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이병철 등 1세대 기업가들을 재조명한 쇼츠 영상이 20~30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MZ세대는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불굴의 정신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 이들은 창업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커버스토리]
‘무에서 유 창조’…1세대 기업가에 열광하는 MZ세대
“요즘 기업가들과는 격이 다르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난다”
“시대의 영웅, 이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배우고 싶다”



한국의 창업 1세대 기업인 관련 영상들이 수십만~수백만 조회수를 기록,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재벌과 창업 이야기를 담은 영상들은 꾸준히 올라왔지만 최근 특징은 20~30대들의 이용 비중이 높은 ‘쇼츠’(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의 창업자 영상들이 화제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73세의 나이에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도쿄 선언’을 한 일화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말단 직원에 당찬 반대의견에 보인 반응 등등 창업자들의 굵직한 업적부터 두고두고 화제가 됐던 일상 속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주목을 받은 벤처기업인 신화에 익숙했던 MZ(밀레니얼+Z) 세대들에게는 되레 색다른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인사이트를 준다는 분석이다.

정주영·이병철 회장 ‘쇼츠’ 수백만 조회수

관련 영상들마다 “요즘 사람들도 갖기 어려운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놀라운 분이다”, “정말 존경한다. 왜 이 시대엔 저런 멋진 어른들이 하나도 없을까? 나부터 반성하고 대의를 위해 무언가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진짜 기업가들의 사업가 정신이란 이런 거구나” 등의 댓글이 달렸다.
‘무에서 유 창조’…1세대 기업가에 열광하는 MZ세대
이처럼 1세대 창업가들이 재조명받는 이유는 요즘 MZ세대들이 겪는 복잡한 시대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보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지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남은 서열 문화와 무한 경쟁 풍토, 취업난, 주거 문제 등 고달픈 현실로 MZ세대들은 그야말로 ‘N포 시대’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일군 1세대 창업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위로를 얻는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한 30대 직장인은 “언제부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쉽게 포기하곤 했는데 1세대 창업자들 이야기를 보고 힘든 상황에서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는 “우선, MZ세대의 창업이 늘었다는 사실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며 “2023년 한 조사에 따르면 미취업 MZ세대 가운데 이미 창업을 했거나 창업 의향이 있는 사람이 조사 대상자의 70%를 넘었다. 이들이 창업의 롤모델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그러면서 “1세대 창업가들은 모두 ‘자수성가(自手成家)’의 대명사”라며 “시대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정말 맨손으로 거대 기업을 이루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일컬어지는 입지전적 인물들이니만큼 새로운 창업 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MZ세대들이 그 전적을 살피는 일은 일종의 벤치마킹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최근엔 1세대 기업가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청년들을 위한 캠프나 생가 투어, 교육 행사 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6월 롯데그룹과 함께 신격호 창업자 추모관이 있는 롯데인재개발원에서 기업가 정신 캠프를 개최했는데, 이곳에 대학생만 200여 명이 참여했다. SK그룹이 지난 4월에 경기도 수원 최종건 회장과 최종현 회장의 생가에 문을 연 ‘SK고택’에도 MZ세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SK그룹은 창립 71주년을 맞아 경기 수원 권선구 평동에 위치한 최종건 SK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가. 사진 한국경제
SK그룹은 창립 71주년을 맞아 경기 수원 권선구 평동에 위치한 최종건 SK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가. 사진 한국경제
SK그룹 측은 “이곳은 최종건 회장이 1926년, 최종현 회장이 1929년 태어나 40여 년을 보낸 SK 일가의 시작점”이라며 “2022년 2월부터 평동 부지에 한옥을 개축하고 전시관을 신축하는 등 2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복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고택은 1111㎡(약 336평) 대지 위에 75㎡ 크기의 한옥 형태의 기념관과 94㎡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는데, 방문객들에게 과거 SK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봄으로써 창업주의 경영 철학을 더 가까이 체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수성가한 창업의 교과서

이 밖에도 지난 7월 경남 진주에서 1박 2일로 개최된 ‘K-기업가 정신 청년 포럼’에는 25개 대학 경제·경영 관련 전공 대학생 200여 명이 참석해 진주시, 의령군, 함안군 등에 있는 LG, GS, 삼성, 효성 등 4대 창업주의 생가를 방문하고 창업 역사를 공부했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포럼에서 “진주 K-기업가 정신은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위기, 불평등 증가, 기후변화 등에 직면한 오늘날 제4의 생산요소로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강력한 엔진이며, K-기업가 정신의 정립을 통해 진정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크게는 한반도와 세계평화까지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창업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역량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를 100%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며 “독보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서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필요하고 때로는 수단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함이나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 1세대 창업가들에게서 확인되는 가시적인 특성도 그런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면서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지혜”라며 “1세대 창업가들의 성공도 혼자서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의 전지구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균형’과 ‘공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