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경제 전망, 석학에게 듣는다>

내년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전환 포인트는 3고(高) 흐름으로 약해진 경제 펀더멘털의 회복 여부이다. 하지만 탈세계화와 ‘무(無)노멀’ 시대로 대표되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경기모멘텀에 대한 불확실성은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내놨다. 한경 머니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와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년도 경제 전반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다.

①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②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big story] 이근 서울대 교수 “세계 경제, 회복 더뎌…탈세계화, 한국에는 기회”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 3고 흐름(고유가·고금리·고환율) 속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복합위기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를 만나 격변하는 세계 경제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글 이미경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탈세계화, 강대국들의 패권 전쟁 속에서 한국은 어느 때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글로벌 인플레와 금리 인상, 미·중 간 패권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금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탈세계화 흐름 속에서 한국이 경제적 수혜국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중요한 기술적 통로이자 경제적 파트너로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장기적으로 한국과의 파트너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한국을 경제적으로 중요한 파트너 국가로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 역시 제조업을 다시 강화하려면 한국이나 대만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최근 글로벌 패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K-팝이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진 현시점에 우리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글로벌 환경에서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은 좋아지겠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커지는 만큼 정부가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고 각종 비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탈세계화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년 경제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내년 경제가 ‘춘래불사춘’일 것 같다. 경기가 회복은 되지만 회복 경도는 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미국의 고금리 정책이 지속되고 중국 경제의 회복세는 매우 더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리와 물가 움직임, 중국 경제의 충분한 회복 여부, 반도체가 내년 경제의 방향타를 정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 반도체는 내년에 회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금리 인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어떤가.

“금리가 오르면서 긴축 흐름이 이어진 것이지만, 금리가 꺾이지 않으면 글로벌 경기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다른 나라에 피해를 많이 주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의 경우 같이 올려야 하는데 한국의 가계 부채 상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따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 2개의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글로벌 경기적 측면에서는 안 좋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대외적 요인은 전반적으로 투자에도 영향을 미쳐서 한국처럼 세계적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는 좋지 않은 이슈로 작용할 것이다. 각국 보호무역주의 정책 역시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과거보다 약해진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고유가와 고금리 여파로 각국이 고비용 체제로 가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제에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big story] 이근 서울대 교수 “세계 경제, 회복 더뎌…탈세계화, 한국에는 기회”
내년 세계 경제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수입품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된다. 일부 대기업은 잘되는데 중소기업은 어려워지는 구도로 갈 수 있다. 대외적 환경 여파로 기업 간의 양극화가 초래되면서 경제가 불균등해지거나 격차가 심해지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전반적으로 세계의 성장률은 높지 않으면서 격차가 커지는 것이 한국 경제에 가장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탈세계화 흐름 속에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때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탈세계화, 한국엔 어떤 기회가 있나.

“이러한 탈세계화 흐름에서 한국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전쟁 상황에서 방위산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점은 장점이다. 평소 한국의 방위산업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는데 최근 전쟁 이슈 등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방위산업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기술 추격을 5~10년 뒤로 멈추게 했다는 점도 호재 요인이다. 이러한 미·중 갈등 상황이 한국의 대기업들에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중국은 성장률이 5% 정도인데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많지 않다.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빅테크’ 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민간기업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이를 두고 ‘국진민퇴(國進民退)’라는 사자성어를 쓴다. 이 말은 민간기업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보다 국영기업처럼 정부의 보호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부정부패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간기업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한다는 의미다. 중국 전기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경제 전반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야말로 춘래불사춘인 것 같다.”

중국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고 있나.

“과거엔 한국의 대중 수출이 대미와 대일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최근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한국의 대중 수출과 대미 수출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확 바뀌고 있다. 이처럼 대중 수출 비중이 떨어지고 대미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중국에 투자했던 한국의 기업들이 중국에서 엑시트(exit)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수출은 투자하는 데로 따라가는데 중국에 있는 있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 공장을 옮기고 있기 때문에 대중 수출이 주는 대신 미국에는 엄청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투자한 규모가 유럽 전체의 투자한 규모와 비슷해지고 있는 수준이다.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이 감소하면서 경상수지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최근엔 거의 10배 정도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경상수지 흑자를 보고 있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한국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나서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한국의 무역흑자를 창출해주는 나라는 이제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뀐 셈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 생산기지가 아니다.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면 기업들이 내야 하는 관세 부담이 큰 데다 공장을 자동화시키면서도 인건비는 높은 편이다. 소비재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많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진게 사실이다.
실제 중국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중간재를 제외하면 소비재들 대부분 철수시킨 상황이다. 이젠 한국이 수출했던 것을 중국이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에 최근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던 중간재 역시 중국이 최근 국산화함으로써 대중 무역수지 흑자가 줄고 적자로 돌아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의 실력 향상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자꾸 내려가는 원인은 무엇인가.

“인구나 고용률이 줄고 있는데 한국의 모든 비용들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 여건은 나빠진 상황이다. 한국이 앞으로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자동화하고 스마트팩토리를 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워진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동화하거나 스마트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진다.

지속적인 고용 창출이나 외국인을 뽑는 것도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인구가 줄고 있다는 문제가 있어서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 이슈는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산업 체질을 개선하고 바꿔서 더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디지털화를 통해 지방에 살더라도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교통의 질이 떨어지면 안 된다. 지역을 살리려면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구 감소 문제는 일본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진행됐고, 대만이나 중국의 인구도 감소하는 추세다. 중국의 경우 최근 대학생 수가 과거 1500만 명에서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 중에는 인구 감소를 겪으면서 잠재성장률을 올린 경험이 있다. 인구 중 일자리 생산을 높이면서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는 방식이 효과를 본 것이다.

반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60%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여성의 고용률만 높여도 고용인구 감소에 대한 성장률 저하는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려면 육아와 출산 등에 대한 전폭적인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