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臨場), 발품을 팔아 관심 있는 지역을 꼼꼼히 탐방하는 것이죠.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코너 ‘임장생활기록부’. 이달엔 강남이지만 강남같지 않은 분위기를 갖춘 서울 강남구 일원동을 다녀왔습니다

[임장노트] 임장생활기록부 ⑮- 강남구 일원동
강남의 숨은 진주, 일원동
‘강남 실버타운’.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별명입니다. 준공 30년 안팎의 노후 단지가 적지 않습니다. 발전 가능성이 높아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불리죠. 이 일대 노후 아파트가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등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안전진단 등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서울시도 일부 지역을 종 상향하면서 개발 분위기가 점차 달아오르는 상황입니다.

압구정동 현대와 대치동 은마, 개포동 주공…. 상징성이 강한 서울 강남구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들이죠. 이들에 비해선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사업성은 이들 단지 못지않게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알짜 저층 단지들이 일원동에 몰려 있거든요.

일단 위치가 좋습니다. 3호선 일원역 주변에 주요 단지들이 밀집한 구조입니다. 4·5번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가람아파트가 있고, 가람 옆이 상록수입니다. 근처에 한솔마을과 청솔빌리지도 위치해 있습니다. 광평로를 건너면 준공 연도가 비슷한 푸른마을과 샘터마을, 목련타운, 까치마을, 삼성 등 중층 아파트들도 보입니다. 이들을 합치면 6400여 가구 규모입니다.
사실 일원동은 강남구의 끝자락이지만 철도 교통과 도로망을 잘 갖췄습니다. 일원역에서 3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수서역이 나오는데요. 수서역은 수서고속철도(SRT)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정차역이죠. 서쪽의 일원터널을 지나면 영동대로를 탈 수 있습니다. 코엑스나 청담역, 영동대교 등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강남의 숨은 진주, 일원동
숲세권·학군·병원 강점

일원동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숲세권입니다. 영동대로에서 일원터널을 나오면 보이는 풍광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공기가 청명하고 상쾌할 정도인데, 이게 다 대모산 덕분입니다. 게다가 저층 단지들이 몰려 있어서 동네가 마치 강원도 콘도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요즘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는 한강 조망권이죠. 그래도 숲세권에 대한 수요층은 여전히 탄탄합니다. 뒤집어보면 대모산 때문에 폐쇄적이고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잠실이나 반포처럼 번화하고 복잡한 지역을 원치 않는 분들이 선호하는 동네입니다. 일원동만의 색깔이 뚜렷하죠.
대모산
대모산
삼성서울병원행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모습
삼성서울병원행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모습
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
또 다른 자랑이 삼성서울병원입니다. 국내 ‘빅5’ 안에 드는 대형 상급병원이고, 암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래서 지방에서 진료 및 수술을 받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원역에서 삼성서울병원을 수시로 왕복하는 셔틀버스가 운행합니다. 이처럼 좋은 병원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죠. 요즘엔 역세권, 학세권에 이어 ‘병세권’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니까요.

마지막 강점으로 꼽히는 게 학군입니다. 강남 8학군에서 높이 평가받는 학교 중 하나인 중동고와 중산고가 있습니다. 중학교는 대왕중, 초등학교는 대왕초와 왕북초에 배정됩니다. 특히 남아 학군이 뛰어나다 보니 “일원동은 아들 많은 동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게다가 대치동 학원가가 가깝습니다. 버스를 타면 20분 안에 갈 수 있고, 지하철은 세 정거장이거든요. 그래서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학원 가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전반적인 학구열이 높은 편이고, 학령기 아이들이 많습니다. 인근 공인중개 관계자는 “매년 입학 시즌만 되면 자녀를 이 동네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학부모의 전세 문의가 많다”고 했습니다.
대왕중학교
대왕중학교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일원동엔 산과 병원만 있다”고요. 다른 강남권 지역에 비해 편의시설 및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긴 했습니다. 실제로 일원동엔 백화점과 대형마트, 발달한 상권 등이 부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해시설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조용하고 깨끗하고 안전합니다. 생활편의시설이 없어서 옆 동네로 가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요.
재건축 사업성 기대감 커

일원동은 1990년대 초 수서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지역입니다. 최근 재건축 연한(30년)이 도래해 강남권에서 대규모 정비사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동네이기도 하죠. 일원동의 형님 격인 목련타운에 왔습니다. 1993년 준공한 650가구 규모입니다. 면적은 121㎡, 158㎡ 등 대형이고 모든 가구가 남향으로 배치됐으며 중층입니다.
일원동 '목련타운'
일원동 '목련타운'
일원동 '목련타운'
일원동 '목련타운'
용적률은 249%이고, 시세는 121㎡가 24억 원대 선입니다. 아마 화면에서도 느껴지실 것 같은데, 연식에 비해 관리가 매우 깔끔하게 잘 돼 있습니다. 크고 작은 보수를 끊임없이 한 상태이고, 주차도 힘든 편은 아닙니다. 단지를 쭉 둘러보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가구들이 눈에 띕니다. 내부를 싹 수리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비사업 상황은 어떨까요. 얼마 전 서울시가 제2종 일반주거지역이던 개포동 ‘구룡마을’(개포도시개발구역)을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종 상향을 하면서 일원동에도 규제 완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대모산, 구룡산 경관을 보전하고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조성하기 위해 용적률은 230~240%, 최고 층수는 20~25층을 적용하기로 했거든요.
4월부터 시행 중인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일명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은 면적 100만㎡ 이상, 노후도 20년 이상 택지지구를 대상으로 용적률을 높여주고 공공기여 부담을 낮춰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택지개발지구로 조성된 일원 단지도 이론상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원동 주민들은 느긋한 분위기입니다. 전반적인 컨디션이 괜찮아서 다른 재건축 단지보다는 삶의 질이 낫거든요. 실거주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계속 살면서 좀 더 기다려보자는 겁니다.
일원동 저층 단지 '상록수'
일원동 저층 단지 '상록수'
일원동 저층 단지 '상록수'
일원동 저층 단지 '상록수'
이번엔 저층 단지인 상록수입니다. 강남의 마지막 저층 아파트 삼총사로 ‘가상한’을 꼽는데, 가람과 상록수, 한솔이죠. 상록수는 1993년 준공했고 740가구 규모입니다. 일원역에서 가깝고 산 밑이라 조용합니다. 다람쥐들이 돌아다니더군요.

엘리베이터가 없고 구축 아파트 특유의 크고 작은 불편한 점들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도 배관 교체 등 관리를 꾸준히 해 온 편이라 녹물이 나오진 않습니다. 구조가 잘 빠졌고, 면적은 90㎡, 101㎡ 등으로 구성됐는데 90㎡ 시세가 23억 원 선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상록수를 주목하는 건 일원동에서 정비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정밀안전진단 용역에서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습니다. 용적률은 109%이고, 평균 대지지분은 24평(79.3㎡)대 초반 정도입니다. 상록수도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속해 재건축 추진 때 용적률이 역세권 단지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습니다.
인근 청솔빌리지도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건설돼 용적률과 층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입주민들은 서울시에 종 상향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김정은 한국경제 기자 | 사진 이재형 한국경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