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어도, 길이 아니어도 좋다. 오프로더의 바퀴가 닿으면 그곳이 곧 길이 된다.

[자동차]
저 바다가 날 막겠어
GMC, 시에라 드날리 | 압도적이다. 6m에 육박하는 길이와 2m가 훌쩍 넘는 너비는 1톤 트럭은 물론 한 덩치 한다는 웬만한 풀사이즈 SUV보다 큰 크기를 자랑한다. 시에라는 픽업트럭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끝판왕’으로 불리는 모델이다. 거대한 엔진과 사륜구동 시스템은 물론 각종 고급 옵션까지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보닛에는 미국이 자랑하는 6.2L 8기통 자연 흡기 직분사 엔진을 품었다. 최고 426마력을 발휘하고 최대토크는 63.6kg·m에 이른다. 카라반은 물론 대형 요트도 끌고 다닐 수 있는 힘이다. GM의 사륜구동 기술인 오토트랙 액티브 4x4 시스템과 상황에 맞는 다양한 드라이브 모드 탑재로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주행 퍼포먼스를 구현한다. 험로 탈출 시 필수적인 디퍼렌셜 잠금장치도 갖췄다. 여기에 2024년형부터는 V8 엔진 본연의 음색을 즐길 수 있도록 액티브 가변 배기 시스템을 적용했다. 스포츠 또는 오프로드 모드 선택 시 V8 엔진 특유의 우렁찬 배기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놀라운 건, 승차감이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공유하는 만큼 외모와 달리 우아한 승차감을 선사한다. 레벨 2 수준의 최첨단 ADAS 시스템을 갖춰 의외로 운전하기도 쉬운 편. 협소한 골목길이나 주차 시에는 4대의 카메라로 차량 주변을 비추는 어라운드 뷰 카메라의 도움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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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P, 랭글러 사하라 | SUV의 역사가 곧 지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으로 생산되던 SUV를 민수용으로 처음 내놓은 것이 바로 지프였기 때문이다. 특히 랭글러는 전장을 누비며 쌓인 험로 주파력이 온전히 담긴 모델이다. 그중 사하라는 도심 주행에서도 불편하지 않게 탈 수 있는 ‘점잖은 랭글러’다. 매킨리 시트와 8-방향 파워 시트 등을 적용해 편안한 승차감은 물론, 버튼 하나로 손쉽게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원터치 파워 톱으로 도심 속에서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앞좌석 열선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 휠, 사각지대 및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편의 사양도 꼼꼼히 챙겼다. 물론 2.72:1 셀렉-트랙 풀타임 4WD 시스템과 전자식 전복 방지 시스템 및 트레일러 스웨이 댐핑 등이 포함된 전자식 주행 안전 시스템(ESC) 등 오프로더로서 DNA도 충실히 잇는다. 넓은 휠 아치와 18인치 휠, 커다란 타이어, 높은 최저 지상고 등은 오프로더임을 강조하는 요소다. 파워트레인은 2L 4기통 가솔린 터보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힘을 발휘해 산과 바다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역대 랭글러 중 가장 큰 12.3인치 터치스크린도 눈에 띄는 점. 스크린만 믿고 산골 오지 탐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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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ROVER, 디펜더 90 P400 X | 미국에 지프 랭글러가 있다면, 영국에는 랜드로버 디펜더가 있다. 오리지널 디펜더 역시 군(軍)에 그 뿌리를 둔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을 누비던 사륜구동 자동차를 기본으로 2015년까지 생산했다. 반면 2020년 다시 부활한 2세대 디펜더는 외모에서부터 ‘군납’ 딱지를 완전히 떼어버렸다. 군복보다는 슈트가 더 잘 어울릴 법한 말쑥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이 차가 ‘외유내강’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특히 디펜더 90 P400 X는 국내 출시하는 디펜더 중 가장 작지만 가장 강력한 성능을 지닌 모델이다. 직렬 6기통 3.0L 인제니움 가솔린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56.1kg·m의 성능을 만족한다. 더욱이 온로드에서 다소 굼뜨는 여느 오프로더와 달리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6초 만에 질주한다. 물론 오프로더로서 기능에도 충실한데, 특히 오프로드 주행에 필요한 최신 기능의 집약체라 할 만하다.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과 에어 서스펜션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입문자도 부담 없이 험로를 탈출할 수 있다. 무려 90cm 깊이의 물을 사뿐히 건너는 도강 능력도 놀랍기는 마찬가지. 보닛 아래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와 센서를 통해 물 깊이를 파악하는 ‘도강 수심 감지 기능’은 언제 봐도 신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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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OS AUTOMOTIVE, 그레나디어 | 탄생 스토리가 재밌다. 영국의 석유화학 회사인 이네오스 그룹 회장이자 오프로더 마니아로 알려진 짐 랫클리프가 정통 기계식 오프로더들이 하나둘 단종되자 이 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한 남자의 취향이 실제 자동차 사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자동차 브랜드가 이네오스 오토모티브고, 첫 번째 양산 모델이 그레나디어다. 세계적 부호인 짐 랫클리프는 최강의 오프로더를 만들기 위해 BMW 엔진과 ZF 변속기, 브렘보 브레이크 등 최고 업체의 부품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생산은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위탁 생산업체 ‘마그나 슈타이어’에 맡겼다. 메르세데스-벤츠 G 클래스 제조사다. 그렇게 완성된 그레나디어는 박스형 외관으로 군용차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오프로드의 극한 환경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위해 바퀴를 섀시 모서리에 배치했으며, 강철 프레임도 3.5mm 두께로 제작해 강성이 뛰어나다. 점점 ‘말랑’해지는 다른 브랜드의 SUV와 정반대 행보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언제 고장 나더라도 운전자 스스로 정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것. 차 안으로 진흙이 들어와도 물청소를 할 수 있도록 차량 바닥에 5개의 내부 배수 밸브를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