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투자자로 이름을 날린 빌 애크먼은 2022년 공매도나 경영권 분쟁 등을 자제하고 가치투자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뒤 현재까지 이를 지키고 있다. 최근 애크먼은 운동화 판매 부진으로 주가가 폭락한 나이키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마켓]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의 나이키 매장. 사진=연합AFP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의 나이키 매장. 사진=연합AFP
헤지펀드 억만장자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가 지난 2분기에 나이키 주식과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를 새롭게 사들였다. 알파벳(구글 모회사) 주식은 일부 매도해 수익을 실현했다. 현재까지 2분기 말 공개한 투자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면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3분기 투자 현황 보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퍼싱스퀘어는 지난 3년간 123억 달러에 달하는 운용수익을 기록했다. 2004년 설립 후 올린 총 수익의 3분의 2에 가까운 규모다. 퍼싱스퀘어의 운용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79억 달러(약 24조4000억 원)에 달한다. 과거 허벌라이프 공매도와 넷플릭스 투자 등으로 대규모 손실을 맛보기도 했으나, 과감한 베팅으로 큰 수익을 내 이를 만회했다.

나이키 주식 사들인 속내 '오리무중'

애크먼은 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으로 X(구 트위터) 팔로어 수가 140만 명에 이르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 떨치고 있다. 최근 오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 10월 자신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33가지 이유를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CEO. 사진=연합뉴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CEO. 사진=연합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된 지난 2분기 말 주식 보유 현황(13F)에 따르면 애크먼이 이끄는 헤지펀드 퍼싱스퀘어캐피털은 약 2억2900만 달러(6월 말 기준) 상당의 나이키 주식 300만 주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키 주가는 6월 하순 97달러에서 70달러대 초반으로 폭락했다. 나이키 주가 폭락은 2024 회계연도(2023년 6월~2024년 5월)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실적 발표로 인해 촉발됐다.

애크먼의 나이키 투자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에크먼이 어느 시점에 주식을 사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애크먼이 투자한 사실이 지난 8월 뒤늦게 공개되자 주가는 90달러까지 잠시 회복됐다. 그러나 10월 초 회계연도 1분기(2024년 6~8월) 실적 발표에서 매출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자 다시 급락했다. 애크먼과 퍼싱스퀘어는 추가 투자와 경영 개입 등 향후 계획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이번에 사들인 규모는 나이키 지분의 0.19%에 불과하다.

기막힌 구글 수익 실현 타이밍

2분기에 브룩필드 주식도 약 685만 주, 2억8400만 달러(6월 말 기준) 상당을 사들였다. 캐나다 브룩필드는 부동산과 민영화된 사회기반시설(SOC) 등 투자에 특화된 초대형 자산운용사다. 브룩필드는 2022년 이후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주가가 떨어졌으나, 수익을 회복하고 최근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피스 빌딩과 소매 시설 투자에선 일부 손실을 입었으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와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 브룩필드 주가는 2분기 이후 10월까지 20~30% 올랐고 퍼싱스퀘어가 현재까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가치가 약 3억7000만 달러로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알파벳과 치폴레 멕시칸 그릴은 매각했다. 퍼싱스퀘어는 2분기에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우선주(class C) 183만 주, 3억3500만 달러(2분기 말 기준) 상당을 매각했으나 해당 기간 주가 상승으로 포트폴리오 내 비중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2분기 알파벳 우선주 주가는 173~192달러 사이였다. 이후 알파벳 주가는 7월 10일 192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후 조정을 받아 10월 중순 현재 160달러대 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같은 기간 알파벳 보통주(Class A) 역시 약 37만 주를 매각했다.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에 참여한 구글 부스. 사진=연합뉴스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에 참여한 구글 부스. 사진=연합뉴스
퍼싱스퀘어는 2016년 처음 매입해 장기 투자 중이던 외식 기업 치폴레멕시칸그릴 역시 보유 지분의 22.5%가량인 838만 주, 약 5억2525만 달러(2분기 말 기준)를 매각했다. 치폴레 주가는 지난 6월 사상 최고가인 68달러를 기록했다. 금융정보 사이트 웨일위즈덤이 추정한 퍼싱스퀘어의 치폴레 주식 매입 단가는 8.7달러 정도다.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힐튼월드와이드홀딩스 주식은 2.5%가량 줄였다. 힐튼이 알파벳(우선주와 보통주 합산 기준)을 제외한 포트폴리오 내 최대 보유 종목이 됐다. 2분기 말 기준 보유 지분 가치는 약 19억5000만 달러(약 2조6500만 원)에 달한다.

'제2의 벅셔해서웨이' 설립은 무산

연기금과 펀드 등의 자금을 받아 운용해 온 애크먼은 올해 상반기에 퍼싱스퀘어를 폐쇄형 펀드로 만들어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와 같이 퍼싱스퀘어를 사실상 기업 지주회사로 만들고자 했다. 출자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자산운용사와 달리 애크먼이 계획한 상장 투자 회사는 영구자본을 활용해 장기간, 과감한 투자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애크먼은 "이 회사가 벅셔해서웨이처럼 연례 회의를 열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될 것"이라며 홍보했다. 그러나 애크먼은 투자자들에게 외면받고 지난 7월 기업공개(IPO)를 공식 철회했다.

과거 모험적인 배팅을 즐겼고,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며 논란을 일으킨 애크먼의 평판도 IPO 실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애크먼은 지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 이후 하버드대 클로딘 게이 총장의 반(反)유대주의 행태를 비판해 그를 몰아내기도 했다. 하버드 출신인 애크먼은 2017년 비상장사였던 쿠팡의 주식 1000만 달러어치를 대학에 기부하는 등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퍼싱스퀘어의 IPO 변호사들은 투자설명서에 '핵심 인물(애크먼)과 관련한 중대한 위험은 없다'고 쓰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치투자자 변신한 애크먼, 폭락한 나이키 주식 매집
이현일 한국경제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