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유언이 방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됐을 때 그 대안으로 사인증여를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어떤 법적 해석이 필요할까.
[상속 비밀노트]
그런데 A씨는 생전인 2018년 1월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촬영했다. 동영상에서 A씨는 시가 약 300억 원 상당인 건물 X는 장남에게, 시가 약 150억 원인 건물 Y는 차남에게 상속하고, 시가 약 80억 원인 건물 Z는 딸에게 주겠다고 발언한다. 또한 자녀들이 각자 아내인 B씨에게 매달 3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동영상은 장남 C씨가 직접 촬영했고, 촬영 당시에는 A씨와 C씨 외에는 아무도 동석하지 않았다.
수증자만 참여한 동영상 유언은 무효
장남 C씨는 이 같은 동영상이 녹음에 의한 유언 또는 사인증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X건물 지분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를 했다. 다른 상속인들은 C씨의 청구대로 건물X의 지분을 넘겨줘야 할까.

실무에서는 어떤 유언이 방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됐을 때 그 대안으로 사인증여를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사망해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다(민법 제562조). 유언은 유언자가 혼자서 하는 단독 행위인 반면, 사인증여는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의사 표시가 합치돼야 하는 계약이다. 사인증여는 유언처럼 특정한 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 표시는 구두로도 가능하고,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

이 사건의 1심에서는 동영상에 대해 사인증여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대법원 2023. 9. 27. 선고 2022다302237 판결).
사인증여로 인정 받으려면
“망인이 유증을 했으나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는 경우 이를 사인증여로서 효력을 인정하려면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의사 합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유언자인 망인이 여러 명의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의 유언을 했으나 민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유언의 효력이 부정되는 경우 유언을 하는 자리에 동석한 일부 자녀와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모두 배분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유언자인 망인과 일부 상속인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와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A씨가 장남 C씨에게만 재산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녀들에게도 재산을 나눠주려고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A씨는 녹음유언을 통해 자녀들인 C씨와 D씨, E씨에게 재산을 분배하고자 했는데, A씨와 C씨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를 인정하게 되면 A씨의 의사에 부합하지도 않고,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 해석상 만약 유언자가 어떤 특정인에게만 재산을 준다고 유언을 했는데 그 유언이 방식의 흠결로 무효가 된 경우에는 그 특정인에게 재산을 주려는 것이 망인의 의사였으므로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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