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국민연금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최소 20개의 시나리오가 난립하고 있다.
이에 연금 개혁에 이미 성공한 독일의 공적연금 체계를 현장 취재를 통해 들여다보고 한국형 공적연금 제도의 방향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독일 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독일연금(Deutsche Rentenversicherung Hessen)과 독일 광산·철도·해상 연금보험조합을 찾아 공적연금 선진국의 보장 제도를 알아봤다.
독일 연금 제도는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 등 3중 장치의 연금제도로 구성돼 노후 보장
을 두텁게 할 수 있다. 직능별로 자영자, 피용자로 나눠 가입한다. 자영자에는 농업, 전문직,
수공업, 예술가 등이 포함되며 피용자로는 근로자, 광부, 공무원 등이 있다.
독일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1층을 구성하는 연금제도는 공적연금제도로 경제활동 인구의 약 82%가 가입돼 있다. ▲노동자․직원․광부연금제도 ▲농어민을 위한 농민노령부조 ▲공무원․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부양제도 ▲자유직업자(의사․변호사․약사 등)를 대상으로 하는 자영자특별제도 등으로 직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층 연금제도는 독일 노인인구에 대한 가장 주된 소득원으로 65세 이상 노인 수입의 약 78%는 연금급여가 차지한다.
2층은 민간기업 및 공기업 등에서 실시하는 기업연금제도로 노인인구 수입의 약 7%가 이들
기업연금 급여를 통해 지급된다. 기업연금은 사용자와 근로자간 계약에 의거 실시할 수 있는
데 독일의 기업연금제도는 의무제도는 아니다. 기업연금제도의 종류로는 ▲준비금제도 ▲공제
기금제도 ▲연금기금제도 및 이상의 제도를 혼합한 제도가 있다.
3층은 사적저축제도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실시하는 개인연금 등이 주로 해당되며 노후수입
의 약 10%가 사적저축제도를 통해 지급되고 있다. 2001년부터는 개인연금 가입시에도 국고보
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장기적 재정안정화를 위한 부분적인 개혁 추진
독일 연금 제도는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889년 노동자연금제도를 도입한 이후 1911년 직원연금제도가 도입됐다. 독일에서는 노동자, 직원, 광원연금을 통칭해 법정연금보험 제도를 두고 있다. 이외에도 특수직역연금으로서 공무원부양연금, 농민노령부조, 변호사·의사 등을 위한 전문직 연금 제도가 존재한다.
독일은 1957년 연금법 대개정을 통해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대폭 인상하고 제도의 보장 목표를 최저 보장에서 소득 지위 보장으로 전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연금에 쓰일 적립기금이 거의 고갈되자 1957년에서 1967년까지 연금기금 마련 방식을 적립에서 부과로 점차 전환했고 1969년에는 완전 부과 방식으로 바꿨다.
1972년부터는 가입 대상을 자영업자, 주부, 장애인으로 확대했고 1992년에는 재정 안정화 개혁을 실시했다.
2004년에는 보험요율을 2030년까지 22%에 도달하도록 일정 수준에서 고정하고 2007년에는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2007년 확정된 정년 67세 방안에 따른 것으로 법정 정년 연령을 2012년에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조치에 부합한 것이다. 즉, 독일에서는 정년 67세까지 일을 하다가 퇴직하면 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정년 60세에 퇴직해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는 대한민국보다 안정적인 노후 보장 제도로 평가받는다.
최소 5년 이상 가입한 65세 도달자가 대상이며 1964년 이후에 태어난 모든 출생자는 수급연령
이 67세로 변경됐다.
독일의 공적연금 개혁은 제도의 근본적 개편을 추진한 스웨덴식 개편보다는 연금제도의 기본
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재정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부분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안정화 달성을 위한 개혁 내용으로는 ▲급여액 삭감(75%→64%) ▲급여수급권 강화(장애
연금) ▲지급개시연령 연장(남녀 모두 65세, 향후 67세로 연장) ▲사적 노후보장 가입 권장(세
제혜택 부여)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국고보조금 방식 변경) 등이 있다.
독일은 사회정책 운영에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하는 국가로 연금개혁이 성공한 이유로는 1957
년에 설치된 사회자문위원회(Social Advisory Council)의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양육 기간을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 여성 노후 소득 보장 지원
특히 독일 정부는 자녀를 가진 여성들의 노후 소득 보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양육 크레디트 제공과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저소득 및 무소득이 발생하는 자녀 양육 기간을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크레디트)하고 이를 국고로 조달한다. 양육 크레디트는 1991년과 2001년 연금법 개정으로 확대 강화됐다. 이로 인해 유럽 국가 중 출산율이 낮았던 독일은 최근 출산율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출산 전후인 14주간의 모성 휴가 기간 동안 임금의 100%를 지급하고 모성보호법에서 정한 출산 전후 휴가로 인해 소득 활동이 중단됐을 경우 이 기간은 연금보험료 면제 기간으로 인정한다. 또 육아 크레디트 제도를 통해 연금 가입 인정 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됐다. 자녀 양육 기간 동안 연금 가입 소득에 대한 상향 조정 정책도 펼친다. 육아로 인해 시간제 근로 등으로 소득 활동이 정상화되지 못한 경우 10년의 고려 기간을 운영해 연금 급여가 상향 조정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전업 주부가 다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그 기간에 대해서 연금 가입 소득의 상향 조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독일연금공단 프랑크푸르트 지사 테레사 볼벡(Theresa Wollbeck) 팀장은 “1990년대까지는 주로 수입 증대에 초점을 둔 개혁이 이뤄졌다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구 고령화에 본격 대응하기 위해 급여 축소에 초점을 둔 개혁이 주류를 이룬다”며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연금 제도도 마련해 뒀는데 근로 가능 시간에 따라 완전 장애의 경우 기본 연금액의 100%, 부분 장애의 경우 50%를 지급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일 연금은 정부, 기업, 개인이 함께 합의하에 운영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이 결과에 따라 출산과 양육을 비롯한 자녀수당부터 유족연금까지 국가적 시스템이 갖춰져 모든 세대를 넘나드는 안전장치”라고 덧붙였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특수 보험제도 ‘광산·철도·해상’ 등 특수 직업군, 보혐료 더 내고 연금 더 받아
독일은 두가지 보험이 있다. 일반연금보험, 광부조합연금보험이다. 현재 독일은 일반 연금보험과 광산·철도·해상연금 등 직역별로 총 16개 보험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광산·철도·선상연금보험조합은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특수 직업군에 대한 보험기관이다.
독일 광산·철도·선상연금보험조합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일부 특수 직업군은 연금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받는다. 독일 일반 직장인이 소득의 18.6%를 연금보험료로 납부한다면 광부는 24.7%를 부담한다. 하지만 각각의 경우 고용자 부담은 9.3%로 동일하다. 대신 일반 회사에서는 고용주가 고용자와 동일한 9.3%를 내지만 광산업 고용주는 15.4%를 납부해야 한다.
독일 광부조합연금보험의 피보험자는 모든 광산업 종업원, 광산 작업을 수행하는 종업원, 광산관련 종업원(노동조합·광업청 등) 등 범위가 넓은 편이다.
광산 근로자 연금 외에도 장기간 갱 내 노동에 종사한 광부들을 위한 노령연금, 광업 보상급여 등 특별연금도 받을 수 있다.
안케 빌(Anke. Will) 독일 광산·철도·선상연금보험조합 프랑크푸르트 지역구 부서장은 “독일 연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할 수 있고, 이 중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연금 혜택이 더 많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국제법 따른 사회보장 협정으로 한국인도 연금보험 가입 가능
독일 연금보험 제도의 특징은 의무가입대상자인 독일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임의가입대상자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무가입대상자는 사업장 근로자, 직업교육 훈련생, 실업수당 수혜자, 자녀양육자, 비고용 간병인, 병영 및 사회봉사 종사자, 자영업자, 보험의무 신청자 등이 있다.
임의가입대상자에는 기본적으로 만 16세부터 법에서 정한 허가 연령에 따라 법정 퇴직 연령까지 독일에 거주하는 누구나 포함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일 국적자나 독일 외의 국가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초국가법 및 국제법에서 명시하는 자도 임의가입대상자다.
라치드 마조즈 (Rachid Maazouz) 독일연금보험(Deutsche Rentenenversicherung) 팀장은
“2000년 3월 체결한 한국·독일 간 사회보장 협정으로 인해 한국인 역시 연금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며 “독일 내에서 연금을 받는 한국인은 2300명 정도로 이 중 600여 명이 한국에서 독일 연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독 간 사회보장 협정은 △피보험자의 동등한 처우와 양국 지역 동등화 △양 국가에 보험료 동시 납부 방지 △보험 가입 기간과 연금수급권 상황을 양국 상호 간 고려 △양국 간 연금 혜택 지원 등을 위해 맺어졌다.
이로 인해 독일 현지 진출 국내 기업에 입사해 한국에서 독일로 파견 간 근로자의 경우 독일
에서의 연금보험료가 면제된다. 국민연금공단이 기업사용자를 통해 독일질병금고에 통보하는
절차를 거친다.
[연금개혁]연금 선진국 독일, 수입 증대에서 급여 축소로 변화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만난 한국 파독 간호사 최군자 씨(독일 이름 Koon-Ja Steckner)는 독일인 남편과 합산한 연금액이 월 4000유로(10월 20일 기준 한화 572만 원) 이상을 받는다.
남편이 대학 졸업자에 보험 회사에서 손해사정사로 67세 정년까지 근무해 그동안 연금으로 불입한 금액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이 되던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독일에서 간호사를 뽑는다는 소식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결혼 후 2번의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며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지만 출산 시기에도 연금을 불입할 수 있도록 나라가 도와주고, 일하던 독일 대학병원에서 기업연금을 납입해줘서 퇴직 후에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한국은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연금보장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독일은 출산 시에도 국가가 연금을 불입해주고 경력이 단절될 경우에도 기본 연금이 적립되는 등 제도가 잘 돼 있어서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에 같이 오셨던 파독 근무 간호사들이 현재 3만~4만 명 정도 현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금 체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노인 복지가 좋다고 할 수 있다”며 “65세부터 연금을 받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한국과 달리 세금만 내면 독일인과 같은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외국인 차별을 느낄 수 없고 연금 계산할 때 학력과 연령이 반영되기 때문에 독일에 정착하려면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씨의 독일인 남편 프리드베르트 스테크너(Friedbert Steckner) 씨는 “독일 연금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된 나라”라며 “독일의 일반 노동자들이 정년까지 일을 마치면 국가에서 국민연금, 건강연금, 퇴직 후 실업급여까지 받을 수 있어 미래 연금 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글 사진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독일(프랑크푸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