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밝았다. 새해가 찾아오면 ‘신년 운세’가 궁금해진다. 현재 삶은 팍팍하지만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의 한 경영 잡지에서 독자들에게 지난해의 핵심 키워드를 물었을 때 ‘회복력(resilience)’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강력한 압박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회복력의 의미가 용수철처럼 ‘제자리로 되돌아온다’에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하며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 스트레스 또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기존 상태로 정상화되는 것을 넘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회복력의 어원은 ‘다시 뛰어오른다’는 뜻의 라틴어 ‘리실리오(resilio)’라 한다. 그래서 올해 새해 덕담은 ‘해피 뉴 이어 앤 뉴 리질리언스(Happy New Year and New Resilience)’로 하고 있다. ‘해피’하기 위해선 ‘리질리언스’ 즉, 회복탄력성이 잘 작동돼야 한다는 뜻에서다.
듣고 싶은 신년 덕담이 무엇인지 질문하면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답이 대세이긴 하지만 ‘1도만 프레임의 각도를 틀어보자’는 덕담을 드려본다. 여기서 프레임은 ‘자신에 대한 평가 스타일’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 스타일이 1도라도 긍정적 방향으로 틀어질 때 회복탄력성이 좋아진다. 의학 영역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끔은 ‘미래 운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마음의 작은 변화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부정적이면 관계, 결정, 도전의식 등에 문제가 생겨 미래가 불편한 쪽으로 흘러갈 확률이 올라간다. 반대로 긍정적이면 내 미래가 긍정적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마음을 180도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실 마음이 원래 어렵다. 특히 마음 안의 감정은 청개구리 수준이다. 그래서 감정보다는 그래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말’을 잘 해야 한다.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유리 멘털인 제가 한심해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버리면 마음도 상처를 입고 프레임도 부정적인 쪽으로 틀어져 버린다.
새해에 실천 가능한 작은 목표를 설정해 성공 경험을 이루는 것이 탄력성을 키우는 시작으로 좋다. 생각을 180도 돌리겠다는 큰 기술 말고 우선 1도만 프레임의 각도를 긍정적으로 틀어보자. 구체적 실천으로, 자주 쓰는 부정적인 말을 2~3가지만 찾아 바꾸어보자. 예를 들어 ‘나이가 들었더니’는 ‘나에게 가장 젊은 날은 오늘’로, ‘너무 예민해 피곤해’는 ‘섬세한 멘털이 고성능 멘털이야’로, ‘마음이 너무 불안해’는 ‘불안은 위기관리의 원동력이야’로 말이다.
불안에 대한 효과적 접근은 ‘생각’이 아닌 ‘행동’
“새해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아요”라는 호소를 자주 접한다. 상담, 약물 등 걱정을 줄이려는 노력을 함께 해도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걱정을 일부러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걱정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 걱정이 직업처럼 삶의 중요한 활동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걱정이란 증상으로 병원까지 찾아오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걱정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왜 걱정처럼 괴로운 것에 중독이 될까. 심리적 유익이 없다면 중독도 없다. 예를 들어, 술을 생각해보자. 과음은 몸에 해로운 것을 다 알기에 절주나 금주는 새해 계획의 톱 리스트에 올라간다. 그런데 왜 또 먹을까. 술이 주는 심리적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적시자’라고 외치며 건배로 잔이 부딪힐 때 짠한 기쁨이 있고, 실제 술이란 케미컬이 뇌를 적실 때 나에 대한 억제를 풀어준다. 즉,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직장 상사 뒷담화도 술술 나오고 왠지 미래도 잘 풀릴 것 같다. 문제는 정신이 돌아오면 현실의 한계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또 마시게 된다.
그럼 걱정이 주는 심리적 유익은 무엇일까. ‘나는 소중해’라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소중하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는 없다.
하루는 인생의 최대 걱정이 ‘치매’인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걱정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전혀 걱정의 강도가 줄지 않았다. “왜 치매에 걸리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니 치매에 걸리면 나를 까먹으니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치매에 걸렸을 때 문제이고 치매가 아닌 지금은 무얼 하고 싶으세요”라고 다시 물으니 당황스러워했다. 걱정 중독의 핵심 현상이다. 오늘을 잊을까 봐 치매 걱정을 했는데 치매 걱정 때문에 오늘이 사라진 것이다.
숙제를 드렸다. 1월에 나를 위해 어떤 즐거운 일을 할지 한 가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시라고. 매달에 하나씩 하면 1년이면 12개, 5년이면 60개라고. 그러면 돌이켜볼 때 꽤 괜찮은 인생으로 느껴지지 않겠냐고 말이다.
‘행동활성화’란 기법이 있다. 감정과 생각은 내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행동은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쉽다. 그래서 마음 관리에 생각보다 행동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불안 걱정에 의욕은 없지만 “산책 가자”는 친구 말에 억지로 함께 나가 보니 의외로 행복한 감정도 들고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찾아온 경우다.
새해는 기대도 크지만 걱정도 크게 다가온다.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새해에는 행복할까’ 등 이런 생각은 그만하고, 작은 일이라도 마음이 좋아할 것을 궁리해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걱정이 많을 때 생각보단 행동이 답이다.
글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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