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빈곤감
바쁜 것이 곧 성공은 아니지만, 대체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중에 한가한 사람은 드물다. “그 친구는 잘나가서 만날 수가 없어” 같은 말엔 친구가 성공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보기 힘들어지니 섭섭한 마음이 담겨 있다. 성공은 했는데 친구와의 우정은 옅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성공이 곧 행복이라 믿고 시간을 다투며 열심히 살아가는 중에 불쑥 찾아온 ‘시간 빈곤감(time poverty)’에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시간 빈곤이란 일주일 168시간 중에 개인 관리와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을 경우를 의미한다. 시간 빈곤의 느낌은 삶의 만족감과 긍정성, 마음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더불어 창의성, 업무 능력, 인간관계의 질마저 떨어뜨린다는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 빈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여유 시간을 많이 확보하면 ‘시간 부자’가 되는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게 설계돼 있지 않다.
사업 스트레스에 힘들고 시간 여유가 없어 사업체를 정리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경제적 여유까지 갖췄다면 제2의 삶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물리적 시간 빈곤감에선 벗어났는데 삶의 만족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텅 빈 시간 속에 오히려 심리적 빈곤감을 더 느낀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까지 찾아온 사례도 접했다. 시간 여유가 생기니 막상 무엇을 할지 막막해 점차 무기력이 찾아왔고, 집에만 있는 상황에서 결국 우울이 찾아온 경우였다.
시간 빈곤감에서 심리적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빈 시간에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 ‘한가해지면 친구들을 만나야지’, ‘은퇴하면 먼 곳으로 해외여행을 가야지’ 이런 상상 자체가 마음의 시간 빈곤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루 작은 활동이라도 연결(connection)과 자유(freedom)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액션’ 하는 것이 동시에 필요하다. 시간 빈곤감은 연결과 자유의 콘텐츠를 느낄 때 만족감으로 전환된다. 연결과 자유
우리 마음은 누군가와 연결이 됐을 때 그 시간의 풍족감을 느낀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힐링 친구’가 행복을 선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치매 예방 효과에 탁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즘에는 반려동물에게 연결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개념은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란 주제로 열린 한 학술 모임에서 제안됐다고 한다. 내용은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존중해, 애완동물을 장난감이 아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것이었다.
반려동물과 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에서, 공감(共感)에 있어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인생 고민으로 지쳤을 때 자기 경험을 믿고 달변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친구보다 말없이 옆에 앉아 어깨를 어루만져주는 친구에게 더 위로를 받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반려견이 내 마음을 이해하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동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학습에 의한 것일까. 반려견이 상당한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과의 학습 경험이 거의 없는 어린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칭찬의 말을 했을 때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시간이 평균 6초 정도 됐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반려견의 마음에 담겨 있는 사회적 지능이 6초라는 짧은 시간 눈맞춤으로 표현될 때, 사람의 외로움 유전자도 따뜻함을 느끼는 셈이다.
인간은 외로움을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외롭기에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망한다. 배고픔이란 본능이 참기 어려운 것처럼 외로움이란 허기도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바쁜 시간이라도 따뜻한 연결, 작은 스몰 토크라도 가질 때 우리 마음은 여유로움을 느끼고 삶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연결만큼 중요한 것이 자유로움이다. 사실 연결과 자유로움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가까워지면 갑갑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인맥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유로움이 증가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또 고독을 느낀다.
연결과 자유로움의 밸런스를 잡는 것이 이상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어렵다. 오락가락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스스로를 미성숙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타고난 특징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