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스트 오너십 7
기업 평가에 있어 영원한 1등도, 꼴찌도 없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베스트 오너십 기업으로 꼽혔던 카카오가 ‘워스트 오너십’의 가장 윗단에 이름을 올리며, 불명예를 얻었다. 금호아시아나, 호반, 부영 등도 오너리스크에 몸살을 앓으며,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베스트 오너십 설문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카카오’의 몰락이다. ‘상생’, ‘혁신’, ‘도전’ 등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카카오 관련 수식어들은 대개 호평 일색이었다. 여기에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완전히 뒤엎는 창업주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의 혁신적인 오너십도 국내 기업 문화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카카오의 영광은 과거 한경 머니의 베스트 오너십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처음 지정된 카카오는 설문 대상에 포함된 첫해 굴지의 대기업들을 제치고 4위에 오른 뒤, 2020년과 2021년엔 각각 2위와 5위에 랭크됐다.
하지만 이러한 카카오의 위상은 지난해부터 추풍낙엽처럼 낙하 중이다. 2022년 베스트 오너십 설문조사에서 28위로 급락한 데 이어 올해는 최하위인 40위를 차지했다. 카카오의 시가총액도 이와 비례했다. 2021년 당시 70조 원을 넘던 시총은 2년 새 3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실적 역시 뒷걸음질했다. 카카오의 올해 1분기(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711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55.2% 줄었고, 순이익은 871억 원으로 93.4%나 급감했다.
뿐만 아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탈세 의혹, 계열사 경영진 먹튀 논란까지 ‘카카오스러움’의 가치는 훼손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핵심 계열사들이 연달아 당국의 수사 대상에 올라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의장은 ‘시세 조종’ 혐의로 도마 위에 올랐으며, 카카오페이도 ‘불법 지원금 수수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회사 내부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계열사 실적 부진으로 고용 불안이 커진 탓이다. 이처럼 내우외환, 사면초가의 카카오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반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금호아시아나·호반·부영, 오너리스크에 '몸살'
‘워스트 오너십 7’에는 카카오에 이어 금호아시아나, 호반건설, 한국타이어, HDC, 부영, 한진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중 한국타이어(지난해 종합 평가 16위)를 제외하면 대부분 계속해서 베스트 오너십 꼴지 기업군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최근 수년째 오너리스크 단골 기업으로 지목됐던 금호아시아나와 호반건설, HDC, 부영은 올해 조사에서도 체면을 구겼다.
금호아시아나그룹(박삼구 전 회장)은 형제 간의 갈등 끝에 금호석유화학그룹이 분리됐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확정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자산 규모는 3조 원대로 떨어지고 금호산업, 금호고속만 남게 된다. 오너인 박삼구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를 동원해 금호기업을 부당 지원하고, 3000억 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가 지난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 중인 만큼 오너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
호반그룹(김상열 회장)도 여전히 각종 수사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호반그룹 주력 계열사인 호반건설은 김상열 창업주가 장남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 사장,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에게 지분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벌떼입찰’이라는 편법적 방법을 이용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받아 경영 리스크 관리가 시급해 보인다.
부영그룹(이중근 회장)도 오너리스크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중근 회장은 지난 2020년 8월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이 확정되면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동안 관련 분야 취업이 제한됐다. 하지만 이후 2021년 8월 가석방됐고, 올해 윤석열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경영 활동 복귀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세간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건설사별 주택 부문 매출이 줄어들자 각 기업마다 환경, 에너지 등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반면, 부영그룹은 아직까지도 명확한 신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부영그룹은 8년 만에 국내 재계 20위권에서 밀려난 데다,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마저 영업이익 적자를 냈다.
광주시 학동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참사로 브랜드 이미지가 급락했던 HDC(정몽규 회장)는 올해 역시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손에 들었다. 특히 최근 철근 누락 등 ‘LH 사태’로 인한 대형 건설사에 대한 국민적 불노와 불신이 커져 이미지 쇄신에 상당한 시간과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조원태 회장)의 경우, 5년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시작된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은 이후에도 이명희·조현민(한진칼 전무) 모녀가 잇달아 ‘관세법’ 위반 및 ‘물컵 갑질’ 등으로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오너리스크 대표 기업’이라는 오명이 아직 잔상처럼 남아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 이후에는 이른바 ‘남매의 난’인 경영권 분쟁까지 터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단, 이런 악재들 속에서 취임 후 조원태 회장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이끌어내는 등 속도는 더디지만 매해 오너리스크를 줄여 나가고 있다. 하지만 나날이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약세, 여객기 하부 화물칸 공급 증가 등으로 경쟁이 심화된 데다 운임 감소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돼 위기를 타개할 조 회장의 리더십에 눈길을 쏠리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베스트 오너십 16위에 랭크됐던 한국타이어(조양래 명예회장)는 올해 심각한 오너리스크로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던 한국타이어는 조양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범 회장이 3년 3개월 만에 다시 구속되면서 ‘오너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대전 공장에 큰불이 나면서 가동까지 무기한 중단됐다. 노사 갈등도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로 한국타이어 측은 한국 공장이 지난 2021년부터 노조 파업 등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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