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도우 작가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으로 확고한 독자층을 지닌 소설가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편안한 마음으로 쉬었다 가는 이도우 빌리지(마을)’로 표현한다. “독자들에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려면 300년은 살아야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독자들도 300살까지 살면서 제 소설을 봐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꼭 다 쓰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2004년 출간 이후 120쇄라는 중쇄기록을 세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수십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JTBC 드라마로 제작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작가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의 면면이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지난해 가을 <구운 귤 냄새>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출간 이후 3개월 만에 4쇄를 찍으며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다름 아닌 독자를 꼽는다. 그는 “독자들이 아니었다면 존재하기 힘들었던 작가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며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살아남은 작가다. 그분들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이 작가와의 일문일답.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프랑스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요. 어떤 점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했을까요.
“평소 봐 왔던 한국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리뷰가 많았어요. 해외에 소개되는 우리나라 소설은 문학상을 받은 작품인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무게감 있는 소설 위주로 출간되는 경향이 있죠. 반면 제 소설은 따뜻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라 평소 접했던 아시아 소설과 좀 다른 느낌이었다는 리뷰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시적이다’라는 리뷰가 많았는데, 그 표현이 감사했어요. 제가 시를 참 좋아하거든요. 또 외국 소설을 굳이 찾아 읽는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책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던 만큼, ‘서점 이야기는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통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프랑스판은 <구운 귤 냄새>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책방 난로에서 귤을 구우며 독서모임을 하는 장면에서 착안한 제목인가요.
“맞습니다. 저는 소설 제목도 로컬화할 수 있다면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물론 원작자 입장에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제목을 썼어도 당연히 좋았겠지만, 제목을 <구운 귤 냄새>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은 후각에 예민하다는 인상이 강하잖아요. 향수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구운 귤 냄새>라는 프랑스판 제목이 어필할 수 있는 감수성이 존재했을 것 같아요. 특히 번역 작업을 이소영 번역가와 크리스텔 펭소나 마르세유대 교수가 함께 진행해주셨는데요. 펭소나 교수가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스무 개가 넘는 프랑스어 제목 후보를 만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그중에서 현지 출판사 직원들이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구운 귤 냄새>라는 이름으로 결정한 거죠.”
해외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이 오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신기하고 좋습니다. 한번은 러시아 독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메시지를 보내셨는데요. 서툰 한국말로 ‘당신의 작품을 러시아어로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외국 독자가 잘 모르는 한국어를 쓰려고 애쓰며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는 드무니까, 가슴이 찡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예전부터 ‘왜 한국 소설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당연하게 꼽혔던 원인이 언어의 장벽이었잖아요. 과거 한국 소설은 언어적으로 불리한 작은 운동장 안에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글로벌 시대고, 한국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더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조금 부럽기도 하고, 몇 십 년 전에 태어났던 선배 작가들이 참 답답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는 더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작가님 작품은 장르문학과 순수문학 중 어느 쪽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셨죠.
“맞아요. 2004년 처음 출간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당시 로맨스 소설을 주로 읽던 독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로맨스 소설’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한국 로맨스 소설 분야에서 최초로 군대를 다녀온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나왔던 거죠. 남자 주인공은 큰 기업의 후계자라거나, 자수성가한 젊은 최고경영자(CEO) 정도는 되는 게 장르의 법칙이었거든요. 반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았어요. 순수문학 계열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장르문학 같고, 장르문학 계열에서 볼 때는 일반 소설 같았을 거예요.
몇 년 뒤 <잠옷을 입으렴>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흔히 말하는 순수문학이에요. 기존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읽고 나서 ‘이게 뭐야’가 된 거예요.(웃음) 독자 커뮤니티에 ‘<잠옷을 입으렴>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에요’라는 소문이 났죠. 그 후에 세 번째로 낸 소설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였거든요. 소설이 출간되기 전에 로맨스 소설인지, 일반 문학인지 물어보는 독자도 계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솔직히 이번 작품은 내가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책을 바로 사지 말고 다른 분들 리뷰를 본 뒤에 구매하라’고 조언해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제 생각에도 절묘하게 경계를 탔던 작품인 같아요. 일반 소설의 분위기도 존재하고, 대놓고 로맨스 소설도 아니잖아요. 사랑 이야기도 분명히 있었지만요.” 그동안 썼던 작품들과 아예 다른 결의 작품을 써볼 생각도 있나요.
“호러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호러가 로맨스와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물론 고어한 내용이 나온다거나 진짜 귀신이 나오는 호러 소설은 조금 다르겠지만, <흰 옷을 입은 여인>, <레베카> 같은 분위기의 고딕 호러는 핏빛 로맨스와도 연결돼 있잖아요. 사랑과 증오는 정말 깻잎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흔히 말하는 ‘창작 루틴’이 있나요.
“그게 저의 큰 슬픔이고 약점인데, 저는 루틴이 없어요. 저는 흔히 ‘그분이 왔다’는 느낌이 오면 몇 날 며칠 잠을 거의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글을 쓰다가 픽 쓰러지는 편이에요. 아무 느낌이 안 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죠. 그런데 제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 힘들어도 루틴을 세워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그분’이 오면 잠도 안 자고 글을 쓰다가 쓰러지는 걸 반복할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저의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30년 몸에 밴 습관이라 잘 안 고쳐지는 거예요. 올해 목표는 일정한 글쓰기 루틴을 습관화하고 허리 디스크를 좀 고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창작의 모티브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감은 우리 주위의 도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자주 해드려요. 그런데 안테나가 세워져 있지 않으면, 요즘 말로는 와이파이가 켜져 있지 않으면 영감을 수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어메이징한 장면을 눈앞에서 봐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 같아요. 반대로 와이파이가 켜져 있으면 지나가는 바람 하나, 날아가는 낙엽 하나에도 문장이 떠오르죠. 그럼 어떻게 하면 와이파이를 켤 수 있느냐 묻는다면, 일상적인 발버둥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안테나를 기어이 올리겠다는 그 절박함이 결국 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외에 두 번째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다른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죠. 글을 쓰다가 잘 안 풀릴 때 좋은 영화의 도입부 5분 정도만 봅니다. 오프닝 장면에는 정말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설도 마찬가지고, 대본도 그렇고요. 아마 도입부를 쓰는 데 작품 전체를 쓰는 시간의 절반은 쓰이는 것 같아요.”
2004년 데뷔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글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안에 있는 동력 때문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저도 울고 싶을 만큼 답답할 때가 있고, 쫓기는 기분이 들어서 악몽을 꿀 때도 있어요. 옛날에는 2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일인데 이제는 한 달을 해도 잘 안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그럴 때 답답한 마음이 들죠. 그렇지만 지금 내 능력에 한계가 있다면 결국은 더 오래 앉아 있음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게 남아 있는 시간으로 극복하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나 자신이 아닐 것 같기 때문에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제가 손이 느리고 결벽증이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려면 300년은 살아야 될 것 같은데, 300살까지 살면서 다 쓰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도 있어요.(웃음) 그랬더니 독자들도 300살까지 살면서 제 소설을 봐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고맙잖아요. 그분들에게 보답하고 싶고, 죽을 때까지 꼭 다 쓰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속에 독립출판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독립출판사를 운영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글을 쓰고 출판사의 매니지먼트를 받는 것도 당연히 감사하고 좋은 일입니다. 저에게 사업가 기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당연히 지금도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출간하고 싶은 다른 작가들의 책이 있었던 거죠. 특히 저에게 용기를 준 건 <말괄량이 삐삐>를 썼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였는데요. 그분이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도 자기 글을 열심히 쓰며 진취적으로 살았더라고요. 코로나19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 그분의 전기를 보게 됐는데, 롤모델로 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불황에 나까지 출판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하고 싶은 걸 안 한다면 해봤을 때의 인생은 모른다는 심정이었죠. ‘그래, 해보자. 잘못돼도 집 날리는 것밖에 더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감하게 출판사를 하게 됐어요.”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도 번역하셨죠. 파전의 글은 어떤 계기로 작업하게 된 건가요.
“<빨간 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 <어린 왕자>는 아직도 유명하고 잘 팔리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 파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요. 제가 어릴 때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최초로 하게 해준 작가가 파전이었습니다. 문장이 굉장히 시적이에요. 어린이가 읽기에는 조금 난해할 수도 있는데, 어려운 말을 써서 그렇다기보다는 리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복문을 많이 써서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이 길게 펼쳐지거든요. 어린이가 읽기 쉽도록 만들려면 문장을 토막토막 치는 방법이 있겠으나 그 문장의 결은 다 깨지겠죠. 가능하면 문장의 리듬을 살리면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굉장히 고민했어요.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번역했습니다. 다행히 독자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너무 영광이고 기뻤어요.”
앞으로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다음 작품으로 <책집사>에 대해 언급하신 적도 있는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지금 계획해 둔 작품은 4~5개 정도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정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다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선 지금은 드라마 대본 작업을 하고 있고요. 말씀하신 <책집사>는 책을 모시는 집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소설인데, 3권 정도의 두꺼운 분량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약 6년쯤 뒤에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처음 구상했던 시점으로부터 17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되겠네요. <책집사>가 만약 잘된다면 제 묘비명에 새길 인생 대표작이 될 거라는 야심을 갖고 있어요.”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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