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경제 전망, 석학에게 듣는다>

내년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전환 포인트는 3고(高) 흐름으로 약해진 경제 펀더멘털의 회복 가능성일 것이다. 하지만 탈세계화와 ‘무(無)노멀’ 시대로 대표되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경기모멘텀에 대한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내놨다. 한경 머니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와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년도 경제 전반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다.

①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②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big story] 류덕현 교수 “내년 경제 불확실성 높아…경기 대응적 정책 중요”
‘무(無)노멀.’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내년 경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 우리 경제가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 비해 내년에는 성장세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내외적인 변수 탓에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정부가 경제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류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경기 대응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염원을 한다고 해서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액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주요 기관들이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아주 보수적으로 전망한 기관까지 포함해, 2%에서 2.4% 범위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만약 이 범위 안에서 성장률이 실현된다고 하면 올해 전망치인 1.4%에 비해 1%포인트 정도 높은 셈이 된다. 경기가 회복되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기간의 성장률 상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0년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가 2021년에 4.3%로 반등했고, 2022년에 2.6%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당초가 정부가 전망했던 데서 1%포인트 떨어졌다. 경기가 계속해서 회복세를 보여야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내년 경기가 회복 국면으로 들어가더라도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는지가 문제다. 물론 우리 경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성장률이 과거처럼 3~4%까지 되기는 어렵다. 성장 회복의 구성을 잘 봐야 한다. 어떤 부분이 좋아져서 성장률이 회복되는지가 중요하다.”

내년 물가는 어떻게 될까.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 중반으로 마무리될 것 같고, 내년 전망은 각 기관들이 2.3~2.5% 정도를 중간값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년에는 올해에 비해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힌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좀 다를 수 있다. 특히 서민 생활과 관련된 식료품, 서비스 물가가 안정돼야 할 텐데 공급 사이드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 유가가 여전히 불확실한 면이 있다. 중동 전쟁으로의 확전 여부가 유가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는데, 지정학적 리스크 안정성이 내년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도 거론되는데.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1%포인트 이상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인플레이션이 안정되지 않을까 싶다. 경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년 성장세가 올해보다 충분히 회복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가능한 일인데, 현재 전망으로는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내년 금리 전망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내년 여름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기준금리가 5.5%로 우리나라(3.5%)와 2%포인트 이상 큰 차이를 보이는 상태다. 일단 미 Fed는 내년 여름까지 금리 인하 결정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우리 또한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 경제의 탈출구로 꼽히는 수출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실제로 우리나라 주력 수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수출이 증가하고 있고, 배터리, 자동차 등의 분야도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올해는 거의 없었는데, 내년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따라 긍정적인 기대감을 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전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추세로 간다면 우리 수출은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 산업의 경우 원유 및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구조인데, 올해는 수출보다 수입이 줄어든 불황형 흑자였다. 내년 원유 가격 등이 안정화되면 수입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수출도 더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big story] 류덕현 교수 “내년 경제 불확실성 높아…경기 대응적 정책 중요”
내년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요인은.
“3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금리와 물가이고, 두 번째로 중국 경제의 회복세, 세 번째로 반도체 산업의 회복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금리는 한국은행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 금리와 물가의 향방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2%대 물가 상승률이 될 수 있을 것인지, 또 금리를 어느 시점에 낮출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아울러 내년에 중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된다면 우리나라 기업이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리스크는 무엇이라고 보나.
“가계 부채 문제가 큰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 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웃도는데, 전세대출까지 포함하면 120~130%까지 될 수 있다. 가계 부채가 왜 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많은 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일 것이다. 주거에 대한 불안정성이 컸던 게 원인이다. 서민들의 경제 기반이 많이 무너진 데다, 코로나19 기간에 자영업자의 대출이 가계 부채로 반영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가계대출은 무조건 금리를 높인다거나 낮추는 식의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예를 들어 주택 시장과 가계대출 수요를 더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접근하면 기업과 가계 소비, 자산 시장이 망가질 수 있다. 따라서 가계대출은 거시 건전성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면서 금융 정책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악성부채로 구분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가계 부문을 계속 놔둘 수는 없는 문제다. 부실화되는 부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감수하고 대책을 내놓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올해는 현 정부가 2년 차가 되는 해이지만, 실질적으로 예산을 짜서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첫 번째 해였다. 그런데 연초부터 경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반도체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수출이 안 좋아졌고,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민간소비가 죽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무섭게 인상하면서 전 세계 시장의 자금을 다 빨아들이다시피 했고, 한국 경제도 투자, 소비, 수출 면에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면서 세입 결손도 어마어마하게 났다. 무려 59조 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이 났는데, 우리 재정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예전이라면 세수 결손에 대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국채를 발행할 텐데, 이번 정부는 안 하겠다고 한다. 결국 세수가 모자라 지방 교부금을 삭감하겠다는 거다. 세금이 적게 들어오면 아무래도 적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 문제는 경기가 죽는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적게 쓰다 보니 경기에 수동적인 정책 대응이 된다는 점이다. 경기가 침체될 때는 경기를 올리기 위한 정책을 써야 하는 게 맞는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그런 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이 2.8%다. 총지출 증가율이 이렇게까지 낮았던 적은 최근 몇 년간 없었다. 굉장히 긴축적인 정책 기조다.”

정부가 돈을 많이 쓰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건가.
“실질 GDP 성장률과 잠재 GDP 성장률의 갭을 뜻하는 ‘아웃풋 갭’이 마이너스일 때 경기가 침체돼 있다고 보는데, 사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도 우리나라 아웃풋 갭이 마이너스라고 본다. 그런 상황이면 경기 대응적인 정책을 쓰는 게 맞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 대비 3.9%이기 때문에 확장적 정책이라고 하지만, 확장적 정책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금리와 물가, 중국 경제 회복, 반도체 시장 회복에 우리 경제 상황이 크게 달려 있다. 이 부분이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비관적으로 보는 투자은행(IB) 등에서는 내년 성장률이 2%도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년 연속 1%대 성장을 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국가 채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정부의 고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3만5000달러의 가계소득을 갖고 있진 않다. 상위 5~10% 정도만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다수의 국민은 상당히 어려운 경제 여건에 처하는 시기다. 정부가 주머니를 조여 왔던 것은 국민이 어려운 시기에 돈을 풀기 위해서다. 지금 돈을 풀지 않으면 언제 풀 수 있겠나. 경기 대응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오히려 위기가 온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ㅣ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