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 인터뷰
국내 팝업스토어 센터는 단연 성수동이다. 이 핫한 동네에서 2018년부터 팝업스토어 공간만 8곳을 임대, 기획, 운영 중인 사람이 있다. 바로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다. 그가 손댄 공간마다 사람들이 몰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원톱’ 핫플레이스로 지목되고 있는 성수동.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이 어느덧 기업들의 대규모 ‘쇼룸’으로 진화하고 있다. 매주 수십여 개의 새로운 팝업스토어들이 성수동 거리를 장식하고, 그 앞에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그곳의 일상이 된 듯하다. 사람들은 왜 팝업스토어 빠져든 걸까. 이 질문에 답을 얻고자 만난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는 명징하게 말했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대니까요. 흡사 성공적인 데이트처럼요.”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가 운영하는 ‘프로젝트렌트’는 2018년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을 중심으로 8곳의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렌트 매장은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다. 해당 공간을 팝업스토어를 원하는 브랜드에 단기 임대를 해주는 방식이다. 공간 임대 외에도 팝업스토어 기획과 인테리어, 콘텐츠 제작, 마케팅까지 팝업스토어 관련 ‘토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오비맥주, CJ제일제당, 배달의민족, 롯데월드 등 300여 개의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특히, 롯데제과와 ‘가나초콜릿하우스’, 매일유업과 ‘어메이징 오트 카페’를 기획해 각각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방문, 화제를 모았다. 팝업스토어 외에도 그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 경험’을 기획하기 위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공간을 방문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엔 늘 ‘소비자’가 아닌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최 대표. 그는 어쩌다 팝업스토어에 진심이 됐을까. 팝업스토어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팝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어요. 다만, 장소를 3~4주가량 빌리는 데 막대한 임대료와 설치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개 대기업의 전유물이었죠. 소규모 브랜드들은 특정 바이어를 통하지 않으면 시장에 나오기 힘든 구조였어요. 온라인 마케팅으로만은 한계가 있고요. 매우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웠죠. 저는 그 연결고리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2018년 가로수길에서 처음으로 ‘22데이즈(days)’라는 프로젝트를 시범적으로 운영해봤습니다. 당시 건물주가 25일간 빌려줬고 3일 동안 공간을 꾸미고 22일 동안 카페, 서점 등의 콘텐츠를 넣어 운영했는데 그 사이 약 2만 명 정도의 트래픽이 발생했죠. 이후 201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새 팝업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습니다. 체감하시나요.
“네, 그럼요. ‘투머치’라고 말할 만큼 늘어난 것 같아요. 다만, 예전 팝업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해서 쓰는 공간을 의미했다면, 저희가 지향하는 건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거죠. 이른바 소비자와 브랜드가 ‘관계(engagement)’를 형성하는 겁니다.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의 본질이에요.”
소비자들과 관계를 잘 맺는 팝업의 특징들이 있다면요.
“즐겁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죠. 사실, 요즘 우후죽순으로 판촉형 팝업들이 주류가 되고 있어요. 그저 홍보와 판촉을 목적으로 일회용 증정품도 무분별하게 제공하죠. 저는 그건 마치 일방적인 데이트 같아요. 서로 추억할 만한 좋은 경험이 없는데 그저 많이 만났다고, 혹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선물을 준다고 누군가를 사귀진 않잖아요. 상대가 좋아할 만한 데이트를 어떻게 할지가 중요한 거죠. 팝업도 그래요. 사람들이 무조건 많이 오는 것만으로 팝업의 성공을 논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특히, 오프라인 공간일수록 소비자들이 좋은 경험을 한 만큼 해당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더 많은 정보를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전달해주죠. 팝업 내 콘텐츠를 얼마나 압도적인 밀도로 제공할지가 중요한 시대예요.” 예를 들자면요.
“요즘은 (팝업 홍보를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에서도 팔로어 수 1000명 남짓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훨씬 더 영향력을 갖는 경우도 비슷한 현상이죠. 이들이 가진 콘텐츠 질과 정보 전달력이 막강해서 메가 인플루언서들이 되레 그들을 팔로우 할 정도예요. 성공적인 팝업은 이런 마이크로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거죠. 한 명의 소비자라도 팝업을 통해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했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느꼈다면 소비자는 진정성에 마음을 열거든요. 그게 곧 강력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판촉형 팝업의 큰 문제 중 하나는 특정 타깃이 없다는 점이죠.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트랙픽이 올라가는 게 성공적인 팝업의 조건은 아니랍니다.”
평소 무엇을 통해 공간 기획에 영감을 얻으세요.
“다양해요. 데이터도 많이 분석하고, 이곳저곳 많이 보고도 다니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요. 무엇보다 저는 여전히 소비자에 머무르려고 노력해요.”
소비자로 머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를 테면 음식점을 방문할 때도 그저 맛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곳에서 왜 즐거운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가 아직도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팔 때, 지나치게 공급자 마인드에만 머물러 있어요. 소비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안 하죠. 제가 종종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만나면 늘 이런 얘길해요. ‘제발 착각하지 마시라.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서 파는 건 대기업의 몫이다. 여러분들은 오히려 적당히 비싸게 만들어서 엄청 비싸게 파는 걸 고민하셔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이죠. 단, 그 대신에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이 있을지를 파고들라고 하죠. 그게 결국 생존의 법칙이에요. 팝업스토어도 그런 관점에서 시작돼야 하죠. 남들이 한다고 이런 고민 없이 무작정 팝업 행사를 해선 제대로 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어요.”
관련된 팝업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요.
“지금 생각나는 것 중 하나를 꼽자면 LG생활건강 비욘드 ‘Less plastic, Paper is enough(플라스틱을 덜 써도 종이면 충분합니다)’의 캠페인 팝업스토어를 꼽고 싶어요. 당시 LG생활건강은 2030세대 소비자를 어떻게 하면 더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즉각 데이터를 분석해봤죠. 그런데 공교로운 점이 뭔지 아세요. 두 세대 모두 ‘친환경’에는 관심이 있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30대는 친환경보다 화장품 성분에 매우 민감한 세대였어요.
반면, 20대는 그보다는 ‘친환경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대에 가까웠죠. 30대를 설득하려면 새로운 재료를 기반으로 신제품을 만들어서 팝업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한 게 캠페인 팝업이었어요. ‘친환경’을 앞세운 캠페인으로 20대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진행한 당시 팝업스토어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제품 본질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기획됐어요. 리필 제품 사용을 권장함과 동시에 플라스틱 자재들을 재활용하기 용이한 종이로 대체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죠. 종이로도 구현 가능한 것이 많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재방문 의지를 보인 방문객들도 100%에 달했죠.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팝업스토어가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력을 미치는데, 어떤가요.
“맞습니다. 팝업스토어는 콘텐츠 중심으로 트래픽을 일으키고, 소비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재방문할 이유를 부여해요. 다시 거리를 활성화시키는 매개체인 셈이죠. 이제 전통적인 역세권 투자 개념은 점차 소멸하고 있어요. 지역 구분 없이 콘텐츠만 좋다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얼마든 재탄생할 수 있죠. 최근 수년 새 가로수길, 강남대로에서는 공실이 나는 반면 성수동이 부상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동시에 이걸 역으로 말하면 앞으로는 비단 성수동이 아니라 서울 어디든, 혹은 그곳이 지방의 작은 소도시라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경험과 관심을 둘 만한 콘텐츠를 지속 가능하게 제공하는 공간이 들어선다면 얼마든지 매력적인 부동산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목표는요.
“저는 오프라인 매장(팝업스토어)을 ‘TV’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방송을 틀 것이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죠. 앞으로도 저희 프로젝트렌트의 다양한 팝업스토어 프로젝트를 통해 성수동을 ‘잡지 같은 거리’를 넘어 ‘스트리밍’할 수 있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싶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프로젝트렌트 제공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