비즈니스와 비교한다면.
“두 사업모델은 공간을 빌려 재임대하는 비즈니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과 공실률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에 기복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현재 오피스 공실률은 강남 비즈니스 권역(GBD), 광화문 비즈니스 권역(CBD), 여의도 비즈니스 권역(YBD) 모두 최저점에 와 있다.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 임차를 유지했던 공유오피스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에 반해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근생 용도 건물은 공실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분양 부동산 쪽은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미분양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 추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공간에 셀프 스토리지 사업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도시 집중화 현상, 주거 형태의 변화, 저출산 등으로 인해 셀프 스토리지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개인투자자를 위해 조언한다면.
“사실 셀프 스토리지는 비교적 접근성이 낮은 ‘쉬운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피트니스센터나 목욕탕, 스크린 골프 같은 비즈니스는 공간 관리가 힘든 측면이 있다. 반면 셀프 스토리지는 안전하게 물건을 보관하고 쾌적한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 최근 신규 오피스텔 저층부가 분양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간을 저렴하게 매입해 낮은 비용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은 셀프 스토리지 브랜드가 임대인과 공동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모델을 활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국내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가 경기 방어적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세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가계대출을 받은 서민과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로 주택을 구입한 분들의 이자 부담이 크다. 강남을 포함한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셀프 스토리지의 외연은 확장됐으나 이용률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각종 소비재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셀프 스토리지 이용 요금으로 적게는 몇 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지출했던 개인고객의 수요가 당분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와 금리 인하 기조가 형성되면 이 비즈니스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미 해외 대형 셀프 스토리지 업체도 국내 시장 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설 준비를 마친 상황이다. 향후 서울 시내 대형 주거 개발 프로젝트와 그에 따른 시장 변화로 인해 셀프 스토리지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셀프 스토리지 산업의 장기 전망은.
“현재는 개인이 셀프 스토리지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저항선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그 돈을 주고 내 물건을 보관하는 것이 맞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이 한정된 도시 라이프 속에서 소득과 문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잉여 공간이다. 따라서 셀프 스토리지 산업은 영속성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미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 고밀도 도시에서 셀프 스토리지가 성업하고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관련 산업이 정착될 것이라고 본다. 반대로 말하면 셀프 스토리지가 자주 눈에 띄면 그만큼 국내 소득 수준과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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