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연금개혁]
격동의 K-연금, 개혁 성공 열쇠는
[연금개혁]격동의 K-연금, 개혁 성공 열쇠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국민연금의 개혁에 국민들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후보 시절부터 연금 개혁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며 공감을 전한 바 있다.

#1.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20대 새내기 직장인 A씨는 국민연금 제도 개혁 논의에 대해 불만이 많다. 회사가 절반을 내주기는 하지만 매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납입을 해야 하고 노후에 이 돈을 제대로 돌려받을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을 더 내고 늦게 받는 식으로 개혁을 추진한다는데 왜 우리 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하느냐”며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연금을 강제로 떼어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돈으로 각자 선택할 수 있는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고 성토했다.

#2. 국민연금을 30년 이상 납입해 퇴직을 설계하고 있는 50대 직장인 B씨는 “이미 가입해 둔 개인연금을 퇴직 시점부터 탈 수 있는데 아내와 상의한 결과 만 60세가 되는 해에 국민연금 조기 수령을 신청할 것”이라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금융 수익 등을 활용하면 노후에 최소 생활비는 될 것 같고 국민연금 재원이 흔들리고 있어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타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연금개혁]격동의 K-연금, 개혁 성공 열쇠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 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피하지 않고 가겠다”면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연금개혁]격동의 K-연금, 개혁 성공 열쇠는
대한민국 공적연금 제도는 공무원연금 제도 도입에서 시작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60세 미만의 전 국민을 적용 대상으로 한다. 다만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 대상자와 저소득계층 등은 제외된다.
1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과 사업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 본인의 희망에 의한 임의가입자 등이 가입할 수 있다.
대한민국 공적연금 제도는 1960년 공무원연금 제도의 도입에서 시작됐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연금 제도는 1973년에 제정된 ‘국민복지연금법’을 바탕으로 1986년 12월 31일에 전면개정한 ‘국민연금법’에 의해 1988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현재 적립금 1000조 원이 넘게 형성된 국민연금의 재원은 가입자가 매월 불입하는 보험료로 마련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 9월 정부에 보고한 초안에 따르면 이번 개혁의 핵심 화두는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이다. 현행 9%인 보험요율을 점차 늘려 18%까지 확대하고 수급 연령을 단계적으로 만 65세에서 만 68세로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위원회가 제시한 18가지 시나리오에 소득대체율 인상이 빠져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노후 소득 보장이 전제되지 않은 반쪽짜리 개혁안이라며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위원 2명이 사퇴하는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지난 10월 13일 재정계산위원회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 연령 등이 바뀌는 시나리오가 담긴 최종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초안에는 빠졌던 소득대체율 45%와 50% 인상 시나리오가 최종 보고서에 담겼다. 초안에 반영됐던 18가지 시나리오가 최소 20가지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를 두고 재정계산위원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론의 지탄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시나리오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는데, 이는 전문가들이 11개월간 활동을 통해 내놓은 개혁안으로는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 연금 개혁, 역대 대통령 실효성 살펴보니
과거 연금 개혁 과정을 되돌아보면 당정이 한 목소리로 개혁안을 내놓아 추진했을 때는 성공했지만 복수의 안건이 상정된 경우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국민연금 개혁은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시작됐다. 1차 개혁은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내리고 수급 연령을 65세로 올린 것이 골자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재정 위험성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대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는 안이 나왔다. 하지만 소득 보장 강화를 포함한 여러 개의 개혁안이 나온 문재인 정부에서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문제는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결국 국회에 의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여야가 10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 기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하기로 잠정 합의했는데 이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1대 국회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책임을 차기 국회로 넘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금개혁]격동의 K-연금, 개혁 성공 열쇠는
연금 개혁 안갯속...문제는 개혁 의지와 사회적 합의
연금 개혁 성공의 가장 중요한 열쇠에 대해 전 연금학회장인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미적립 부채가 시한폭탄이라는 위기감을 제대로 알리고 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을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25년 동안 연금 개혁 논의에 직접 참여하고 그 과정을 지켜봐 왔다.
윤 연구위원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보니 연금 논의가 활기를 띠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세금을 걷어 지급하는 기초연금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 연금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더 부담하고 늦게 받으라고 하니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윤 연구위원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연금 개혁이 가능할 수 있다”며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당시 국민에게 개혁 불가피성을 납득시킨 수단은 빠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가 마치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위기감이 연금 개혁의 절박성을 각인시킬 수 있었는데, 이처럼 효과적인 수단이 있음에도 국민연금재정계산위와 국회 연금특위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를 거부했다”며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미적립 부채는 적게 잡아도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고 33만 명이 가입한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는 170조 원으로 가입자 1인당 5억 원 넘는 빚을 졌으며 국민연금도 가입자 1인당 7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최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가 출범했는데 연금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며 “다양한 형태의 고용 연장 옵션이 제시될 경우, 연금 납입 연령 연장 등 연금 개혁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문했다.
연금 개혁 추진 동력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금 개혁과 사회적 합의 모델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민주적 과정과 절차, 사회적 논의 기구, 합의 결과의 이행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 체계 등이 필요하며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의 강력함(또는 그 방어 연합의 취약함), 국민들에 대한 정보 전달 및 언론의 역할 등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측은 “연금 개혁에서의 사회적 합의 과정은 각 나라가 처한 정치적 환경과 정책 결정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한 가지 사회적 합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합의 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 중심의 개혁 시 정치적 이해 관계와 무관하게 연금 개혁이 추진돼야 하며 정당의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일관된 개혁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연금 개혁에 관한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