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외면한 채 오너 일가에게만 유리한 합병안을 추진한다는 게 비판의 골자였다. 최근 그룹 측이 절충안을 내놓고 한발 물러섰지만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은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CEO 빅데이터] 박정원 두산 회장
두산, 지배구조 개편 논란...절충안에도 여전히 ‘시끌’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으로 시끄럽다. 최근 두산그룹은 그룹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두산밥캣과 ‘만년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를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합치기로 했는데, 대주주에게만 좋은 ‘불합리한 합병’이라는 논란이 거셌다. 시장에서는 합병안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필두로 한 ‘오너 경영’을 위한 조치일 뿐, 소액주주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을 두고 정치권과 금융당국까지 주시하자, 결국 두산그룹도 한발 물러섰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의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의한 것. 여론의 뭇매에 기존 주식 교환 계획은 일단 철회했지만, 그룹 측은 구조 개편안의 일부 단계까지만 진행하며 플랜B를 다시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활용해 최근 3개월간 두산그룹 관련 뉴스데이터에서 주요 키워드를 추출했다.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캐시카우
이번 논란은 두산그룹이 지난 7월 11일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 소재 등 3대 부문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으로부터 시작됐다.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완전 자회사로 바꾸겠다는 게 구조 개편안의 핵심이었다. 문제는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을 시가총액 기준으로 1대0.63으로 정한 데서 발생했다. 기존 두산밥캣 주주는 주식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받게 되는 셈인데, 알짜 기업 주식이 적자 기업 주식으로 맞바뀌는 데다 적은 수의 주식을 받게 된 터라, 주주들로서는 불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두산밥캣을 지배하던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도 핵심 캐시카우를 잃게 된 상황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일반 주주들의 이익은 살피지 않고 오너 일가에게만 유리한 합병이라는 성토도 나왔다. 합병안이 원안대로 진행될 경우 지주회사 ㈜두산은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기존 13.8%에서 42%까지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자본 투자 없이 지배력을 3배 가까이 키우게 되는 것이다. 두산밥캣 외국인 기관투자가인 션 브라운 테톤캐피털 이사는 두 회사의 합병을 두고 “날강도 짓”이라고 표현하며 “두산그룹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불공정한 합병”이라고 비판했다.

#금융당국 #금감원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향한 금융당국의 시선도 심상치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두산 측이 합병과 관련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합병 배경과 목적, 효과에 관한 서술이 미흡하다며 신고서 정정을 거듭 요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월 8일 “두산그룹 구조 개편과 관련한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며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사실상 무제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원장은 “기업 밸류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에 대한 범정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기업 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정부와 시장 참여자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근절돼야 할 그릇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사태를 주시한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상장사 간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요구하는 ‘두산밥캣 방지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데 이어, 다가오는 국정감사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출석시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주주들 #지배구조 개편
합병안을 둘러싼 파고가 높아지자 두산그룹은 결국 사업 구조 재편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8월 29일 이사회를 열고 양사 간 포괄적 주신교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의했다. 두 회사는 주주서한을 통해 “이번 개편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비판적 견해가 있었다.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 분들 및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추후 시장과의 소통, 제도개선 내용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시너지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최근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 두산 측의 결정에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국민연금은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둔 두산에너빌리티의 2대 주주(보유 지분 6.94%)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경우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안을 원할하게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합병 비율 문제로 가장 논란이 됐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은 철회됐으나, 그룹 측이 구상한 사업구조 개편안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기존의 1단계 계획은 원안대로 끌고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분할한 ‘신설법인(두산밥캣 지분 46.06% 보유)’, 그리고 ‘두산로보틱스’의 합병까지만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비상장 자회사로 만들고 상장폐지하는 최종 단계까지는 못가더라도, 그 직전 단계까지는 진행한 뒤 추후 플랜B를 고민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두산밥캣은 대주주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로 바뀔 뿐, 상장폐지는 당장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두산밥캣 주주들은 절충안으로 인해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면 캐시카우격 자회사를 뺏기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는 이번 절충안을 마냥 반기기 힘든 상황이 됐다. 각사별 기존 주주의 입장이 엇갈릴 수밖에 없어, 향후 갈길이 먼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의 동의가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오는 9월 25일로 예정했던 임시 주주총회 일정을 연기한 상태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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