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의 넥스트 스텝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장수를 향한 인류의 오랜 열망은 의학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평균수명이 50세를 넘지 못했지만, 질병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약품 개발의 노력은 무병장수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제 인류는 무병장수에서 나아가 젊음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체 시계를 멈추고, 세포분열을 지연시키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오르고자 하는 넥스트 스텝은 무엇일까?


장수를 향한 위대한 노력
자연의 순리는 인간 사회의 규칙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명한 예로 진시황이 있다. 중국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그조차도 타고난 수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인류가 스스로를 자각한 시기 이후 불로장생은 인간의 염원이었을 뿐 언제나 삶에는 늙음과 아픔, 죽음이 늘 함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 염원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구글 자회사 알파벳은 바이오테크 기업 베릴리를 설립하고,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 자회사 알파벳은 바이오테크 기업 베릴리를 설립하고,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초 원정대에 대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세계적 거부들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처럼 항노화 연구에 엄청난 후원을 하거나, 구글처럼 스스로 바이오테크 회사를 설립해 장기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와 현재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과거의 불로장생에 대한 꿈이 망상에 가까운 집착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삶은 수없이 스러졌지만, 세대를 이어온 인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인 셈이다.


회춘은 가능할까?
생로병사가 반드시 숙명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알 수 있다. 자연계에는 늙지 않거나 심지어 회춘하는 동물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홍해파리는 노화의 생물학적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유년기의 세포로 변형시키는 특성이 있다. 즉 물속을 떠다니며 살던 어른 홍해파리는 노화가 진행되거나 주변 환경이 열악해져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 바로 어린 해파리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단숨에 회춘할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이야기다. 심지어 홍해파리는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계통분류학적 단계에서 가장 단순한 동물의 회춘과 사람의 회춘을 동일 선상에 놓고 설명하기란 무리가 있다. 인간과는 그 유연관계가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인데, 적어도 세포 수준에서는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2007년 일본 교토 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이미 분화가 다 끝난 인간 피부 세포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줄기세포로 바꾸는 역분화 줄기세포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히며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된 바 있다. 이 방식을 통해 개체 전체의 노화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 실험이 미래에 어떤 단초로 작용할지는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이제는 노화를 지연시킨다
우리의 신체는 한 가지 세포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200여 종의 서로 다른 세포가 밀접하게 연결된 복잡한 시스템이다. 각각의 세포마다 생체 시계의 주기가 다르기 때문에 예전 상태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물리적 회춘보다는 노화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대략 80~100년을 살아간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수명은 대개 이보다 짧다. 백혈구처럼 겨우 3~5일에 불과한 경우도 있으며, 몇 주에서 몇 년을 주기로 수명을 다한 세포가 교체되면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세포 역시 살아 있는 존재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손상된 세포는 사멸하고, 그 빈자리를 새롭게 분열한 세포가 채우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세포 중에도 ‘늙은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노화 세포Cellular Senescence다. 노화 세포란 손상을 입어 사멸해야 할 세포가 세포분열만 정지한 상태로 세포의 원래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세포를 말한다. 가령 염증 반응을 유도하거나 손상이 있음에도 사멸하지 않고 대사 과정을 수행함으로써 주변 세포와의 신호에 교란을 일으켜 결국에는 주변 세포들의 암세포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이에 미국 메이오 클리닉은 이 늙은 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생체 시계를 정지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2016년 미국 메이오 클리닉은 노화 세포를 제거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2016년 미국 메이오 클리닉은 노화 세포를 제거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활성산소 제거 및 열량 제한을 통해 세포 대사 속도를 조절하고, 다양한 세포 스트레스를 완화해 세포의 수명과 건강을 늘리는 등 개체 전체의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방법에 대한 가능성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에 <노화의 종말>을 저술한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 교수의 “인간의 노화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는 주장이 한층 힘을 얻기도 했다.
<노화의 종말>을 펴낸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는 지연시킬 수 있으며,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노화의 종말>을 펴낸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는 지연시킬 수 있으며,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노화 지연에 대한 연구 그리고 가능성
애초에 인간은 수명과 노화에서 축복받은 존재다. 같은 체급의 여타 포유류에 비해 4배 이상 오래 산다. 자연적으로 인간은 덜 늙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게다가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뇌를 가졌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스스로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것이 가능성일 뿐이지만, 분명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부품을 잘 관리하면 제품의 수명이 오래가듯이 세포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면 그만큼 삶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교수가 이야기하는 건 결국 이것이다.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을 가급적 많이 먹고, 흡연과 음주를 줄이고, 유해 물질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많이 웃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 부족할 수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적절히 보충하고, 항산화 물질을 섭취하는 것.

무병장수의 넥스트 스텝이란 결국 타고난 운명의 축복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도록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각자의 속도대로 천천히, 건강하게 삶을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무병장수에 이르는 지름길일지도.

글. 이은희(과학 저술가)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