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홍 바카디코리아 대표
한때 한국 시장 철수설이 돌기도 했던 세계 4대 주류 기업(2021 IWSR 판매량 기준) 바카디가 수입 주류 인기에 편승해 다시 한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바카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르지 않을 이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럼(rum)이자 모히토, 다이키리, 피나콜라다, 쿠바 리브레 등 전설적 클래식 칵테일 레시피에 영감을 준 술이니 그럴 만하다. 역사도 유구하다. 1862년 돈 파쿤도 바카디 마소(Don Facundo Bacardí Massó)가 세계 최초로 무색 럼을 개발하며 시작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철종 때 처음 만든 술이다.바카디는 유명한 럼 이름이지만, 세계적 규모의 주류 기업이기도 하다. 바카디 그룹의 포트폴리오에는 카테고리별로 세계 판매 1위 브랜드가 빽빽이 들어찼다. 봄베이 사파이어(진 분야 1위)와 그레이 구스(프리미엄 보드카 1위), 마티니(베르무트 1위), 페트론(울트라 프리미엄 테킬라 1위)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바카디 그룹은 200여 개 주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디아지오와 페르노리카, 타이 베버리지에 이은 네 번째, 민간이 소유한 비상장 주류 기업 중 세계 최대 규모다.
바카디가 한국 법인(바카디코리아)을 세운 건 지난 2007년의 일. 이후 럼과 보드카, 진, 테킬라로 대표되는 국내 화이트 스피릿(white spirit) 시장을 선도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파죽지세를 이어가는 글로벌 시장과 달리 한국에서는 풍파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수입 주류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위스키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서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했고, 바카디가 강세를 보이는 화이트 스피릿 시장의 주 고객은 지갑 얇은 젊은 층이었다(지금이야 MZ세대가 주류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지만, 당시만 해도 수입 주류 시장을 이끄는 건 중장년층 비즈니스맨이었다). 급기야 2017년에는 바카디코리아의 철수설까지 나돌았다. 저도주 열풍과 음주를 자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수입 주류업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던 시기다. 실제 당시 몇몇 수입 주류 회사는 사업을 매각하거나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현재 수입 주류 회사들은 유례없는 호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해외 주류 수입액은 2018년 10억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6억2000만 달러로 4년 만에 54%가 ‘껑충’ 뛰었다. 특히 위스키 수입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분위기 속 잠잠하던, 아니 잠잠한 줄로만 알았던 바카디코리아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싱글 몰트위스키 올트모어와 프리미엄 버번위스키 엔젤스 엔비 등 신제품을 쏟아내는가 하면, 온·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음은 바카디코리아 안준홍 대표와의 일문일답.
-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바카디코리아를 검색하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2017년 언론 기사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적은 없다. 다만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재정비 시간을 가진 건 사실이다. 5년 동안 유통사 영업 체제로 사업을 운영한 것. 다시 말해 글로벌 본사와 유통사 간 계약을 체결하고 수입 및 영업은 유통사가, 바카디코리아에서는 주로 마케팅 활동에 집중해왔다.”
- 재정비가 필요했던 이유가 있을 거다.
“바카디는 글로벌 주류 회사 중 몇 안 되는 가족 기업이다. 지금도 창립자의 5대 손인 파쿤도 바카디(Facundo L. Bacardí)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분위기가 다른 기업과 많이 다르다. 회사라기보다는 ‘가문의 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주류 시장은 유행에 민감한 편이고, 2010년대에는 클럽을 필두로 한 EDM 문화가 트렌드의 중심이었다. 또 당시만 해도 위스키는 소위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주로 소비됐다. 글로벌 본사에서는 ‘우리 술이 클럽과 유흥업소에서 판매되는 것이 맞나’라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브랜드 이미지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국 시장이 더 커지기 전에 새롭게 포지셔닝을 하자는 게 본사의 의중이었고, 2017년 내가 대표직을 맡으면서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바카디 151’이라는 술이 있었다. 알코올 도수가 75.5도로 많은 칵테일의 베이스 역할을 했다. 매출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2016년 본사에서 이 술을 단종시켰다. 고객들이 바카디 151이라는 이름 대신 ‘불붙는 술’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바카디는 비상장 기업이고 가문 소유이다 보니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려는 의중이 매우 강한 편이다.”
- 재정비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바카디코리아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클럽과 유흥업소, 페스티벌 대신 프리미엄 바와 레스토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채널 전략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또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을 대폭 늘렸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에 베팅한 것. 5년 동안 여러 수치가 꾸준히 상승한 것을 보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자평한다.”
- 올해부터 다시 직접 영업 체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사에서 걱정하고 지적했던 부분이 많이 개선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그사이 한국 시장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럭셔리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비롯해 K-문화가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해 직접 영업 체제를 서두르게 됐다. 현재 유통사는 업장, 바카디코리아는 백화점 등 오프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영업을 진행한다. 물론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 활동에도 전략을 다하고 있다.” - 바카디코리아와 오비맥주 등 줄곧 주류 회사에서 근무했다. 전문가로서 현재 한국 주류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마디로 ‘춘추전국시대’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수입 주류 시장이 고공 성장 중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류 문화의 트렌드가 ‘다 같이, 많이’에서 ‘소수, 가볍게’로 바뀐 까닭이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일명 ‘홈술’이 인기를 끌면서 내게 가장 맞는 술, 다시 말해 스스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탐색 기간이랄까. 글로벌에서도 우리 브랜드의 ‘진가’를 알리는 적기로 보고 있다.”
- 바카디에 한국 시장의 의미는.
“단언컨대 가장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20위권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바카디의 ‘중추신경’은 화이트 스피릿이고 한국에서도 리더 역할을 해왔지만, 국내 수입 주류 시장은 여전히 70% 이상이 위스키의 몫이다. 이는 바카디코리아의 오랜 과제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그 약점을 보완해가고 있다. 꾸준히 좋은 위스키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하고 이를 한국 시장에 가장 먼저 공급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 그래서인지 최근 다양한 위스키 신제품을 선보인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엔젤스 엔비’와 ‘듀어스 더블더블’만큼은 꼭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엔젤스 엔비는 바카디가 2015년 인수한 프리미엄 버번위스키 브랜드로, 아시아 지역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한국 출시가 늦어진 건, 미국 시장에서 한마디로 난리가 났기 때문. ‘우드 포드 리저브’ 등 유명 버번위스키를 만든 전설적 마스터 디스틸러 링컨 헨더슨의 손에서 탄생했고, 포르투갈 포트와인 오크통에서 추가 숙성 과정을 거쳐 깔끔하고 달콤한 피니시가 일품이다. 반면 스카치위스키인 듀어스 더블더블은 2020년 국제 위스키 대회(IWC)에서 수많은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를 제치고 ‘올해의 위스키’로 선정된 제품이다. 역시 같은 대회에서 5년 이상 ‘올해의 마스터 블렌더’에 이름을 올린 여성 디스틸러 스테파니 맥로드가 만든 ‘역작’으로, 4단계에 걸친 숙성 공법을 통해 궁극적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위스키를 찾는 이에게 적극 추천한다.”
- 바카디의 많은 브랜드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술은 무엇인가.
“원론적 답변이지만, 바카디의 모든 브랜드를 좋아한다. 질문을 조금 바꿔 가장 자주 마시는 술로 답하자면 ‘듀어스 12년’이다. 주로 하이볼로 마신다. 반주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식사와 함께 술을 즐길 일이 많은 편이다. 듀어스 12년의 경우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모든 음식과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 그렇다고 개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은은한 초콜릿과 너티 향이 기분을 좋게 한다. 특히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과 매치하면 속을 개운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재정비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해온 일을 하나씩 현실로 만든 해였다. 다시금 직접 영업 체제 시스템을 구축했고, 회사 규모도 키웠다. 성과도 따라왔다. 바카디코리아 역사상 최고 매출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화이트 스피릿업계 1위를 유지하면서, 위스키 시장에서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이런 목표에 첫발을 내디딘 원년이었다고 평가한다.”
- 앞으로 바카디코리아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생각인가.
“단기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수입 주류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10년 동안 10배 더 큰 회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다른 주류 회사들이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성장의 원동력을 꾀해야 한다. 이는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궁극적 목표는 바카디코리아의 모든 구성원이 자부심을 느끼는 회사를 만드는 것. 다시 말해 자랑스러운 기업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도현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