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맛의 8할은 오크통이 결정한다. 최근에는 특별한 오크통에서 마지막 숙성을 거친, 위스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주류 트렌드] 위스키는 나무가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성 단계에 들어가기 전, 스피릿 단계의 위스키는 보드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참나무로 만든 통과 시간이 만나 ‘마법’을 부리면 특유의 풍미와 색을 갖게 된다. 과거에는 너도밤나무 등 오크가 아닌 나무를 위스키 숙성에 사용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 ‘오크통에 숙성해야만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다’는 법이 적용된 후로는 모든 위스키 증류소가 오크통만 사용하고 있다.위스키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여러 화학작용이 일어나 바닐라, 견과류, 초콜릿 등 다양한 향을 품게 된다. 게다가 여름과 겨울 오크통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며 알코올이 증발되는데, 그만큼 맛과 향이 진해져 풍미가 깊어진다.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다른 술을 담았던 오크통을 재사용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새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술을 숙성시킨 오크통에서 훨씬 좋은 풍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 숙성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오크통은 스페인 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과 버번위스키를 숙성시키던 오크통이다.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와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의 풍미는 극명하게 나뉜다. 단순하게 구분하면 셰리 오크통은 과일 향이, 버번 오크통은 달콤한 바닐라 향이 지배적이다.
위스키 숙성 방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와 셰리 오크 숙성 위스키를 섞기도 하고, 2019년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협회(SWA)’가 스카치위스키 숙성에 사용하는 오크통의 기준을 완화하면서 맥주나 테킬라, 심지어 사케나 바이주를 담았던 오크통을 활용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추가 숙성이 유행하기도 한다. 단순히 하나의 오크통에 숙성시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셰리 혹은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던 원액을 다른 특별한 오크통으로 옮겨 추가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럼과 와인, 코냑 등 다양한 술을 담았던 오크통에서 추가 숙성시킴으로써 기존 위스키 맛에 새로운 맛을 한 겹 더 더하는 것. 그만큼 풍미가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이점이 있다. 1.조니워커 블루라벨 엑스오디네어
캐스크 1만 통 중 단 1통에서만 얻을 수 있는 블루라벨 원액을 XO급 코냑 오크통에서 추가 숙성했다. 입에 넣으면 조니워커 특유의 스모키한 맛 뒤로 코냑에서 비롯한 말린 과일의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텍스처와 진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피니시도 특별하기는 마찬가지. 면세점에서만 만날 수 있다. 2.글렌모렌지 칼바도스 캐스크 피니시
글렌모렌지는 1987년부터 추가 숙성이라는 공정을 시도했다. 업계 최초라 해도 무방하다. 버번 오크통에서 10년간 위스키를 숙성시킨 뒤 특별한 오크통에서 2년간 추가 숙성하는 형식을 공식처럼 지키고 있다. ‘글렌모렌지 칼바도스 캐스크 피니시’는 이름처럼 칼바도스를 만들던 오크통에 주목했다. 칼바도스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사과나 배로 만드는 브랜디다. 칼바도스의 풍미를 고스란히 품은 글렌모렌지는 풍성하고 달콤한 풍미가 일품. 재스민과 구운 사과·배 등 과일을 섞은 듯한 아로마가 넘실거린다. 3.아드벡 앤쏠로지: 유니콘스 테일
아드벡은 아일라 위스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흔히 피트 향이라 부르는 강한 요오드 향과 스모키한 맛으로 마니아층이 두껍다. 반면 새롭게 선보인 ‘아드벡 앤쏠로지: 유니콘스 테일’은 그동안 아드벡에서 기대하기 힘들던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아드벡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버번 오크통과 함께 주정 강화 와인인 마데리아 와인을 담은 오크통을 조합해 14년간 숙성했기 때문. 입안에서 강렬한 스모키함과 풍성한 달콤함이 마구 충돌한다. 4.글렌피딕 23년 그랑 크루
23년 이상 버번과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샴페인 오크통에 담았다. 그냥 샴페인이 아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샹파뉴 지방에서도 최상급 포도밭(그랑 크뤼)을 가진 샤토들이 1차 발효에 사용하던 ‘퀴베 캐스크’에서 6개월간 마지막 숙성 과정을 거쳤다. 혀끝에 닿는 순간 우아함이 느껴지는데, 잘 익은 과일과 바닐라 풍미 뒤로 최상급 샴페인 특유의 브리오슈와 화이트 포도, 설탕에 절인 레몬 맛이 켜켜이 쌓인다. 5.듀어스 8년 캐리비안 스무스
보통 추가 숙성을 거친 위스키는 가격이 상당하다. 그에 반해 럼 오크통에서 추가 숙성 과정을 거친 ‘듀어스 8년 캐리비안 스무스’에는 꽤 합리적인 가격표가 붙었다. 8년이라는 비교적 저연산 위스키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듀어스가 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카디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카리브해의 열대기후와 바다의 영향을 받아 숙성된 럼 오크통을 거친 만큼 열대 과일의 달콤함과 캐러멜 향이 깊은 풍미를 자아낸다. 6.벤리악 21년
라벨에서 알 수 있듯, ‘벤리악 더 투에니원’에 정관사 ‘THE’를 붙일 만큼 자신감이 묻어난다. 자신감의 원천은 숙성 방식에서 비롯한다. 버번과 셰리, 버진 오크와 보르도 레드 와인 등 무려 4개의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 중요한 사실은 원액을 옮겨 담는 것이 아닌, 각각 최소 21년간 숙성한 원액을 한데 섞었다는 점이다. 은은한 색감과 달리 입안에 한 모금 머금으면 묵직하면서 복잡미묘한 향이 가득 차오른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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