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튜어트 발베니 전(前) 몰트 마스터 인터뷰

‘발베니 헤리티지 전시’에서 60년 경력의 몰트 마스터이자 위스키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데이비드 스튜어트를 만났다.
[INTERVIEW] 전설의 위스키 장인이 전한 발베니의 매력은
지난 10월, 위스키 애호가들의 시선이 온통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집중됐다. 10월 7일부터 20일까지 압구정 로데오거리 내 ‘앤드트리메타’에서 열린 ‘발베니 헤리티지 전시(The Balvenie Heritage Exhibition)’ 때문이었다. ‘위스키 품귀현상’이나 ‘위스키 오픈런’과 같은 말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발베니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하니, 그 기대와 관심이 오죽했을까. 실제 전시장에 가보니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한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발베니의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전시는 한마디로 훌륭했다. 1970년대 만든, 발베니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 ‘발베니 퓨어몰트 8년’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는가 하면, 지난해 옥션을 통해 5억 원에 낙찰된 바 있는 ‘DCS 컴펜디움’을 비롯해 그동안 발베니가 선보여 온 빈티지 및 한정판 위스키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전 세계 단 71병만 출시했다는 ‘발베니 60년’이었다. 1962년 숙성을 시작한 오크통에서 그대로 병입한, 발베니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희귀한 위스키의 영롱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이 위스키는 발베니의 전 몰트 마스터이자 현재 명예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스튜어트(David C. Stewart MBE)의 60년 경력을 기념하는 의미로 제작돼 의미가 더 크다.
사실 ‘발베니 헤리티지 전시’ 역시 데이비드 스튜어트의 발베니 근무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것.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발베니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그가 17세이던 1962년부터로 위스키 재고 담당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12년간의 훈련을 거쳐 몰트 마스터로 활약했다.
위스키의 풍미를 완성 짓는 몰트 마스터는 ‘위스키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도 10명 남짓에 불과하다(현재 세계적인 위스키 ‘열풍’에 따라 그 수가 점차 늘고 있다). 그중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匠人)이자 ‘위스키의 전설’로 통한다.
지난 60년 동안 그가 위스키 업계에 남긴 업적은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캐스크 피니시 기법’은 손에 꼽을 만하다.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1980년대 처음 시도한 캐스크 피니시 기법은 한마디로 추가 숙성을 뜻한다. 지금은 매우 보편화된 위스키 제조법이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법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시도는 전설이 됐고 역사가 돼, 현재 위스키 업계의 공식이 됐다.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전 세계 위스키 업계에 큰 공을 세운 셈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6년에는 영국 왕실이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하는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훈장을 수훈 받기도 했다.
한경 머니는 데이비드 스튜어트와의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기자와 만난 그는 “한국에서 위스키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발베니의 특별함을 한국인들이 알아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데이비드 스튜어트와의 일문일답.
[INTERVIEW] 전설의 위스키 장인이 전한 발베니의 매력은
- 발베니 헤리티지 전시는 당신이 발베니에서 보낸 60년의 세월을 반추하는 자리였다. 직접 둘러본 소감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지난 60년을 회상할 수 있었다. 전시된 제품을 보며 그 위스키가 탄생하기까지의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한정판 위스키 중에는 ‘내가 이런 것을 만들었나?’ 하는 제품도 있었다. ‘발베니 60년’을 선보이며 수많은 국가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단종된 실제 레어 보틀을 구해 전시회를 연 건 한국이 유일하다. 행복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 한국 팀에게 감사하다.”

- 한 직업을, 그것도 한 회사에서 60년 동안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몰트 마스터라는 직업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늘 새로운 제품을 고안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만큼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발베니를 만드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세계 주류 업계에 몇 안 되는 가족 경영 기업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면 즉각적으로 적극적인 서포트 해주었다. 이것이 내가 60년 동안 발베니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

- 60년 동안 100종이 넘는 발베니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발베니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발베니의 시그니처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꿀과 같은 달콤함이다(발베니는 다른 싱글 몰트위스키에 비해 아메리칸 버번 오크통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달콤한 맛과 바닐라 향이 많이 감도는 편이다). 1970년대에 처음 선보인 제품부터 변함없이 고수하는 풍미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캐스크 피니싱 기간이 짧은 것도 이런 ‘하우스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 많은 발베니 중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발베니 21년 포트 우드다. 실제 이 위스키를 처음 만들었을 때, 맛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보통 숙성 기간이 오래되면 위스키가 굉장히 부드러워지기 마련인데, 이 제품은 포르투갈 포트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서 추가 숙성해 캐릭터가 매우 명확하다. 와인의 싱그러움과 흙설탕, 견과류, 건포도 등의 풍미가 조화롭게 어울렸달까. 실크처럼 부드러움 목 넘김도 자랑이다. 다만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자주 마시지는 못한다.(웃음)”

- 많은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 중 발베니만의 강점은.
“‘장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발베니에는 나처럼 오래 일한 직원이 정말 많다. 증류기는 65년 경력의 데니스가 관리하고, 오크통 제작은 이안 맥도날드가 54년간 책임지고 있다. 대부분의 위스키 브랜드가 장인정신을 내세우지만, 발베니야말로 이들의 경력과 노하우가 만든 ‘산물’이라 생각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150개가 넘는 위스키 증류소 중에서도 발베니는 보리 경작부터 진행하는, 몇 개 남지 않은 증류소다. 오랜 경력의 직원이 많다 보니 모든 작업에서 전통을 지킬 수 있었다.”

- 올해부터 몰트 마스터의 자리를 켈시 맥케크니(Kelsey Mckechnie)에게 넘겨줬다. 특별히 당부한 것이 있다면.
“발베니는 최소 12년 이상의 숙성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또한 소비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좇기 때문에, 전에 없던 맛을 선보이기 위한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발베니가 지켜온 ‘하우스 스타일’, 즉 달콤한 꿀의 풍미는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