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3일 탄생한 비트코인이 벌써 16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 사이 초기 무료로도 거래됐던 비트코인의 몸값은 10만 달러를 넘어섰고,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투자 대상이 됐다. 이 놀라운 사건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뜨거웠던 비트코인의 지난 16년사를 돌아본다.
[커버스토리]
금융위기 속 탄생한 비트코인
1990년대 초부터 정부나 중앙기관으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사이버펑크(cypherpunk) 운동’에 가담한 암호학자들이 있었다. 유대인인 데이비드 차움, 닉 재보, 할 피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돈 거래에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돼야 한다고 믿었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암호화폐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암호학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비트코인의 아버지 ‘사토시 나카모토’다.

그리고 두 달 후인 2009년 1월 3일 사토시는 논문의 주장을 실현한 결과물을 공개했다. 개인 누구나 발행하고 아무런 통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첫 번째 제네시스 블록에 문구 하나를 남겼다.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2009년 1월 3일 기사 제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에 금융위기를 야기한 정부와 금융권이 있다는 걸 명확히 밝힌 셈이다.

그 뒤 사토시는 동료 개발자 할 피니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할 피니가 지적한 버그를 수정한 후 1월 9일 제네시스 블록 다음의 1번 블록을 만들어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그때부터 평균 10분에 하나씩 새로운 블록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단, 비트코인의 총 발행 개수는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현재까지 전체 발행 물량 중 90% 이상이 발행됐는데, 2040년이 되면 비트코인의 채굴은 99% 이상 완료돼 추가 공급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현재까지도 사토시가 누군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개인인지 집단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매년 5월 22일은 비트코인 사용자들에게 기념비적인 ‘피자 데이’다. 현실에서 최초로 비트코인이 거래된 날이기 때문이다. 2010년 5월 22일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하녜크즈가 비트코인 포럼에서 한 친구에게 1만 비트코인에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비트코인 1개의 가치는 0.41센트(5.6원)에 불과했는데, 이걸 현 시세(개당 약 10만 달러)로 적용하면 무려 1조4000억 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안정적으로만 운영돼 왔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7월 7일 비트코인 버전 0.3이 출시되고, 이후 8월 15일 비트코인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이용해 생성된 1840억 비트코인이 2개의 계좌에 나뉘어 전송됐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거래 기록에서 이 거래들이 지워졌고 버그가 수정된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업데이트됐다. 이것이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알려진 유일한 오류다.
사실 비트코인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상황 예측에 실패한 설계상의 결함으로 기록 용량, 처리 속도, 불합리한 수수료 등 많은 면에서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와 함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주장하는 ‘알트코인(Alt-coin)’들이 2011년 이후 본격적으로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7일에 첫 배포된 라이트코인을 시작으로 비트코인 코드베이스에서 몇 가지 수정을 거친 암호화폐들부터 비트코인에서 영감을 받은 많은 디지털자산들이 탄생하게 됐는데, 비트코인의 대안·보조적 성격을 지닌다고 하여 알트코인이라고 불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5년 비탈릭 부테린이 비트코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시킨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출시 이후 10년간 시가총액 2위 자리를 지켜 왔다.
비트코인이 암호화 화폐라면 이더리움은 이에 플랫폼 개념을 더했다. 스마트 계약과 분권화 애플리케이션인 디앱(Decentralized Application·Dapp)을 사용할 수 있다. 분산 응용 프로그램은 비트코인의 거래 장부처럼 누군가 조작하거나 해킹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 프로그램 실행을 누군가 중단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이더리움은 다른 블록체인 대비 가장 풍부한 개발자, 빌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는 등 여타 알트코인과는 달리 증권성 이슈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최악의 해킹 사태 ‘마운틴곡스’
2013년은 비트코인에 중요한 해였다. 그 해 1월 비트코인은 약 13달러로 시작해 4월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11월에는 450%나 상승해 1000달러를 돌파했고, 11월 30일 1100달러의 최고가를 기록하기까지 1년 내내 상승세를 이어갔다. 암호화폐가 본격적으로 주류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다. 이후 비트코인은 1000달러 이상을 유지하다가 2014년 초 마운트곡스가 파산하면서 수년간 침체기를 겪게 된다.
마운트곡스는 2010년 설립 당시 비트코인 점유율 70%를 차지할 만큼 세계 최대 거래소였지만 2014년 해킹사건으로 비트코인 85만 개를 잃고 파산했다. 이후 마운트곡스는 보유 자산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해킹된 80만여 개 중 20만여 개의 비트코인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고, 2024년 7월 초부터 채권자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상환을 시작하기로 했다. 채권자 상환이 이뤄지는 비트코인은 약 14만 개 규모로 알려졌다. 비트코인 물량이 대규모로 풀린다는 소식에 당시 가격이 6만 달러 아래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잇따른 대규모 ICO 붐과 조정
무엇보다 국내에서 ‘비트코인 광풍’이 제대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2017년 11월 말 비트코인이 1만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12월 거의 2만 달러에 도달하며 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후 가상통화공개(Initial Coin Offering·ICO) 버블이 터지면서 1년 후인 2018년 12월 비트코인은 320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암호화폐 겨울’의 시작이었으나, 결국 비트코인은 버텨내 다시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이듬해 3월에는 6만 달러를 돌파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2021년 7월 말 비트코인은 반토막인 3만 달러 미만으로 추락했지만, 11월 초까지 다시 6만7617달러를 기록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또한 같은 해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으며, 현재까지 비트코인 채굴을 통한 국부 창출을 이어가고 있다.

루나·테라의 가격 방어를 위해 테라폼랩스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자 비트코인도 4000만 원 선이 무너지며, 하루 만에 8.09%나 떨어졌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형 거래소였던 FTX가 파산하는 일까지 벌어져 비트코인이 4000만 원을 회복하는 데엔 약 1년 5개월이 소요됐다. 암호화폐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ETF 승인, 트럼프 당선 이후는
한동안 침체를 겪었던 비트코인은 2023년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등 미국 지방은행이 무너지면서 전통 화폐의 대안으로 부각되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격 상승을 이끈 건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였다.

하지만 불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후보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비트코인은 12월 5일 10만 달러를 돌파,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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