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이 인증한, 최초의 로얄 워런트 위스키 증류소 - 로얄 브라클라.
[위스키 이야기]위스키 좀 안다는, 이른바 ‘위잘알’들의 면세점 쇼핑 리스트 가장 윗자리에 이름을 올리던 로얄 브라클라가 지난해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1998년 거대 주류 기업 바카디(Bacardi)의 품에 안긴 이후, 2015년부터 선보인 싱글 몰트위스키 정규 라인업이 한국 출시를 알린 것이다(2014년까지는 바카디의 대표 블렌디드 위스키인 ‘듀어스’의 핵심 몰트 역할을 해 왔다). 출시와 동시에 초도 물량이 ‘완판’되는 등 한국 싱글 몰트위스키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로얄 브라클라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로얄 브라클라의 역사는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증류소를 세운 이는 뜻밖에도 군인 출신의 윌리엄 프레이저(William Fraser)였다. 불과 15세에 영국군에 입대한 그는 수십 년간 인도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1812년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인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코더(Cawdor) 지역에 브라클라라는 이름의 위스키 증류소를 세운다.
프레이저는 군인 출신답게 원리원칙주의자로 알려진다. 높은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최상급 재료로 위스키를 빚었을 정도다. 더욱이 당시 스코틀랜드는 불법 증류소와 밀주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프레이저는 1817년 공식 면허를 취득하고 국가에 세금도 꼬박 헌납했다. 그의 위스키는 특별한 맛으로 명성을 쌓아 갔지만,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증류소 설립 후 2년간 2500파운드를 잃었다는 기록이 존재할 정도. 급기야 투자자들은 모두 프레이저를 떠났고 혼자서 증류소를 운영해 나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몇 년 뒤 그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윌리엄 4세(William Henry)가 브라클라 증류소에 대한 명성을 듣게 된 것이다. 증류소를 직접 방문한 윌리엄 4세는 그 훌륭한 맛에 감탄했고, 1833년 영국 왕실 납품 인증서인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하사한다. 영국 역사를 통틀어 위스키 증류소에 로열 워런트가 수여된 최초의 기록이자, ‘왕실 인증 위스키’라는 개념을 확립한 계기였다. <더 모닝 크로니클>은 당시 이 소식을 이렇게 보도한다. “폐하께서는 자신의 시설에 공급하라는 왕실의 명령에 따라 브라클라를 영국 왕실 주류 목록에 첫 번째로 올리셨다. 브라클라는 ‘신성한 음료’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로열 워런트가 대단한 것은, 100여 개에 달하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 가운데 영국 왕실을 뜻하는 ‘로열’ 칭호가 붙는 증류소는 지금도 단 3곳에 불과하기 때문(그중 ‘글레너리 로얄’ 증류소는 1985년 폐쇄됐다). 1838년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이 로열 워런트를 경신해줬고, 이듬해인 1839년에는 로얄 브라클라라는 이름으로 아예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위스키를 ‘왕을 위한 위스키’라 불렀다.
1860년 영국 위스키 업계는 큰 변화와 맞닥뜨린다.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섞은, 이른바 블렌디드 위스키가 합법화된 것이다. 위스키 블렌디드 기법은 영국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앤드루 어셔(Andrew Usher)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때 핵심 몰트 역할을 담당한 위스키 역시 로얄 브라클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영국 사람들은 로얄 브라클라의 원액을 포함해야만 고급 위스키로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위스키 시장의 ‘최강자’는 셰리 캐스크(오크통) 숙성 위스키들이다. 스페인 남부 헤레스 지역에서 만든 와인을 병입한 후 남은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를 말한다. 특유의 달콤한 과일 풍미가 인기 비결. 코로나 19 당시, ‘위스키 오픈런’의 주인공들 역시 대부분 셰리 캐스크 피니시 제품이었다.
로얄 브라클라는 오래전부터 셰리 캐스크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해 왔다. 오죽하면 로고에도 위스키를 상징하는 보리와 더불어 셰리 캐스크를 뜻하는 포도를 새겼을 정도다. 특히 최고의 퍼스트 필 셰리 캐스크(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처음으로 위스키 원액을 담아 숙성)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캐스크는 스페인에서 직접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로얄 브라클라 위스키를 마셔보면 셰리 캐스크 위스키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가령 로얄 브라클라 21년은 올로로소와 팔로 코르타도, 페드로 히메네즈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 개의 셰리 캐스크에서 마지막 숙성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입에 넣으면 잘 익은 블랙베리와 메이플 시럽, 토피 캔디, 벌꿀의 달콤함이 브리오슈의 버터 향, 마이야르 된 토스트의 고소하고 기분 좋은 향기와 어우러진다. 우리가 셰리 캐스크 위스키에서 기대하는 맛의 ‘집합체’다. 이러한 특징은 비교적 저연산인 12년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마무리해 잘 익은 복숭아와 블랙체리, 아몬드 초콜릿의 풍미가 우아하면서도 진하게 다가온다. 어디 하나 모나거나 튀는 구석 없이 모든 풍미와 향취가 우아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로얄 브라클라의 특징. 한국에는 12년과 18년, 21년 총 3종을 선보이는데, 직접 경험해보면 영국 왕실이 인증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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