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실버 요양 산업의 길을 찾다
[스페셜]생보사, 요양업 규제 빗장 풀까
노인장기요양보험 국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생명보험사들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요양 사업을 점찍었지만 규제 때문에 진행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 정유진 기자

10월 국회예산정책처 발표에 따르면 국가가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현행 보험료율 인
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2026년에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 준비금은 2031년에 소진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수입은 2023년 15.1조 원(2023년)에서 2032년 32.4조 원으로 연평균 8.9% 증가하지만, 지출은 2023년 14.6조 원에서 2032년 34.7조 원으로 연평균 10.1%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25년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돌봄 및 요양 서비스 수요의
지속적 확대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출의 급증이 예상되는 등 보험 재정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가족 구조의 변화로 시니어 케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
내 시니어 케어 시장의 규모도 매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만으로 이
를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명보험사들이 실버 요양
서비스 진출을 검토하고 있지만 토지 및 건물 임차 관련 규제로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데 난
항을 겪고 있다.
[스페셜]생보사, 요양업 규제 빗장 풀까
노인 돌봄 서비스, 영세 사업자가 대부분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
는 비중은 16.5%인 반면 노인 독거가구 혹은 부부가구 등의 비중은 78.2%로 노인 돌봄에 대
한 니즈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돌봄에 대한 부담이 막대한 치매 고령자는 약 88만6000명으
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5000여 개의 노인요양시설과 1만8000여 개의 재가요양시설이 운영 중이지만 영세한 사업자를 위주로 구성된 시장 구조로 인해 국내 시니어 케어 시장의 질적인 성장은 아직까지 미흡한 상황이다.
또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 이후 불합리한 장기요양 인정 절차, 보험금의 부정수급, 요양
보호사 이슈 등 다양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 현재 노인요양시설의 운영
주체는 75.7%가 개인 사업자로 법인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이용자 30명 이하의 영세한 규모
의 시설이 60.7%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세 사업자는 자본 부족으로 시설 투자가
힘들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KB라이프, 실버타운 개장...신한라이프·NH농협도 잰걸음
양질의 요양 서비스 제공을 위해 KB라이프생명이 보험 업계에서 실버타운 개장 첫 발을 내디뎠
지만 신한라이프생명이나 NH농협생명 등 후발주자들은 규제로 인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
고 있다.
KB라이프생명의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는 11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실버타운 ‘KB 평창 카운티’의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KB 평창 카운티’는 KB골든라이프케어가 첫 번째로 선
보이는 실버타운이다.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생활, 가사, 건
강, 문화 여가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규모는 지하 2층에서 지상 5층까지 총 7개 층이며 총 164세대로 조성됐다. 고급 스파, GX룸,
마사지실, 피트니스, 건강관리실, 문화 여가 프로그램실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다. 옥상정
원, 1차 의료기관과 같은 시니어에게 꼭 필요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건물 내에 마련해 편안하
고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입주 보증금은 3000만 원으로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입주 연령 상한을 없애 75세 이상
의 후기 고령자도 거주할 수 있다. 특히 입주자가 필요할 경우 KB골든라이프케어가 운영하는
도심형 프리미엄 요양시설 ‘KB골든라이프케어 빌리지’도 이용할 수 있다.
신한라이프생명 역시 요양병원, 실버타운 등 요양 산업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
려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물리적으로는 2026년 말부터 2027년 초 정도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시기나 장소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고 본사 태스크포스(TF)팀 업무를 자회사인 신한금융플러스로 이관해 요양 산업 진출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부지 선정을 위해 서울 은평구 및 서울 근교 수도권 위성도시까지 다양하게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 회사가 다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7월 TF팀을 가동해 요양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등 보험사가 추가로 영위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다양하게 살펴봤다.
회사 관계자는 “TF팀이 끝났다고 해서 요양이나 헬스케어 사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라며 “노령층 증가에 대응하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신사업으로 추구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스페셜]생보사, 요양업 규제 빗장 풀까
보험 업계, 요양 사업 속속 진출...‘토지 및 건물임차 규제’가 발목
KB라이프 이외의 생명보험사들이 요양 사업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검토 단계에만 그치
고 있는 것은 토지 및 건물 임차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요양시설 사업자가 10인 이상의 요양시설을 설치하려면 토지, 건
물을 직접 소유하거나 공공부지를 임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요양시설 난립을 막고
잦은 개·폐업으로 인한 입소 노인의 주거 불안을 막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수도권의 경우 부지를 소유하는 것도 공공부지를 임차하는 것도 비용 부담이 커서 대
부분의 요양 서비스 수요가 수도권에 몰린 것과는 대조된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노인 요
양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부지가 비싸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
고 있다”며 “서울, 경기 지역을 벗어나면 수요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업성이 크게 줄어든
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도 요양 서비스 확충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시민단체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부족한 요양 인프라
개선을 위해 토지 및 건물 임차 규제 완화를 추진이 담겼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으로 구성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보건복지부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의 계획안을 살펴보면 노동시민사회가끊임없이 요구해 온 장기요양의 질 제고‧공공성 강화‧재정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며 “비급여 확대, 요양시설 임대 허용 정책 추진 등 장기요양 분야를 시장화하는 내용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스페셜]생보사, 요양업 규제 빗장 풀까
해외는 민간 사업자 참여로 시니어 케어 시장 성장
규제의 틀에 갇힌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 중국 등 해외 국가들은 보험사를 비롯한 민간 사
업자의 시장 참여로 시니어 케어 시장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저성장·고령화의 영향으로 수익 구조 다변화를 모색하던 보험
사들을 중심으로 본업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 시니어 케어 시장으로의 진출이 활성화돼 있다.
부실한 기존 요양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주로 시니어 케어 시장에 진입 중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보험사인 손보재팬은 요양 사업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운영하면서 확보한 데
이터를 기반으로 요양 플랫폼 구축을 추진함으로써 시니어 케어 시장의 디지털화를 선도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 2개의 중견 간병 서비스 전문 회사를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해 지속적인 M&A를 통해 재택개호부터 시설개호까지의 풀 라인업 서비스를 확충했다.
중국은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양로시설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기반으
로 보험사의 시니어 케어 시장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주로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대규모
실버타운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시장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태강보험은 시니어 케어의 범주를 단순 돌봄에서 의료, 여가까지 포함한 종합 서비스로
확장함으로써 시니어 케어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했다. 금융·보험 서비스에 헬스와 간병
분야까지 결합한 종합금융건강 서비스 그룹을 목표로 지난 2012년부터 주요 거점 도시에 대
규모 실버타운을 건설해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보험사의 시니어 케어 시장 진출
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승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보험사는 자본력을 기반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니어 케어 시장의 질서 재편에 기여하고 건강 보장과 관련된 본업의 경쟁력도 제고 가능하다”며 “요양시설 설립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 보험사의 요양사업 실행력을 제고하고 본업과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도록 보험 상품과의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