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컴퓨팅
![애플이 보여주는 새로운 미래, ‘비전프로’](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D.34116361.1.png)
새로운 장르, 공간 컴퓨팅
![WWDC23에서 팀 쿡이 공개한 ‘비전프로’와 함께 공간 컴퓨팅 시대가 열렸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D.34116363.1.png)
정작 팀 쿡 애플 CEO는 메타버스나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비전프로를 소개하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공간 컴퓨팅’이었다. 공간을 활용해 무엇인가를 보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컴퓨터로 소개한 비전프로의 역할은 명확했다. 바로 넥스트 스마트폰이다. “맥Mac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 시대를 연 것처럼 비전프로는 공간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애플이 헤드셋을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접했을 때 전문가들은 일제히 메타버스의 귀환을 예상했다. 하지만 애플은 메타버스를 뛰어넘은 공간 개념을 가지고 왔다. 우리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보던 화면을 가상공간에서 더 크게, 더 넓게, 더욱 현실감 있게 보는 것이다. 공간을 디스플레이로 쓰는 컴퓨터인 셈이다. 글을 쓰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사진과 동영상 편집, 음악 작업까지 비전프로의 세상 안에서 더 넓은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 OTT로 보던 영화도 가상공간의 극장에서 보여준다.
여기에 그동안 가상현실 헤드셋이 하지 못한 것들도 추가된다. 비전프로는 어떠한 컨트롤러 없이도 손과 눈의 움직임으로 앱을 사용할 수 있다. 페이스타임FaceTime 통화를 하면 상대방 모습이 눈앞에 실물 크기로 보이고, 공간 음향을 적용해 앞에서 음성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거나 그외 다양한 일이 가능한, 조금은 다른 형태의 컴퓨터라는 것이 애플이 설명하는 비전프로의 정체성이다.
혼돈의 메타버스 시장
애플이 7년 만에 내놓은 비전프로는 먼저 출시된 헤드셋과 비슷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컴퓨팅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메타(구 페이스북)가 지난해 발표한 ‘메타 퀘스트 프로’의 업무 환경 확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홀로렌즈’로 바라본 앞으로의 경험 중 하나가 공간 전체를 디스플레이로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각의 기기는 미세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애플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메타는 애플의 비전프로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애플이 공간 컴퓨팅을 내세웠다면, 메타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개인 간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차이는 기기에 대한 비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2022년 12월 <뉴욕타임스>가 주최한 ‘딜북 서밋’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VR 헤드셋을 시연하고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D.34116364.1.png)
반면 애플은 증강현실에 대해 2017년부터 많은 준비를 해왔다. 개발자가 앱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해 코드 몇 줄로 증강현실을 각자의 앱에 담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여러 개발 환경을 토대로 애플은 오래전부터 개발자에게 헤드셋 형태의 기기를 예고해왔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증강현실 앱을 비전프로로 옮기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며, 또 제품 출시 전까지 많은 기업이 비전프로의 공간 컴퓨팅 환경 안에 앱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고민해왔다. 모든 것을 준비한 뒤 깜짝 이벤트를 하는 애플이 아직 개발 중인 기기를 WWDC에서 공개한 것 역시 이 비전프로의 완성이 하드웨어가 전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마무리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이 쏘아 올린 공
비전프로 이전에 이미 출시된 헤드셋은 시장에서 돌풍까지 일으키지는 못했다. 7년 만에 세상에 등장한 비전프로 역시 당장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이제까지 쓰던 PC와 스마트폰을 대신해 모든 컴퓨팅을 흡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애플의 공간 컴퓨팅이라는 접근은 이 기기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그 어떤 기기보다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 개발자가 WWDC23을 위해 애플 파크(Apple Park)에 모였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D.34116373.1.png)
![비전프로의 외형은 스키 고글과 같다. 이를 착용하면 바로 눈앞에 MR 세상이 펼쳐지는 하나의 컴퓨터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D.34116374.1.png)
“애플이 메타버스와 관련해 무엇을 내놓고,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건 매우 흥분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는 즐거운 여행 같은 일이다.”
2~3년 전 세계적으로 메타버스 신드롬이 일어났을 때 애플은 여전히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바다 밑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세간에는 가상현실 기술팀이 해산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던 애플은 팬데믹이 지나고 메타버스, 비대면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져갈 무렵 혼합현실 헤드셋 비전프로를 세상에 선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바꿀 만한 움직임에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준비된 자만이 알 수 있는 타이밍일지 모른다.
글. 최호섭(IT 칼럼니스트)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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