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삼·청·대·잠(삼성동·청담동·대치동·잠실동)’의 막내이자, 서울 송파구 대장 지역을 맡고 있던 잠실 아파트 시장의 향방을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입주 10년 차를 넘긴 주요 아파트의 전용면적 84㎡ 타입이 최근 전고가를 돌파해 거래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이슈] 행정구역 잠실동은 삼성동을 주축으로 한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 여파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청담동, 대치동과 함께 2020년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총 14.4㎢에 달하는 4개 지역은 올해 6월 서울시로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받았다.이에 따라 대지지분 6㎡이 넘는 아파트가 매매 거래 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내 거의 모든 아파트가 여기 포함된다. 특히 실거주를 하지 않는 ‘갭투자’에 대해서는 거래 자체가 차단된 상태다.
4년여간 이어진 규제로 인해, 잠실 아파트 가격은 인근 지역에 비해 눌려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같은 송파구 내 ‘헬리오시티’,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등 인근 새 아파트가 반사효과를 보며 시세 상승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하반기 들어 잠실 아파트는 신고가를 기록하며 이름값을 하고 있다. 특히 2025년 6월부터는 토지거래허가제라는 족쇄도 풀릴 예정이다. 현행법상 같은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5년 이상 재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젊은 가족이 선호하는 ‘육각형 동네’
잠실은 살기 좋은 주거지로 꼽히며 송파구를 ‘강남3구’에 포함되도록 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울에서 가장 일자리 수가 많은 강남 업무지구와 가깝고 서울도시철도 2호선·9호선을 통해 강북, 여의도로 출퇴근하기도 좋은 교통 인프라도 갖추고 있었다.
실거주 만족도 역시 높다. 잠실지구는 1970년대 대단위 주거지로 조성됐다. 이에 따라 대로변(올림픽로)을 중심으로 잠실주공아파트 1~5단지, 아시아선수촌, 잠실우성아파트 등 대단지 아파트가 즐비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균등한 주민 구성,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한다.
초·중·고등학교 역시 단지 내에 있거나, 아파트와 인접해 입주민 자녀들 역시 안전하고 편하게 통학할 수 있다. 입주민 인구가 많고 학령기 자녀가 있는 부부들의 선호도 또한 높다 보니 아파트 내 학교는 과밀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지하철과 직결된 대규모 아파트 상가와 잠실역 ‘롯데타운’ 등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생활 인프라는 물론, 한강공원과 석촌호수가 쾌적한 녹지 및 산책로를 제공하고 있다. 신도시의 쾌적함과 서울 핵심지의 인프라를 두루 갖춘 셈이다. 지역 내 아파트 중 가장 규모가 큰 잠실주공 1~4단지가 각각 재건축되며, 잠실은 젊은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동네로 거듭났다. 1단지는 ‘잠실엘스(5678가구)’, 2단지는 ‘리센츠(5563가구)’, 3단지는 ‘트리지움(3696가구)’으로 재탄생했으며 롯데월드가 내려다보이는 ‘레이크팰리스(2678가구)’도 4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다.
한 잠실 주민은 “잠실에 거주하다 개포동이나 다른 강남 지역으로 이사 간 주민들이 많은데, 살기에 잠실만한 곳이 없다고들 한다”면서 “아파트 안은 조용하고 쾌적한데 근처로 나가면 영화관과 쇼핑몰, 음식점이 다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물량 폭탄 이겨내고 ‘중산층의 꿈’된 잠실
이 같은 재건축 아파트는 첫 입주 당시 일대에 ‘물량 폭탄’을 일으키며 매매·전세 가격 하락의 원인이 됐다. 워낙 단지 규모가 컸던 데다, 2007년 트리지움을 시작으로 하필 뉴욕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던 시점에 연달아 입주했던 영향도 크다. 금융위기가 국내 주택 시장을 덮친 이후 몇 년간 ‘입주장 잔혹사’가 지속됐는데, 현재 서울 아파트 시세를 이끄는 서초구 반포동에서조차 ‘래미안 퍼스티지’, ‘반포 자이’ 같은 대단지들도 준공 후 미분양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잠실 아파트는 처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불과 1년 사이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2007년 8월 트리지움을 시작으로 2008년 7월 리센츠, 9월 엘스가 시장에 나왔다. 바로 옆 신천동에도 2006년과 2008년 각각 2678가구, 6864가구인 ‘레이크 팰리스’, ‘파크리오’가 입주했다.
리센츠 전용면적 84㎡ 타입의 경우 입주 첫해 전세 시세가 2억 원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전세 시세는 금방 상승했지만 매매 가격은 2014년까지도 제대로 반등하지 못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리센츠 84㎡ A타입 평균 매매 시세는 입주 첫해 8억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등락을 반복했다. 2015년 하반기에 들어서야 드디어 11억 원을 넘겼다.
부동산 하락기에 약점이었던 단지 규모는 상승기에 접어들자 장점이 됐다. 2015년부터 본격화한 부동산 상승기부터는 대단지 인기가 높아졌다. 거래도 활발해 시세 상승도 실거래 가격에 빠르게 반영됐다.
잠실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 3개 단지는 아파트 시세 상승을 주도하며 ‘잠실 엘·리·트’로 유명세를 얻었다. ‘투자는 종합운동장과 인접한 잠실엘스’, ‘실거주는 롯데몰 가깝고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단지 내에 있는 리센츠’라는 공식이 생기기도 했다.
좁혀진 격차, 다시 벌려 올해 들어 서울 핵심지 고가 아파트가 본격 반등하며, 그동안 주춤하던 잠실 아파트 실거래 가격도 전고가를 넘어선 상황이다. 다만 토지거래허가제 영향은 여전하다. 지난 상승기에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및 잠실동 종합운동장 개발 호재로 엘스가 근소하게 우세했던 상황은 실거주 선호도가 높은 리센츠 우위로 넘어간 분위기다.
올해 10월 리센츠 전용면적 84㎡ 타입(공급면적 33평형)은 28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금리 인상 전이던 2022년 4월 당시에 기록했던 최고가 26억5000만 원보다 2억 원이 비싸다. 전용면적 98㎡(38평형)도 31억7000만 원에 실거래됐다. 잠실 엘스 전용면적 84㎡ 타입은 올해 8월 27억3000만 원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최근 잠실 아파트의 급격한 가격 상승 원인으로 인접한 신천동은 물론 가락동 ‘헬리오시티’,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 등 ‘비(非)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가격 격차가 좁혀진 것을 지적한다. 9510가구 규모 매머드 단지인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올해 7월 24억 원을 기록한 뒤 눈에 띄는 상승은 없는 상태다.
여전히 높은 금리와 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제한 여파로 최근 한 달 사이 잠실을 비롯한 송파구 아파트 매매 거래는 주춤한 분위기다. 지역 부동산에선 내년으로 다가온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힘입어 잠실동에서 아파트 매매 거래가 다시 활성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잠실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엘스, 리센츠의 경우 가락동 헬리오시티와는 격차가 3억~4억 원 가까이 컸는데 최근 2억 원 선까지 좁혀졌었다”면서 “강남이 규제를 당하니 반포 아파트 시세가 급등하는 것처럼 잠실 아파트 거래를 누르니 다른 지역이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에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리면 (전용면적 84㎡이) 30억 원 거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덧붙였다. 재건축 아파트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재 송파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잠실 주공5단지(3930가구)’다. 한강변에 위치한 잠실5단지는 롯데월드타워 맞은편 입지와 재건축 기대감, 높은 대지지분에 따른 사업성이 더해져 새 아파트 완공 시 잠실 일대 대장주 역할을 할 전망이다. 잠실 주공5단지 전용면적 76㎡ 타입 대지지분은 74㎡에 달한다. 그러나 조합 내부 갈등과 신천초등학교 이전 문제, 설계변경 문제 등이 겹치며 사업이 장기간 지연됐다.
올해 들어 각종 논란이 해소되며 잠실 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4월 초고층(70층 높이)으로 재건축하는 정비계획 변경안이 통과된 데 이어, 빠르면 내년 사업시행인가까지 기대하고 있다. 신천동 잠실 진주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는 이미 지난 10월 일반분양해 평균 268대1 경쟁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잠실 주공5단지가 분양 및 입주를 시작하면 이보다 파급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11월 6일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기준 잠실 주공5단지 시세는 3.3㎡당 8368만 원(공급면적 기준)으로 3.3㎡당 8209만 원인 리센츠보다 높다. 전용면적 82㎡ 타입(35평형)은 올해 9월 33억2500만 원에 거래되는 등 3.3㎡당 1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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