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크레베 에스.티. 듀퐁 글로벌 CEO

한국 남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에스.티. 듀퐁이 유니섹스 컬렉션을
출시하며 리브랜딩을 준비한다. 브랜드의 새로운 행보를 알리기 위해 내한한 에스.티. 듀퐁 CEO 알랭 크레베(Alain Crevet)를 만났다.
"리브랜딩, 모든 것이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 한국 방문 목적이 궁금하다.
“2024년은 에스.티. 듀퐁 브랜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를 해온 것과 달리 남녀 모두에게 선보이는 유니섹스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핸드백 같은 여성 카테고리 제품도 포함된다. 리브랜딩을 앞두고 에스.티. 듀퐁에 매우 중요한 시장 중 하나인 한국을 방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 에스.티. 듀퐁에서 선보이는 여성 제품이라니, 상상이 잘 안 간다.
“에스.티. 듀퐁 하면 라이터나 펜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 브랜드의 ‘뿌리’는 여성 제품과 맞닿아 있다. 20세기 초 로열패밀리와 귀족, 부르주아를 위한 트래블 케이스를 주문 제작한 것이 브랜드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태국 여왕이나 이집트 왕비, 덴마크 여왕, 윈저 공 부인 등이 당시 우리의 주 고객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이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결혼식 선물로 우리 브랜드의 여행 가방을 주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리브랜딩을 준비하며 ‘모든 것이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라는 모순적이면서 중의적 의미의 브랜드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 유니섹스 제품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두 가지 정도만 공개하면, 1930년대 인도 마하라자(인도 왕의 칭호)의 100명의 부인을 위한 클러치백을 제작한 적이 있다. 이를 모티프로 클러치백 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1950년대 배우 오드리 헵번의 의뢰로 제작한 바 있는, 분리 수납이 가능한 히든 포켓을 적용한 ‘리비에라 가방’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일상복은 물론 파티 룩에도 잘 어울린다.”

- 언제쯤 만나볼 수 있나.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준비하고 있으며, 크리스마스 직전에 오픈할 듯싶다. 한국과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는 내년 초쯤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위해 30년 이상 에스.티. 듀퐁 한국 사업을 총괄해온 에스제이듀코와 긴밀하게 소통 중이다.”

- 에스.티. 듀퐁에 한국 시장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매출 규모가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한국 사람들이 정말 패셔너블하다는 것. 프랑스 사람들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 실험적인 패션도 서슴없이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녔다.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 2006년부터 에스.티. 듀퐁을 이끌어왔다. 오랜 시간 브랜드를 이끌며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
“장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브랜드의 정통성을 유지한 것이다. 에스.티. 듀퐁의 라이터와 펜은 지금도 금속 세공 장인과 차이니스 래커(옻칠) 기술 장인들이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12년 프랑스 기업 중 가장 뛰어난 기술력과 전통, 장인 정신을 지닌 기업에 제공되는 ‘EPV(Entreprises du Patrimoine Vivant)’ 마크를 획득했다. 또한 2018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에르메스, 바카라 등과 함께 ‘마스터 오브 아트(Master of Art)’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하고자 했다. 내가 처음 대표가 됐을 때 에스.티. 듀퐁의 주 고객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기성세대 브랜드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라이터와 펜에 화려한 컬러를 입힌다든지, 세계에서 가장 얇은 라이터를 개발하는 등 ‘혁신’을 이어갔다.”

- 최근 MZ세대가 럭셔리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다. 에스.티. 듀퐁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솔직히 에스.티. 듀퐁은 규모가 아주 큰 브랜드는 아니다. 최신 유행을 숨 가쁘게 좇기보다는 우리의 특성을 더욱 심도 있게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신세대가 그저 체험과 소비 목적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두기보다 에스.티. 듀퐁의 가치를 향유하는 동반자로서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 한국엔 럭셔리 브랜드가 많다. 그중 에스.티. 듀퐁만의 강점이 있다면.
“퀄리티라고 말하고 싶다. 보여줄 게 있다. (그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펜과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 불로 펜 몸통을 10초 정도 달궜다. 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제품은 견고한 금속 소재를 사용하고 그 위에 장인들이 옻칠하기 때문에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떨어뜨려도 손상되지 않는다. 펜 하나를 만드는 데 50시간 이상 소요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다. 플라스틱으로 더 빨리, 더 많이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제품의 퀄리티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실제 사용하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크고 번쩍이는 로고도 지양한다.”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에스.티. 듀퐁의 주 고객은 누구인가.
“좋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와인을 즐기는 사람은 라벨이나 가격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맛과 향, 그것이 주는 특별한 의미와 시간을 즐길 뿐. 우리 고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피카소의 '밀짚모자를 쓴 재클린'을 섬세하게 드로잉한 '피카소 재클린 컬렉션'
피카소의 '밀짚모자를 쓴 재클린'을 섬세하게 드로잉한 '피카소 재클린 컬렉션'
- 에스.티. 듀퐁은 특별한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브랜드는 컬래버레이션 역사가 매우 길다. 과거 메를린 먼로, 오드리 헵번을 시작으로 영화 <007> 시리즈, <스타워즈>, <아이언맨> 같은 영화뿐 아니라 롤링스톤스나 오다 에이치로(만화 <원피스> 작가) 등 각 분야의 대가(大家)와 협업해왔다. 하지만 그저 유명하다고 해서 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티. 듀퐁이 파트너의 작업에 영감을 제공해왔는지, 나아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인지를 먼저 검토한다. 피카소와 협업해 탄생한 피카소 컬렉션도 실제 그가 에스.티. 듀퐁 라이터를 애용했기에 가능했다.”

- 이번 신제품 중에도 피카소 컬렉션이 눈에 띄는데.
“올해는 피카소 서거 50주년이자 에스.티. 듀퐁과의 컬래버레이션 25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앞서 말했듯이 피카소는 애연가였고, 우리 라이터의 고객이기도 했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1960년대 초 파블로 피카소는 작품에 사용할 3개의 듀퐁 라이터를 선택했다. 이후 그의 아들과 며느리를 위한 라이터에는 차이니스 래커칠 표면에 할리퀸을, 또 다른 라이터에는 피에로 그림을 새겨 넣었다. 현재 이 라이터들은 루이스 피카소 부인의 개인 컬렉션 중 일부다.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1998년 처음 한정판을 출시한 이후, 올해 네 번째로 컬렉션을 선보이게 됐다. 새롭게 선보인 ‘피카소 재클린’ 컬렉션은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1962년 작 <밀짚모자를 쓴 재클린(Portrait of Jacqueline in a Straw Hat)>이 섬세하게 드로잉됐다. 필기구와 라이터, 재떨이, 시가 케이스 및 키링으로 구성했다. 특히 처음 선보이는 ‘슬리미 라이터’는 얇고 작은 형태로 제작해 그립감이 뛰어나다.”

-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매거진 한경> 독자들에게 기프트 아이템을 추천한다면.
“오는 2024년은 푸른 용의 해다. 에스.티. 듀퐁은 이를 기념해 ‘드래곤 컬렉션’을 선보인다. 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련된 드래곤 페인팅이 돋보이는 제품이다. 특히 용의 비늘에서 영감을 받은 우아하고 대담한 기요셰 패턴은 보는 순간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용은 아시아에서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행운의 부적’ 같은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곧 2024년이다. 내년 에스.티. 듀퐁이 보여줄 새로운 행보가 기대된다.
“2024년은 브랜드의 미래가 걸린 해다. 많은 ‘도전 과제’와 직면해 있다. 우선 상품군이 늘어나고 새로운 고객을 맞아야 한다. 욕심을 부리자면 현재 7 대 3 정도로 남성 고객의 비율이 높은데, 내년 이맘때는 성비가 5 대 5로 바뀌었으면 한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