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지만, 닛카 위스키와 함께라면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2025 서울바앤스피릿쇼’에서 닛카 위스키의 치프 블렌더 이세키 준지
(Iseki Junji)가 들려준 얘기다.
“‘2025 서울바앤스피릿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곳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행사장을 찾았을 때 그 규모에 놀랐고, 어마어마한 방문객 숫자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번 행사로 한국 소비자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을 마시고 있는지 잘 아는 것 같았다. 특히 닛카 위스키 부스에는 많은 인원이 몰려 웨이팅 등록 후 입장 가능했는데, 우리 제품에 애정을 보여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2001년 닛카 위스키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위스키 블렌딩 연구소장을 거쳐 올해 새로운 치프 블렌더로 임명됐다.
“닛카 위스키는 1934년 창립한 위스키 브랜드다. 닛카 위스키의 역사가 곧 일본 위스키의 역사라 할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래서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창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선구자 정신’을 계승해 앞으로도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위스키를 선보이도록 노력하겠다.”
- 요즘 한국에서 일본 위스키의 인기가 뜨겁다. 일본 위스키만의 매력은.
“현재 일본 위스키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닛카 위스키가 그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영국 주류 전문 매체 위스키 매거진이 주최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요이치 싱글 캐스크 10년’이 최고 점수를 획득하면서 일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생산 방식은 스카치위스키와 비슷하지만, 일본의 물이나 기후, 장인정신과 철학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 위스키 브랜드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매우 다양한 타입의 원주를 생산한다. 아무래도 많은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하기에 풍미가 더 섬세한 것 같다.”
- ‘좋은 위스키’의 기준은 무엇일까.
“글쎄, 세상에 ‘나쁜’ 위스키가 있을까. 취향의 차이일 뿐.”
- 질문을 조금 바꿔, 평소 좋아하는 위스키 맛이 있다면.
“복합적 풍미를 지닌 위스키를 좋아한다.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피트, 스치는 듯한 스모크 향이 풍부하게 어우러진 제품이다. 사실 닛카의 거의 모든 위스키가 이에 해당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슈퍼 닛카’와 올해 한국에도 출시한 ‘프롬 더 배럴’을 가장 자주 마신다.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하고 복잡한 풍미가 일품이다.”
- 닛카 위스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창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이 위스키를 즐겁게 마시면 좋겠다’는 철학으로 위스키를 만들었다. 위스키를 즐기며 얻을 수 있는 행복감, 다시 말해 위스키의 풍부한 개성과 다양한 즐거움을 통해 인생 자체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닛카 위스키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창립 90주년을 맞아 ‘Savour the joy of life(삶을 채우는 즐거움)’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선보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치프 블렌더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섬세한 후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위스키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니즈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면서도 회사의 목표와 일치하는 내용을 제시하는 것도 치프 블렌더의 역할이다. 물론 양조와 증류, 숙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필요하다.”
- 평소 후각이나 미각을 관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우선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는다. 주중에는 자극적이거나 향이 강한 음식도 멀리하는 편이다.”
- 위스키를 테이스팅할 때 잔을 쥐는 방식 등도 일반인과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위스키가 차가우면 향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테이스팅하기 전 잔에 따라놓고 실온에서 기다리는 편이다. 또 닛카 위스키에는 와인잔처럼 손잡이가 있는 특별한 시음용 글라스가 있다. 보통은 손잡이를 잡고 시향이나 시음을 진행하지만, 향을 강하게 느끼고 싶을 때는 잔을 손으로 감싸 체온으로 위스키 온도를 높이기도 한다.”
- 위스키는 오랜 숙성 과정 끝에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치프 블렌더는 짧게는 3년, 길게는 30년 이상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먼 미래에 사랑받을 위스키를 추측하는 기준이 있나.
“치프 블렌더는 신이 아니다. 당장 내년도 예측할 수 없다. 소비자의 취향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 그때그때 대응 가능하도록 최대한 다양한 원주를 만들어 놓는 것이 치프 블렌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현재 닛카 위스키는 얼마나 많은 원주를 보유 중인가.
“효모 종류와 피트 농도, 발효 기간, 캐스크 저장 환경 등에 따라 모두 다른 위스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원액의 종류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 닛카 위스키에는 지금도 훌륭한 위스키가 많다. 치프 블렌더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지금까지 닛카 위스키가 고수해 온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조금 더 욕심내자면, 이미 창조된 훌륭한 라인업을 요즘 사람들의 삶에 맞춰 재해석한 위스키를 선보이고 싶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건 선배들이 훌륭한 원주를 남겨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대 치프 블렌더들이 숙성한 제품을 활용해 왔다면, 이젠 후계자들을 위해 충분한 재고를 만들어줘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훌륭한 블렌딩을 할 수 있는 젊은 블렌더 양성에도 매진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현재 개발 중인 위스키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나.
“음, 아주 맛있는 위스키?(웃음) 그래서 음미하는 순간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위스키를 개발 중이다.”
ISEKI JUNJI
1996년~2001년 아사히맥주 본사 R&D본부 - 맥주 제품 개발 및 신제품 개발부
2001년~2010년 닛카 위스키 본사 - 블렌딩연구소
2010년~2013년 요이치 증류소 – 품질관리과장
2013년~2017년 요이치 증류소 – 생산·품질·설비부장
2017년~2023년 닛카 위스키 본사 – 생산기획부장
2023년~2025년 닛카 위스키 본사 – 블렌딩연구소장
20205년~ 닛카 위스키 본사 – 치프 블렌더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오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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