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타인과 조직에 해를 줄 수 있고 들통 났을 땐 관계와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나쁘지만 흔한 게 거짓말이기도 한데, 하루에 한 사람이 2회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대부분은 정직한 소통을 위해 애쓰고 약 20% 정도의 사람이 80% 이상의 거짓말을 생산한다고 한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 중엔 병적으로 거짓말의 쾌감을 즐기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을 속이는 걸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거짓말이 통한 것에 우쭐해져 주변에 자랑하기도 한다. 근처에 있으면 좋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거짓말이 나쁜 것이긴 하지만 간단한 인지 과정은 아니다. 실제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경우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자기를 속이는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스로도 속이는 것으로 돼 있다. 타인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나를 속이고 나면 그다음에 타인에 대한 설득은 내 머릿속에서는 거짓이 아닌 셈이다. 일시적 망상 상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쾌감보다는 감정적인 불안감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거짓 보고를 하는 경우다. 조직이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구성원들의 거짓말 횟수가 늘어나기 쉽다. 투명성이 증가하기 위해선 경직된 소통 구조의 변화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다. “내 손녀 예쁘지?”란 친구의 질문에 내 눈엔 아니더라도 “너무 예쁘다”고 맞장구치는 것은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경우에도, 상대방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는 분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돼 있다. 심지어 내 거짓말로 상대방이 경제적 이득을 얻는 형태의 실험에서도, 거짓말은 선택권과 자율성을 임의로 훼손한 것이기에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상대방의 미래를 걱정해 오늘의 위험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훗날 부정적인 감정을 줄 수 있는 이유다.
거짓말이 잘 통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이야기를 안 할 뿐, 사실은 알아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위한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고민될 땐, 상대방이 거짓임을 알아도 100% 고맙게 여길 것이라고 판단이 서지 않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많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격언이 있다. 디지털 거짓말
드라마 대사로 종종 접하는 “거짓말이 아니면 내 눈을 보고 말해봐”란 말이 실제 거짓말 여부를 판정할 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답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 대개 죄책감이라는 감정 반응이 일어나 상대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회피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이 불편해 상대방 눈을 피하고픈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거짓말로 인한 불편한 감정 반응은 동공의 크기가 변하는 것을 우스개로 표현한 ‘동공 지진’ 같은 생리적 반응도 일으킨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회피 행동이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을 말할 때 일어나는 감정 반응에 의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생리적 반응의 변화를 활용한다. 죄책감 같은 감정 반응이나 그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미미한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마음이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불편한 감정 반응이 적게 일어나야 더 쉽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계와 사람 중 어느 쪽에 거짓말하기가 더 쉬울까. 최근 한 해외 연구를 보면 기계에 거짓말 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전 던지기 결과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주겠다고 한 뒤, 동전을 던지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자발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는데, 한쪽 그룹은 화상 통화나 문자 전송을 통해 사람에게 하도록 했다.
반면 다른 그룹은 동전 던지기 결과를 기계, 즉 음성 지원 챗봇, 온라인 서식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결과는 챗봇 등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보고했을 때 결과를 속이는 경우가 2배 더 많았다. 온라인 서식 제출보다 챗봇이 더 사람과 소통하는 느낌을 주기에 거짓 보고를 덜 할 것 같은데, 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대화 상대가 기계임을 인식하면, 소통 기술이 사람과 유사하다고 해서 거짓말을 덜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할 의도가 있는 사람이 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선택하는 경향도 보였다.
이런 연구 결과는 ‘자신에 대한 평판 관리’ 때문에 상대방이 기계인지 사람인지에 따라 거짓말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해석됐다.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자신의 평판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기계를 상대할 때보다 거짓말을 덜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기계보다 사람에게 거짓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거짓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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