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 2분기 나스닥100의 하락에 베팅했다. 미국의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풋옵션 비중을 늘리면서다. 지난 1분기 전체 포트폴리오의 41.39%를 차지했던 에너지주는 2분기 36.5%로 줄였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이 올해 2분기 미국의 대표 지수인 나스닥, 스탠더드앤드퓨어스(S&P)500, 러셀200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풋옵션 비중을 늘리며 미국 주식 시장 하락에 베팅했다. 실적 개선에 적극 개입할 목적으로 최근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매치그룹과 사우스웨스트항공에 대한 투자도 확대했다. 반면 유가 하락 등으로 전망이 악화함에 따라 에너지주 비중은 전분기보다 줄였다.美증시 고점 판단…풋옵션 대거 매수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올해 2분기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분기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100개 기업으로 구성된 지수인 나스닥100의 하락에 베팅했다.
엘리엇은 ‘나스닥100 인덱스 ETF’(QQQ) 풋옵션을 9억8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어치 매수하며 지난 분기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풋옵션은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향후 팔 수 있는 권리로, 이를 매수했다는 것은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전략이다. 미국 증시가 과열됐다고 판단해 주가 하락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QQQ는 엘리엇 포트폴리오에서 15.16% 비중을 차지하며 캐나다 에너지 업체 선코어에너지를 제치고 1위 종목으로 올라섰다. 이로써 QQQ는 선코어에너지와 1, 3위 자리를 맞바꿨다.
엘리엇은 S&P500에 편입된 기업을 동일 비중으로 투자하는 ‘인베스코 S&P 동일비중 ETF’(RSP) 풋옵션에 3억1600만 달러(약 4200억 원)를, 중소형주 2000개로 구성된 ‘아이셰어즈 러셀2000 ETF’(IWM) 풋옵션에 2억300만 달러(약 2700억 원)를 투자하며 지난 2분기 각각 두 번째와 네 번째로 많이 매수했다. 올 들어 나스닥100은 17.9%, S&P500은 18.6%, 러셀2000 지수는 8.4% 상승했다.
엘리엇은 미국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틴더의 모회사 매치그룹 주식을 2억3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매수하며 세 번째로 많이 사들였다. 매치그룹은 엘리엇 포트폴리오에서 2.05%를 차지하며 보유 비중 10위에 올랐다. 팬데믹 동안 비대면 만남이 활발해지면서 급성장한 매치그룹은 이후 이용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며 위기를 겪었다. 2020년 나스닥에 상장된 매치그룹의 주가는 2021년 최고점을 찍은 뒤 현재까지 약 80% 하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료 사용자 수와 시가총액 면에서 경쟁사인 범블과 그라인더를 압도하고 있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타깃이 됐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실적 개선이 필요한 기업 중에서도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가진 기업을 주로 공략한다. 앨리엇에 이어 지난 7월에는 스타보드밸류가 매치그룹 지분을 6.5% 이상 매수하며 비용 절감 등 수익 개선을 요구했다.
엘리엇이 다섯 번째로 많이 매수한 종목은 사우스웨스트항공(LUV)이다. 엘리엇은 2분기 동안 사우스웨스트항공 주식을 1억7200만 달러(약 2300억 원)어치 매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엘리엇이 사우스웨스트항공에 약 19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투자해 지분을 9.7%까지 늘리며 최대주주 중 하나가 됐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엘리엇이 지분을 11%까지 확보하고도 SEC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엘리엇은 “사우스웨스트의 부실한 집행력과 경영진의 고집스러운 의지가 주주, 직원, 고객 모두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히며 밥 조던 최고경영자(CEO)와 게리 켈리 회장을 외부 인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현재 2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주가를 1년 내에 49달러까지 올릴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성공 모델이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최근 들어 초저가 LCC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엘리엇의 압박을 받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결국 지난 9월 10일 조던 CEO 자리는 유지하되 켈리 회장와 이사 6명이 오는 11월 퇴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7월에는 실적 개선을 위해 50년 넘게 유지해온 선착순 좌석 제공 정책을 폐기하고 지정좌석제를 도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가 하락 영향…에너지 ETF 매도
지난 1분기 전체 포트폴리오의 41.39%를 차지했던 에너지주는 2분기 36.5%로 비중이 줄었다. 앨리엇은 미국 석유화학 기업 발레로에너지(VLO), S&P 에너지 섹터 ETF(XLE), 반에크 오일서비스 ETF(OIH) 등을 매도했다. XLE는 엑슨모빌, 셰브론, EOG리소시스 등 주요 석유 및 가스 관련 종목을 포함하고 있고, OIH는 미국 대형 원유 서비스 기업 25개의 수익률을 추적하는 상품이다.
엘리엇은 월가 투자은행(IB)의 전망대로 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면 에너지주도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10일 국제 유가는 2년 9개월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의 원유 수요가 크게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이날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부문 침체, 액화천연가스(LNG) 트럭과 전기차 보급 증가는 앞으로 디젤 및 가솔린 수요에 (가격 하락)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내년 석유 수요 전망도 일일 178만 배럴 증가에서 174만 배럴 증가로 낮췄다. 유가 하락은 석유 업체의 매출과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셸 같은 글로벌 석유 회사 주가는 지난 4월 이후 하락세를 보이거나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자산운용사 오펜하이머는 지난 8월 XLE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축소’로 조정했다. 오펜하이머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순풍이 대부분 사라졌다”며 “XLE 편입 종목이 절반 이상이 장기 추세선인 200일 이동평균선을 밑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XLE 가격은 지난 6개월 동안 6.52% 하락했다. 최근 한 달 S&P500이 1.49% 반등하는 동안 XLE는 5.5% 하락했다. 임다연 한국경제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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