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투자 시장의 주인공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4년 만의 반감기 사이클이 돌아온 것인데, 과거와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크립토 세계의 시나리오를 들춰본다.

[커버스토리]
홍콩 거리에 전시된 비트코인 포스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AFP
홍콩 거리에 전시된 비트코인 포스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AFP
‘10만 달러’. 비트코인을 눈여겨보던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징적으로 여겨지던 숫자다.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2024년 12월 이 숫자를 찍으며 사상 최초의 가격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7년, 2021년 코인 광풍을 일으켰던 비트코인 급등세가 2024년의 끝자락에 거짓말처럼 재현됐다.

홍콩 가상자산 분석가인 저스틴 다네탄은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단순한 이정표가 아니다”라며 “금융과 기술, 지정학의 흐름이 달라지는 중이라는 증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상처럼 여겨지던 숫자가 이제는 현실이 됐다”고 했다.
반감기·트럼프·현물 ETF...비트코인 질주 만든 세 가지
이처럼 수년 만의 비트코인 불장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4년 11월 5일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확정되던 날이다. 연초 5만 달러 아래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2배가 뛰었고, 미 대선으로부터 불과 한 달 전과 비교해도 45%가 올랐다.

가상자산의 대표 주자가 요동치니 크립토 시장 전체가 들썩이는 분위기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이 최근 상승세를 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4년마다 돌아오는 반감기

비트코인이 2024년 말 급등세를 타게 된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시장에서는 크게 세 가지 키워드를 가장 주요하게 보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반감기,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친가상화폐 정책 예고,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성공적인 정착이다. 일단 최근 질주하는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이미 가상자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예견됐던 일이다.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비트코인의 반감기 패턴 때문이다.
반감기·트럼프·현물 ETF...비트코인 질주 만든 세 가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물량을 4년마다 절반으로 줄이는 일종의 규칙을 정해 뒀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시장 공급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반복된 반감기 시기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여지없이 크게 증가했다는 데 주목했다.

지난 2024년 4월은 비트코인의 네 번째 반감기였다. 통상 반감기 직후에는 오히려 횡보세 혹은 하락세를 보이다가 6개월 이후부터 다시 상승 추세를 타는 게 패턴이다. 그러다 반감기 후 500일 정도가 흐른 시점에 비트코인 가격이 정점을 찍는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이번 사이클에서는 2025년 9월까지 상승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2024년 7월 대선 유세를 위해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당선인은 이 행사에서 미국을 비트코인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연합AFP
2024년 7월 대선 유세를 위해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당선인은 이 행사에서 미국을 비트코인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연합AFP
예정돼 있던 반감기 사이클에 하나의 강력한 변수가 끼어든다. 바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다. 과거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외쳤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 비트코인의 열렬한 추종자로 돌아섰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미국이 지구의 가상화폐 수도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슈퍼파워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고하겠다는 파격 선언을 내놓기도 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대표적인 가상자산 규제론자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2기 행정부 인선의 상당수를 가상자산 전문가로 채웠다. 인공지능(AI)·크립토(가상자산) 차르 직책을 신설하고 데이비드 삭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명했다. SEC 위원장에는 친가상자산 성향인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을 임명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 역시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인물들이다. 재무장관에 앉게 된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 스콧 베센트도 마찬가지 성향이다.

무엇보다도 비트코인을 금, 원유와 같은 국가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는 그의 청사진이 비트코인 상승세를 부추긴 화약고가 됐다. 신시아 루미스 미국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은 ‘비트코인 전략비축 법안(BITCOIN Act of 2024)’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에는 미국 재무부가 향후 5년에 걸쳐 비트코인 총 공급량의 5%인 100만 개를 매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3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내 부채를 비트코인을 활용해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과거 ‘투기냐 투자냐’, ‘화폐냐 신기루냐’라는 논쟁을 일으켰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명실상부한 ‘디지털 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금과 경쟁하는 ‘디지털 금’으로

김두언(빈센트) 업라이즈 MFO 총괄은 “트럼프 2.0 시대를 앞둔 가운데, 미국 차기 행정부가 미국 달러 패권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로 비트코인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점이 비트코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며 “과거 금, 석유 등 달러 패권과 연동돼 있는 자산들이 큰 시세를 내지 않았나. 비트코인이 그 연장선에서 금과 경쟁할 수 있다.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몇 년 사이에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데에는 그간 달라진 크립토의 위상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존재한다. 김 총괄은 “결국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도에 따라 움직인다. 그만큼 크립토에 대한 전반적인 뷰(시각)가 바뀐 것이다. 비트코인이 5년 전에는 하나의 신기루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산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을 그의 행보만 봐도 느낄 수 있다”면서 “정치적으로 이해하자면 지지율 확대를 위해 가상화폐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비트코인의 달라진 위상은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2024년 1월 미국에서 거래가 시작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거래량과 가격이 유의미하게 상승곡선을 타며 흥행에 성공했다. 2024년 12월 16일 기준으로 미국 시장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파생상품 ETF의 운용자산(AUM) 규모는 1290억 달러에 달한다. 기관투자가를 포함한 제도권 자금이 대규모로 흘러들어 왔기에 가능한 수치다.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트럼프의 영향과 비트코인 현물 ETF가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비트코인 시장의 상승세를 더 빠르고 가파르게 이끌었다”며 “ETF라는 방식을 통해 전통 금융 시장에서도 더 쉽게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일종의 투자 수단이 만들어진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의 자금은 쉽게 유입되지 않지만 그만큼 한 번 들어오면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결국 비트코인 현물 ETF가 제도권에 데뷔하면서 비트코인이라는 자산의 안정성을 담보해주는 모양새가 됐다.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전에 없던 레벨의 신뢰성까지 확보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법정통화 도입 2주년을 맞아 열린 고용 박람회.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법정통화 도입 2주년을 맞아 열린 고용 박람회. 사진=연합뉴스
달라진 위상…바빠지는 각국 정부

글로벌 경제에서 비트코인의 존재감이 커지면 향후 국가 간 ‘비트코인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중국, 영국, 부탄, 엘살바도르는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특히 러시아는 달러 패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2024년 7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국제 무역 사용을 합법화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12월 “비트코인과 디지털 자산은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무도 금지할 수 없다”며 비트코인이 달러보다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미 정부 주도로 경제 제재가 가해지자, 러시아 정부의 해외 자산이 동결된 것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미 달러를 보유하는 것보다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국가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며 “여러 문제로 금융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을 때, 비트코인을 보유한 국가는 가상자산 결제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중립적인 자산인 동시에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기도 해, 재무적인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보유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늘어날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에 빠르게 동참하는 국가와 더디게 따라오는 국가로 나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비슷한 기조로 글로벌 시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구소련이 우주 관련 업적으로 경쟁했던 ‘우주 경쟁’처럼 각국 정부가 물량이 한정돼 있는 비트코인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2025 가상자산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국가 단위로 비트코인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미국의 비트코인 법안 시행이 가시화되면 국가 단위의 경쟁, 즉 ‘비트코인 우주 경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며 “이 시점이 도래하면 국가뿐 아니라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일정 이상 보유하는 것이 선관주의 의무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비트코인 시장 전망은

업계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적으로 2025년 상반기까지는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문제는 하락기의 시점과 하락 폭이다. 전문가들의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두 가지로 종합해볼 수 있다. 일단 과거 반감기에 비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커진 만큼 오르는 폭도, 내려가는 폭도 작을 수 있다는 쪽이다. 기관투자가의 자산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개인투자자의 관심도가 크게 올라간 만큼 작은 폭으로 오르내림을 반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미국의 비트코인 전략비축 현실화,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수요 증가로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폭증했을 경우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상승세가 이어져 버블이 형성되면 또 한 번의 기나긴 크립토 윈터가 찾아올 것이란 관측이다.

김 총괄은 “지금부터 6개월 정도 강하게 드라이브가 걸리고 나면 약간의 조정 기간을 거친 이후 하반기 끝에 다시 한 번 오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 만큼 언제나 버블에 대한 우려는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알트코인을 포함한 크립토 시장 전체의 운명이 향후 ‘미국의 스탠스’에 달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우는 가상자산 정책을 미국 내에서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는지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비트코인 비축은 미국인들에게 나쁜 딜(거래)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비트코인 보유에 대해 선을 긋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쳤다. 파월 의장이 2024년 12월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비트코인 보유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표명하자, 비트코인이 10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워싱톤의 Fed 본부 건물. 2024년 12월 18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비트코인 비축계획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사진=연합AFP
미국 워싱톤의 Fed 본부 건물. 2024년 12월 18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비트코인 비축계획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사진=연합AFP
미국 양원(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수월하게 할 여건을 마련했지만 오는 2026년 중간선거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미국 의회는 오는 2026년에 하원 전원과 상원 3분의 1을 새로운 인원으로 뽑는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하원이 민주당으로 채워지며 급격하게 정책 동력을 잃은 바 있다.

김 총괄은 “2027년 전까지는 미국 경제가 꽤 강할 것이라는 게 컨센서스지만, 2027년부터 슬로다운하는 추세로 가는 동시에 의회 구성도 민주당이 다수가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물론 시장에선 부정적 변수보단 긍정적인 전망이 더 대세를 이루고 있긴 하다”고 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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