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 효과
AI도 작가가 되는 디지털 시대다. 그만큼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인 문해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책을 읽고 펜으로 글을 쓰는 일은 줄었어도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는 계속 읽고 쓰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그 필요성만큼이나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준다.
직접 글을 쓰면 무엇이 좋을까? 첫 번째,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 가톨릭교회에서 은퇴한 수녀 678명을 대상으로 한 추적 연구Nun Study를 38년째 진행 중이다. 노년의 수녀들 중 누가 치매에 걸리고 누가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는지 분석했다. 매년 건강검진과 인지 테스트를 추가했다. 특히 사후에 뇌 기증을 서약했기에 건강한 뇌와 치매에 걸린 뇌를 직접 해부해서 비교했다. 중증 치매를 앓았던 수녀의 뇌 무게는 800g 내외였다. 건강한 수녀들과 약 400g이나 차이가 났다. 치매는 기억과 생각의 고리를 끊어놓고 결국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건강과 장수를 누리는 수녀들은 어땠을까? 물론 식단과 운동이 중요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가장 놀랐던 패턴은 ‘글쓰기’였다. 수녀가 되려면 예외 없이 ‘자서전’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았다. 연구진은 수녀 입회 당시 자서전에 사용된 단어 수, 고급 어휘 빈도, 생각의 밀도, 표현의 풍부함, 문장의 유려함, 긍정 정서의 표현 비중을 비교했다. 해마다 진행된 인지 테스트와 연동해서 분석했다. 구사하는 단어와 표현이 빈약하고 사고의 짜임새가 부족한 수녀의 경우 치매에 걸릴 확률은 3배나 높았다. 글쓰기가 진정 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프랑스 툴루즈대학교 뇌영상센터연구책임자 사뮈엘 플라토에서 성인 뇌를 직접 촬영하며 실험을 진행했다. 손 글씨를 쓸 때, 그냥 입으로 단어를 읽을 때, 그림을 그릴 때 각각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영상 데이터를 분석했다. 글을 직접 손으로 써 나갈 때 우리 뇌에는 두정엽과 전두엽을 중심으로 최소한 5개의 영역이 활발하게 기능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필기체로 직접 글을 쓰는 일이 자판으로 글을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두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직접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정성스럽게 종이 위에 적어보자. 글쓰기는 말하기와 달리 시각 이미지 처리와 공간 감각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 엉뚱한 곳이 아니라 지정된 위치에 제대로 기입해야 한다.
글자의 크기는 균등하고 서체가 일정해 타인이 정확히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글자 형태, 굵기, 간격을 신경 써야한다.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은 우리 두뇌에 저장된 문자를 팔, 손목, 손가락 근육에 전달해 신경망을 통해 미세하게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렇게 손끝에서 문자는 의미로 생성된다. 계약서의 최종 승인처럼.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
글쓰기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탱하는 뿌리가 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교에는 진로 탐색을 돕는 수업이 오랫동안 학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아왔다. 과목 이름은 ‘디자인 유어 라이프’다. 강의 목표는 다음 질문을 해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경력을 쌓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일과 개인 생활 사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17권의 추천 도서를 읽고 세미나와 발표가 진행된다. 이 수업에는 특이한 숙제가 있다. ‘행복일기’를 한 학기 내내 작성하고 스스로 분석하게 한다. 매일의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나 가장 불행감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다. 기록이 쌓이면 패턴을 찾아낸다.
내가 어떤 시간, 공간, 사람과 더불어 기쁨, 보람, 성취감, 자긍심을 얻고 있는가? 반대의 경우는 어떤지 관찰자의 시점으로 자가 진단을 해본다. 지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진로를 진단해주는 대신 학생 스스로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한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강의가 설계되었다. 이 수업에서 글쓰기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는 글쓰기
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일상에서 우리가 쓰는 글쓰기는 타인과 깊은 소통을 이루는 통로다.
엄청난 다독多讀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은 평생에 걸쳐 투자에 관한 통찰력을 쌓아왔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눈부신 경영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버핏은 자신의 경영 목표와 전략을 매년 주주 서한에 담아 세상에 공개해왔다. 세계 곳곳에서 버핏의 주주 서한을 공부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빌 게이츠는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을 다 읽었다. 주주 서한을 읽는 것만으로도 버핏의 지혜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1997년 주주 서한에서 버핏은 자신의 투자 전략을 야구 선수에 빗대어 설명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공식 타율 4할을 넘긴 테드 윌리엄스의 저작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을 소개했다. 테드는 자신의 노트에 스트라이크존을 그리고 야구공 크기를 적용해서 77개 소구역으로 나누었다. 매 타석이 끝나면 자신의 노트에 어느 위치에 어떤 구종의 볼이 들어왔고 자신의 타격 결과는 어땠는지 누적해서 업데이트를 해나갔다. 그는 당대 최고의 타자였지만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모든 위치 모든 구종을 다 공략할 수 없었다. 특히 타석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의 타율은 2할 3푼으로 주전 선수로 기용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 중심부의 타율은 4할대를 유지했다. 한복판으로만 계속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다. 테드의 전략은 자신이 약한 공은 손대지 않고 참았다가, 가장 자신 있고 안타 확률이 높은 위치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버핏이 인생 목표를 달성할 때 ‘선택과 집중’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야구 선수의 사례를 통해 설득하고 있다. 버핏이 세상과 소통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작업은 글쓰기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글쓰기 습관
국내 소설가들이 가장 받고 싶은 문학상이 있다면 그중 ‘이상문학상’을 꼽을 수 있다. 매년 발표되는 중·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소설가 한 명을 선정한다. 지난 45년 동안 이상문학상 수상자들이 작품을 내고 수상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3년부터 33년의 편차가 있었고 평균 15.2년이 걸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마다 서로 다른 여정, 직업, 집필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글쓰기를 고통, 고난, 인내의 정서로만 채운다면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가장 쉽고 재미있고 즐겁게 지속할 수 있는 각자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봉준호 영화 감독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끊임없이 자기 휴대전화에 문자로 전송한다. 그리고 한적한 카페에서 글을 쓴다. 소설가 김연수는 침대 머리맡에 수첩을 놓고 잔다. 당연히 깨어 활동할 때도 늘 수첩을 들고 다닌다. 글쓰기는 저마다의 토양에 맞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라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를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로 생각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기만의 방식과 호흡으로 한 줄 한 줄 써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글. 송규봉(국민대학교 AI·빅데이터 MBA 겸임교수)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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